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읽는 시간》독서감상문.
친구가 슬퍼할 때, 우리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친구의 슬픔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위로하려 노력한다. 나 또한 힘이 들 때 친구들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홀로 외롭게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되기도 하고, 분명 슬픔도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나를 슬프게 한 일은 없던 일이 되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슬픔을 극복해나가야 한다.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위로받는다고 할지라도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삶의 방향성을 잃어 괴롭다고 말하고, 위로받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길을 잃은 상태다. 위로는 분명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지만, 위로만으로는 삶이 변하지 않는다.
《내 마음을 읽는 시간》의 변지영 저자는 우리가 너무 자존감에만 연연하고 있다고 걱정 어린 말을 전한다. 최근 몇 년간 꾸준히 관심이 커져 온 '자존감'이란 키워드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 '나는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그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부러워' 등 아주 쉽게 자신과 타인의 자존감 수준을 판단하곤 한다. 자존감의 인기와 동시에, 위로의 말을 전하는 책과 유튜브 영상 등 매체들도 늘어났다. 마치 위로가 자존감을 올려준다는 듯이.
자존감은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감정'이다. 정체성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기에, 자존감도 일정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감정은 '일시적 상태'임을 안다면, 자존감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다른 감정들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일 수는 있지만, 자존감도 결국 '그 순간의 일시적 상태'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늘 자신감에 차 있고, 스스로를 좋게 바라보는 사람일지라도 좌절을 겪는 순간에는 자존감이 낮아진다. 자존감은 결코 한 번 정해지면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존감은 오르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물론 높은 상태면 좋다.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는 것보다 긍정적인 감정을 많이 느끼는 게 좋은 건 당연하다. 그러나 긍정적인 감정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지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에 '가짜 자존감'이 퍼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진짜 자존감'을 이해하고, 나아가 자존감에만 매달리는 게 아닌 제대로 자신을 이해하고 삶을 탄탄하게 구축해나가는 방법을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7 가지 마음 도구'를 통해, 우리가 좀 더 삶을 견딜 수 있도록 돕고자 한 저자의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1부는 '나를 읽는 마음 도구' 네 가지에 대해 알려준다. 네 가지 마음 도구는 '자기 분화', '애착', '정서 분별', '정서조절'이다. 자기 분화는 '자율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중요한 타인과 친밀감을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기 분화의 반대는 '융합'이다. 자신의 경계가 무너지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과하게 자녀에게 집착하는 부모, 그런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녀, 친구와 사사건건 함께 하려 하고 모든 걸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일과 삶을 구별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에만 매몰되어 있는 사람 등 자기 분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자신이 자기 분화가 잘 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애착에 주목해야 한다.
애착은 아주 어린 시절 부모와의 상호작용, 관계 양상에 따라 형성되는 '생각과 행동의 패턴' 또는 마음의 틀이라고 볼 수 있다.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한다면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고, 고난을 겪더라도 잘 극복해낼 수 있다. 그러나 불안정하게 애착을 형성하게 되면, 자기 자신과의 관계와 타인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일상의 수많은 경험들이 함께 불안정해진다. 애착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어야 건강한 자기 분화도 이루어질 수 있다. 불안정한 애착은 융합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하여 자기 분화를 이룬 사람은 관계에서 잘 적응하는 동시에 자율성을 잃지 않는다. 친밀함을 소중히 여기지만 거절할 때는 단호히 거절할 줄 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잡는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니 가장 먼저 자신의 애착 유형을 살펴보길 저자는 권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자기 분화 정도를 파악해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게 최우선이다.
두 가지를 확인했다면 다음은 내 감정을 알아볼 차례다. 애착 유형과 자기 분화 정도는 노력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 대체로 일관적인 특성이지만, 불변하는 건 절대 아니다. 좀 더 건강한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감정을 공부해야 한다. 말 그대로 공부다. 감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감정은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감정으로 인해 어떤 행동이 따라오고, 그 감정을 나는 어떻게 줄이거나 키우는지를 배워야 한다. 첫 단계는 감정을 아는 것이다. 여러분이 오늘 하루 동안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많이 적어보라. 몇 단어나 쓸 수 있는가? 10개도 쓰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쓴 것 안에서도 아마 대부분은 감정이 아닌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감정 단어를 영어 단어를 외우던 그 시절처럼 공부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주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감정을 잘 알게 되도록, '감정 일기 쓰기'와 '몸의 감각에 집중하기' 두 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감정 일기를 씀으로써 우리는 의식적으로 내 감정을 살펴볼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글로 남겨둘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기가 쌓였을 때 내 감정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 감정은 신체 감각과 동반하여 일어난다. 그러니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 미숙하다면 몸의 감각을 느껴보는 게 도움이 된다.
감정을 아는 데까지 이르렀다면, 다음은 감정을 잘 조절해보려고 시도할 차례다.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단지 참아내거나 애써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감정이 왜 일어났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감정의 원인을 아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감정이 수그러들기도 한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불편하게 여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걸 가장 두려워하고, 그로 인해 불안을 느낀다. 불안은 마음의 땔감과도 같다. 타오르는 감정의 불꽃에 불안이 들어서는 순간, 불꽃은 더욱 거세진다. 그러니 감정의 정체를 밝히는 게 먼저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기 위해 과거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책에서는 '어떤 감정을 느꼈든, 얼마나 강렬하든 상관없이 그것이 무엇이고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면, 생각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감정과 함께 동반되는 신체 내외부의 상황과 맥락, 개인의 이전 경험을 고려해야만 한다고 알려준다.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면, 다음으로는 좀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해볼 차례다. '마음 챙김', '자기 자비', '조망수용'의 세 가지 마음 도구를 소개해주는데, 이 세 가지는 별개의 것으로 보기보다는 한 몸통을 가진 부분으로 보는 게 좋다. 자기 자비는 '따뜻한 마음 챙김'이라고도 부르며, 자기 자비와 마음 챙김 모두 조망수용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의 유행과 더불어, 마음 챙김 또한 점차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마음 챙김에 대해 여러 연구자들이 조금씩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공통점만 고려하여 간단히 말해보자면 '현재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동적인 알아차림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능동적인 알아차림'이라는 점이다. 마음 챙김은 단순히 숨을 크게 쉬며 쉬는 게 아니다. 고민으로부터 달아나는 것도 아니다. 특정 종교를 믿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방법을 배우고 꾸준히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날아오는 괴로움을 피하는 게 아닌, 잠시 품에 안아주었다가 그대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마음 챙김은 대표적으로 명상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반드시 명상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명상을 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닌, 내 경험에 집중하여 바라보는 행위가 의미 있는 것이다.
'자기 자비'에 대해서는 아직 낯선 사람들이 꽤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말 그대로 풀어보면 '자기 자신을 자비롭게 대하는 것'이다.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마냥 다 받아주기만 하라는 건 아니다. 자신을 좋게만 보며 남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단점과 장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장점이 있다고 칭찬하지 말고, 단점이 있다고 비난하지 말고, 그냥 '나는 이렇구나' 하며 받아들이는 게 올바른 자비다.
마음 챙김을 하고, 자기 자비를 가지기 위해선 조망수용이 가능해야 한다. 조망수용은 '타인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능력이자 자기 자신을 타인의 입장에 두어 생각해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타인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저자는 '균형과 조망이 진정 나로 살아가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자존감의 대유행을 '자존감 만능주의'라며 헐뜯곤 했다. 마치 자존감만 높으면 모든 게 술술 풀릴 것처럼 여기는 말을 들을 때면 진저리가 났다. 아마 나 자신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장 자존감이 낮은데, 그럼 나는 불행한 사람인가? '자존감이 낮다'는 말 한마디에 나를 가엽게 여기는 눈빛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자존감이 낮을 때가 자주 있지만, 불행하지 않다. 충분히 삶의 소소한 기쁨을 스스로 만들 수 있고, 소중한 사람들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원하는 대로 삶을 구축하진 못하고, 불안감에 휩싸이곤 하지만 극복할 수 없다고 여기진 않는다. 때때로 자존감이 높아졌다가 다시 낮아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슬플 때마다 울 수는 없지만 가끔 울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화가 난다고 무작정 표출해선 안 되지만,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 모든 감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자존감이 낮아져도, 낮은 상태로 잠시 머물러도 괜찮다. 다만 자기 자신을 자비롭게 대하는 걸 잊지 말자. 인생은 원래 괴로운 것이다. 원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면 그걸로 됐다. 나머진 그저 운명을 사랑하며,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