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와 인간관계
고깃집에 가면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과 불판의 뜨거운 열기가 섞여 나를 반겨 준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두 명이면 3인분, 세 명이면 4인분 삼겹살을 주문한다. 낮이라면 가급적 음료수를 먹고 밤이라면 술도 하나 주문한다. 곧 고기가 반갑게 찾아오면, 환하게 웃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집게를 든 구이 용사'다.
용사라고 표현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장인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전쟁에 나서는 전사들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쇠를 내려치고 불에 지지기를 반복하여 검을 만드는 장인. 집게를 들고 뜨거운 불판에서 튀는 기름에 당하면서도 한 점의 고기를 구워내는 장인. 하는 일은 다르지만 두 장인 모두 존경해 마땅하다. 장인의 검을 쥔 전사들이 장인을 믿고서 힘껏 검을 휘두르듯이, 먹는 자의 임무는 장인을 믿고 힘껏 고기를 씹는 것이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굽는 자와 먹는 자는 분명하게 나뉜다.
굽는 자와 먹는 자, 각각은 여러 유형들로 좀 더 나눠볼 수 있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도록 주의하자. '굽는 자'에는 '지도자형, 지배자형, 어머니형'이 있다. '먹는 자'에는 '전략가형, 비평가형, 해맑은 아이형'이 있다. 이외에도 또 다른 유형의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한 가지의 유형에만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구와 함께 하는가 또는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 유형이 변하기도 할 것이다.
'지도자형 굽는 자'는 기본적으로 고기를 굽는 스킬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이 유형의 사람은 고기 굽기뿐만 아니라 자신이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을 확실히 아는 편이다. 전체적으로 자기이해가 뛰어나고,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영역에서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지도자형은 자신의 스킬을 활용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이다. 이들이 구운 고기는 굉장히 질 낮은 고기였던 게 아닌 이상 웬만해선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정말 숙련된 지도자형을 만난다면 살면서 먹었던 고기 중 최고로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될지도 모른다. 지도자형은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부지런히 단련하고,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새롭게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도자형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이다. 잠깐의 방심으로 알맞은 굽기를 맞추지 못하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도 있다. 지도자형 안에서도 고깃상 전부를 통제하는 지도자형도 있다. 이 유형은 먹는 타이밍과 먹는 방법, 고기의 철저한 분배 등 더 많은 조건에 신경을 쓴다.
'지도자형의 굽는 자'는 인간관계에서 전형적인 리더 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성원들의 역할 분배도 척척 해내고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다. 지도자형이 없으면 공동체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중이 큰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비중이 크기에 지도자형 한 사람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공동체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지도자형인 사람은 자신의 기준이 남들보다 높을 수 있음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혹시나 자신의 높은 기준을 남에게도 요구하진 않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지도자형인 사람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이 사람의 고유한 역할을 존중해주고 참견하지 않아야 한다. 대신 이 사람이 하지 않는 다른 역할을 맡아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지배자형 굽는 자'는 쉽게 말해 자신이 많이 먹으려고 직접 고기를 굽는 사람이다. 이들은 주변 상황 또는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지도자형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리고 통제하려는 이유가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함일 가능성이 높다. 지배자형은 얼핏 남들을 잘 챙기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솔선수범해서 열심히 구운 고기를 한 점씩 골고루 나눠주는 모습은 따뜻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세 점씩 먹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 능력 있는 지배자라면 그래도 잘 구운 고기를 주긴 할 테니, 많이 먹을 욕심이 없다면 함께 식사하는 게 나쁠 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능력이 부족하다면? 내 앞에 탄 고기만 떨어진다면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지배자형은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한다면 자기 몫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적대하여 자기 몫을 뺏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방심하고 있다간 배불리 먹지 못한다는 걱정으로 가득하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가시가 자기도 모르게 남을 찌르는 고슴도치처럼,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이 타인에게로 향하는 과도한 통제와 공격성으로 변할 수 있다. 지배자형인 사람은 자신이 가진 걱정이 현실적인지 평가해볼 수 있어야 한다. 정말 나를 적대하는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지, 자신이 집게를 잡아야만 배불리 먹을 수 있는지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자신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알아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배자형인 사람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이 유형의 사람은 자주 안절부절못한 사람이라는 걸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인성이 나쁘다'라고 판단하고 넘어가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두 번쯤은 지배자형이 다른 사람을 믿어볼 수 있게 양보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호의를 권리로 여기는 사람에게 줄 고기는 없다는 걸 잊지 말자.
'어머니형 굽는 자'는 모성애로 가득 찬, 아주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부모님에게서 들었던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를 타인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면, 어머니형인 사람으로부터 일 것이다. 이들에게는 남을 보살피고 관심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게 보람이자 의미 있는 일이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배려가 넘치는 어머니형인 경우에는,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 각각의 입맛에 따라 다양한 굽기로 구워내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약간 바삭하게, 다른 사람에게는 촉촉하게 등 같은 불판에서 다채로운 고기 파티가 일어난다. 이 유형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적극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분위기를 주도하는 인물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흐름에 잘 따르는 사람일 수 있다. 어머니형인 사람은 흔히 말하는 '착하지만 한 번 화나면 가장 무서운 사람'에 해당하기도 한다. 그만큼 자신의 힘듦과 불만은 잘 참고 남들에게 맞춰주고 나눠주는 타입이다.
배려가 깊은 만큼, 어머니형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욕구에 둔감하다. 사람에 이리저리 치여서 지쳐도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오면 마음을 추스르고 웃는 얼굴로 약속 장소로 나간다. 자신의 욕구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해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무언가 요청할 때 그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거절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이유도 없이 그저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부탁을 거절하다니, 어머니형인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아주 부도덕적인 일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피곤하기 때문에'는 그 자체로 충분히 합당한 거절 사유임을 알아야 한다. 내 영혼을 깎아내면서까지 남을 돕는 건 누군가를 해치는 것만큼 나쁜 일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참고 참다 보면 결국 언젠가 쌓인 감정이 터져 나온다. 그 감정은 내 곁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어머니형인 사람은 평소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사람을 만나더라도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등 자신의 호불호를 구별해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논쟁이 일어날 때 반드시 어느 한쪽 편을 들라는 것은 아니다.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는 것 같은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는 알아야 한다. 3일을 굶고 나서 겨우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나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3시간이 주어지면 무얼 하고 싶은지 등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어머니형인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저 편하게만 여기지 말고, 어머니형이 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해주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어머니형인 사람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함께 쌓아보자. 어머니형은 스스로 자기가 좋아하는 걸 고르기 어려워한다. 대체로 선택 장애인 사람들이 어머니형에 많이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함께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옆에서 지켜봐 주자. 이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전략가형 먹는 자'는 '먹는 자'인 동시에 '굽는 자'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집게를 잡지 않는다. 그러나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 또는 분명히 못 굽는 걸로 확인된 사람과 함께라면 직접 고기를 구울 수도 있는 사람이다. '먹는 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이 유형은 불판 위에 놓인 고기 중 자신이 먹을 조각을 미리 선점해둔다. 그러면서 굽는 자를 도우면서, 은근슬쩍 그 한 점의 고기를 자기에게 가까운 쪽으로 옮긴다. 간혹 전략적인 생각보다 먹고 싶은 욕구가 더 큰 사람은 젓가락으로 자기 고기를 꾹 눌러 지키기도 한다. 아주 계산적인 전략가형은 다른 사람들이 먹는 고기의 양을 체크하기까지 한다. 다 같이 세 점씩 먹고 있던 중 누군가 두 점을 연속으로 먹는 걸 확인하면 재빨리 뒤쫓아간다. 다소 수동적인 '굽는 자'와 함께 있을 땐 '전략가형 먹는 자'가 구워진 고기를 분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유형의 사람은 '이끄는 리더'가 아닌, '밀어주는 리더'를 지향한다. 반장을 앞세워 실질적인 진두지휘를 도맡아 하는 총무 같은 느낌이다. 주목을 받진 않지만 구성원들도 어렴풋이 이 사람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먹는 자'의 역할을 취하긴 하지만, '지도자형 굽는 자'와 비슷한 성향을 띤다. 그래서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며 구성원들이 같은 목표를 추구하게 분위기를 형성하고,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의 영광은 명목 상의 리더에게 넘긴다. 자신은 자기가 계획한 일이 성공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그러나 전략가형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약점은 책임감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지사장'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에 숨어 일이 꼬였을 때는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리더를 부추겨 일을 진행시키다 문제가 생기면, 자신을 중심으로 반대 세력을 형성하여 리더를 몰아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자신이 쥐고 흔들 수 있는 다른 리더를 다시 앞세운다.
'전략가형 먹는 자'는 자신이 충분히 개입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그에 맞는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자신이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리더가 될지, 아니면 정말로 리더를 의지하고 보좌를 할 것인지 확실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리더가 되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리더의 유형은 다양할 수 있고,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전략가형인 사람이 곁에 있다면 틈틈이 리더가 아닌 이 사람에게 구성원들이 주목하도록 이끌어보자. 그때 떼를 써서라도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책임에서 도망가려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쑥스러워하며 손사래를 치더라도 자기 의견을 이야기한다면 전략가형이더라도 자기 책임에 대한 인식은 있다고 봐줄 수 있을 것이다.
'비평가형 먹는 자'는 가만히 앉아 결과를 평가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워진 고기를 보며 육즙이 날아갔다느니, 너무 많이 태우지 않았냐, 한 입 크기로 잘라야지 왜 이렇게 크냐, 심지어 고기는 삼겹살이 진리인데 왜 목살을 시켰냐까지 따지고 들기도 한다. "그럼 네가 굽던가"라고 한다면, "나는 구울 줄 몰라. 다 태워도 괜찮으면 나한테 맡기던가."라고 자랑도 아닌 말을 으스대며 말하곤 한다. 고깃집 선정부터 메뉴, 굽는 법, 함께 곁들여 먹는 음식 등 비평가형이 평가하는 부분은 다양하다. 현실적인 비평가형은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한다. "다른 데 가면 훨씬 싸게 더 질 좋은 고기 먹는데", "여기까지 여행 와서 먹는다는 게 이거냐" 등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짜증 나는 말을 쏟아낸다. 감성적인 비평가형은 어떤 면에서 더 까다롭다. "여기 인테리어가 좀......", "나는 좌식은 싫은데......", "여기 조명이 별로......", "고기 생김새가 영......" 등 창의적으로 짜증 나게 하는 말이 쏟아진다.
비평가형인 사람은 의외로 능력이 좋은 경우가 많다.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하기에 자신이 맡은 일에선 그 기준은 반드시 충족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식사할 땐 백종원 님에 뒤지지 않게 차려먹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할 땐 무 하나 썰지 않고 쳐다만 보기도 한다. 이들은 자기 실력에 자신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구운 고기가 다른 사람들 입에는 맛이 없진 않을까 두려워 집게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특히 자기 자신에게 완벽주의적인 기준을 가진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다. 노력했는데도 자기가 보기엔 부족하니, 노력하고서 부족한 걸 남들이 알면 얼마나 무시당할까 걱정한다. 그러니 노력도 안 한 척한다. 남몰래 며칠 밤을 새워 공부해놓고, 친구들 앞에서는 TV 보다가 잠들어버려서 공부를 전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노력한 만큼 괜찮은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니 비평가형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 부족한 점이 자꾸 눈에 밟힌다. 자신은 부족하지만 남들은 훨씬 더 부족해 보이는 것이다.
비평가형인 사람들은 두렵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평가받는 기회가 필요하다. 자신과의 싸움은 끝이 없다. 평범한 고깃집 사장님만큼 구워내면 TV에 나온 맛집보단 부족한 것 같다. 맛집의 고기 맛을 내게 되면 '3대째 이어온 고깃집'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만한 실력마저 갖추면 '미슐랭' 고깃집이 신경 쓰인다. 친한 사람들과 식사하는 데 대체 미슐랭이, 3대의 비결이, 맛집을 찾을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받고 정말 자신의 생각만큼 자기 능력이 부족한지 확인해보자. 만약 정말 부족하다고 하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혼자서 끙끙대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절대 피드백에 반박하지 마라. 설령 주관적인 피드백을 받더라도 비난을 받은 게 아니라면 반박은 금물이다. 일단 참고는 하는 게 좋다. 도움이 안 되는 피드백이었다는 게 확인되면 그때 무시하면 된다. 비평가형인 사람이 곁에 있다면 섣불리 먼저 태도를 고치려 하지 않아야 한다. 비평가형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고 평가를 부탁하지 않으면 피드백을 수용하지 못한다. 만약 피드백을 요청한다면 강점과 약점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그리고 최대한 비율을 5:5로 맞춰서 말해야 한다. 그리고 '너는 이래야 돼'가 아니라 '이렇게 해보면 어때?'의 제안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해맑은 아이형 먹는 자'는 자신이 먹는 역할을 맡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많은 경우 비평가형처럼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고기를 잘 못 굽는다. 만약 구워보라고 맡기면, 불판을 갈아 끼우기 전에 답답함을 못 참은 누군가가 집게를 뺏을 것이다. 이 유형의 사람은 말 그대로 해맑은 아이다. 눈치를 거의 보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잘하는 사람이 맡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못하는 일은 하는 시늉도 취하지 않는다. 모든 에너지를 먹는 데 집중한다. 그만큼 남들보다 먹성이 좋긴 하다. 구워주면 잘 받아먹는다. 비교적 성숙한 타입은 형식상으로라도 "제가 구울까요?"라고 던져보곤 한다. 낯선 사이가 아니라면 어차피 해맑은 아이에게 집게를 건네는 사람은 없다. 기껏 먹는 고기라면 맛있게 먹는 게 당연히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숙한 이 유형은 고기를 구워주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하려 한다. 자신이 잘하는 게 별로 없어도 할 줄 아는 것 안에서는 열심히 하려 한다. 그러나 성숙하지 못한 경우에는 해맑음이 아니라 뻔뻔함이 된다. 말 그대로 호의를 권리로 아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유형인 사람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해보지 않은 일은 선뜻하기가 어렵다. 전반적인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유형은 비평가형과는 다른 의미로 자신을 의심한다. 극단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고까지 여길 수도 있다. 엇나가기 시작하면 자신은 약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왜곡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이 유형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눈에 띌 가능성이 높다.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어 의도하지 않아도 분위기 메이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리광쟁이' 또는 '철딱서니 없는 녀석'으로 찍힐 수도 있다.
해맑은 아이형은 새로운 경험을 하더라도 자신의 삶이 그다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예상한 것만큼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 하는 일을 잘 못하더라도 비난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적다.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일 뿐이다. 여러 경험을 쌓으면서 '잘하는 일'이 아닌, '그럭저럭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발견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미운 오리 새끼'라고 특별 취급하지 말자. 그저 '평범한 아기 백조'일뿐이다. 해맑은 아이형을 대할 때는 감당 안 되는 잘못을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핀잔을 주지 않는 게 좋다. 괜한 반항심만 키우게 될 뿐이다.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주는 게 좋다. 대신 사람들이 다 같이 모인 자리가 아닌 1:1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실수해도 괜찮아. 그렇지만 분명 잘못된 행동이라는 건 알아야 돼."라고 말해주는 게 좋다. 그리고 격려와 응원도 섞어주면 좋다. 다만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꽤 오랜 시행착오가 필요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도와주겠다고 해놓고선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화를 쏟아내면, 그때부턴 해맑은 아이형의 모든 에너지가 당신을 공격하는 데 쓰일 것이다.
사람의 성격을 고기를 굽고, 먹는 스타일로 나누어 보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술기운까지 더해져 펼쳐진 우스갯소리가 80% 이상 섞인 글이다. 함께 고기를 먹다 "너 '지배자형'이구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100명도 넘지 않을 거라서 천만다행이다. 우연히 지나치다 이 글을 읽게 된 여러분은 그냥 "꽤나 정성 들여 쓴 헛소리구나"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사람의 성격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100% 타당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어느 정도 믿을 만한 분류법은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MBTI도 그중 하나다. 16가지 유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나누는 이 검사는 지금 대유행을 타고 있다. 예전에는 소개팅에서 혈액형을 물어봤다면, 이젠 MBTI 유형이 뭔지 물어보기도 한단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사람의 성격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건 100% 타당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 혈맥형에 따른 성격 분류가 재미로 보는 심리테스트 정도라는 걸 안다. 물론 MBTI는 혈액형이나 심리테스트와 비교될 만큼 엉망인 검사는 절대 아니다. 다만 누군가의 MBTI 유형을 알게 됐더라도, '그럼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단언하지 않길 바란다. 대놓고 인싸인 I 유형, 계획적인 P 유형도 분명히 존재한다.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성격 분류법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데이터를 많이 수집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운전하는 모습으로 본 성격 유형', '직업군으로 본 성격 유형', '즐기는 취미에 따른 성격 유형' 등 각자가 주변 사람들을 파악하기 위한 자기만의 '안경'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분류법이 무엇이든, 뒷받침된 근거가 많을수록 믿을 만할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의 분류법이 곧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그 어떤 성격 분류법도 95% 이상의 적중률은 가지지 못한다.
여기까지, '해맑은 아이형 먹는 자'의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