앞으로의 삶
서른에 가치관 재정비하기
능력주의 삶: 실패
성공한 인생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부를 쌓는 것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빛나는 명예를 얻는 것일 수 있다. 한 가지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부와 명예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성공한 인생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각자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어떠한 기준이든 그 사람의 ‘가치관’으로부터 정해진 것이라는 점이다. 가치관은 한 마디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가를 나타낸다.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 우리는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순간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정하게 된다. 나의 가치관은 ‘능력’에 맞춰져 있었다. 잘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다름 아닌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처음엔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다음으로 훌륭한 경찰이 되고 싶었다. 또 다음으로 훌륭한 강사가 되고 싶었다. 참고로 ‘훌륭하다’라는 건 내게 있어 ‘능력 있는’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번번이 내 꿈은 좌절됐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교대는커녕 교육학과에 진학할 성적이 되지 않았고, 훌륭한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50m도 맘대로 달리지 못하게 되었다. 훌륭한 강사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 현실은 백수 신세다. 쓰디쓴 좌절을 반복해서 겪으니 가치관이 흔들리게 되더라. 이제 ‘능력’은 손에서 놓아줄 때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가치관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평가해보도록 하자. 일단 무엇을 성취했는가? 나를 믿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관계는 내가 이룬 그 어떤 성취보다 값진 것임이 틀림없다.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내게 친밀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기적과도 같다.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내는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나는 매일 기적을 경험할 수 있으니 큰 축복을 받았다. 학업적으로는 석사학위를 취득했다는 점이 가장 큰 성취다. 비록 석사에 걸맞은 지식과 전문성을 가지진 못했으나, 졸업증은 얻었으니 충분하다. 공부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이 또한 기적과도 같은 성취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쩌다 대학원까지 다니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이룬 성취는 여기까지다. 이외엔 실패만 쌓아왔다. 건강도 많이 잃었고, 모아둔 돈도 없다. 석사학위는 얻었지만 백수다. 배부른 돼지도, 굶주린 소크라테스도 되지 못했다. 몸에 해로운 음식으로 대충 배를 채우고 방귀나 뀌어대는 철학자 흉내를 내는 사람 정도 된듯하다.
관계주의 삶: 현재 진행 중
이제 나는 ‘성공’만을 바라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가능한 능력을 키워보려고 노력은 할 테지만,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 자체를 실패한 거로 취급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나는 이제 ‘관계’에 집중하려 한다. 내 소중한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기 위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다. 그들과 더 오래 함께 지내기 위해 건강을 돌보려 한다. 내게 가장 소중한 건 관계라는 걸, 이제는 분명히 안다.
인간관계도 처음부터 잘 해낸 건 절대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 인생 첫 인간관계는 대실패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 오랜 기간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로 지냈다. 다행히 먼저 다가와 주는 친구들이 몇 있었기에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외로운 학교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평안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외로움은 반복해서 찾아왔다. 내게 새로운 관계는 여전히 힘들고 까다롭다. 하지만 실패를 거듭하며 나는 ‘마음의 굳은살’을 얻었다.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얻었고, 누구에게나 외로움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니체는 말했다.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 한번!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실패가, 좌절이, 외로움이 몇 번이고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이제 나는 ‘다시 한번’ 시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을 수는 없다. 대신 울어도 다시 웃을 것이다. 선생님은 되지 못했지만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도전할 수 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논술을 가르쳤고, 후배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전공 지식을 가르치고 있다. 경찰이 되지 못했지만 나는 질서를 지키고 사회에 도움을 주는 데 도전할 수 있다.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법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강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나갈 것이지만, 강사가 되지 못해도 이젠 괜찮다.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 앞에서 강연할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이 끔찍하도록 아름다운 삶에서 나는 몇 번이고 한 번 더 부딪힐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나의 인간관계를 지켜나갈 것이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선 나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부분에 예민한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나와 잘 맞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어디까지 양보하고 맞춰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내 성격상 다른 사람과 잘 지내려면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자신을 바라보고 이해하려 한다. 미국 심리학계의 아버지와도 같은 윌리엄 제임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마음이 변하면 행동이 변한다.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한다.
습관이 변하면 인격이 변한다. 인격이 변하면 운명이 변한다.
내 운명을 만족스러운 결과로 바꾸기 위해,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리려 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할 것이고, 그렇다고 기분을 숨기고 살지도 않을 것이다. 감정적인 사람은 아니되, 감성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고집이 센 사람은 아니되,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태풍이 휘몰아치는 거친 바다와 같았던 내 마음은, 이제 잔잔한 호수처럼 진정되어가고 있다. 내 마음이 변하고 있다. 사소한 것에도 짜증을 내고 신경질이 늘 돋아나 있던 나는 이제 여유롭고 태평하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이 변하니 행동이 변했다. 여유롭고 포용력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내 마음을 돌보는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 새로운 습관이 들었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가장 먼저 살펴보고, 관심을 가지고 돌본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한다. 누군가 나에게 공격적인 비난을 하더라도 ‘저 사람 처지에선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행동이 변하니 습관이 변했다. 이제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온화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습관이 변하니 인격이 변했다. 앞으로 내 운명은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내게 어울리게 변해갈 것이다. 인복을 통해 내 삶은 풍족해지리라 믿는다. 복이라느니, 운이라느니 믿음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이 믿음으로 인해 좀 더 여유로울 수 있다. 앞으로도 좀 더 많이 웃고, 일상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일로 성공 또는 만족스러운 성취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도 인간관계만큼은 지금껏 과정과 결과 모두 만족스럽게 잘 해내 왔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겠지만, 내 소중한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도 그들을 통해 기억될 수 있길, 그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