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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n 29. 2021

국민 가수를 만든 버려진 악보

실패한 자신을 사랑하길 바라며

이선희 <J에게>


  [유명가수전]이라는 TV 프로그램이 마지막 회를 맞이했다. 매 회마다 쟁쟁한 가수들과 함께 무대를 꾸몄던 세 명의 '싱어게인 출신 가수'분들의 앞날을 응원해주기 위해 싱어게인의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국민 가수 이선희가 출연했다. 이선희가 인생 곡으로 고른 곡 중 하나가 <J에게>라는 곡이었다. 이 곡은 이선희의 데뷔곡인데, 탄생 일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J에게>는 이세건 작곡가가 쓰레기통에 버렸던 악보라고 한다. 여러 가수들에게서 거절당해 상심한 작곡가가 슬프고 화가 나는 마음으로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었다. 그때 이선희는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길에, 누군가 쓰레기통에 악보를 버리는 걸 보고 다시 꺼내 악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작곡가에게 이 노래를 자신이 불러도 괜찮겠냐고 물었고, "버리든 부르든 마음대로 하라."라고 이세건 작곡가는 말했다고 한다. 이선희는 이 곡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할 수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국민 가수가 되어 '자기 관리 끝판왕'으로서 후배 가수들의 모범이 되어주고 있다.


  이 곡에 대한 에피소드는 2014~5년쯤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알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 다시 한번 들었지만, 또 한 번 들어도 놀랍고 운명적인 이야기라고 느꼈다.




조각가들이 기피하던 대리석이 다비드상이 되기까지


  위의 에피소드와 함께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에 얽힌 일화이다.


  오래전 피렌체를 통치하던 가문인 메디치 가는 피렌체를 상징할 조각상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크기의 대리석을 구했다. 그 크기가 너무나도 거대해 많은 조각가들이 작업할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시작해도 그만두고 또는 잘리기 일수였다. 결국 이 대리석은 조각가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었고, '조각하기에 알맞지 않은 결함이 있는 재료'라는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작품이 되지 못한 채 20년 이상을 떠돌게 된다.


  그러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미켈란젤로가 이 대리석을 맡게 된다. 이미 <피에타>라는 작품으로 천재임을 증명한 미켈란젤로는 또 하나의 역작을 만드는 데 착수한다. 미켈란젤로는 밥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잊은 채 몰입해서 작업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명성을 더욱 퍼뜨릴 작품이 탄생한다.




반복되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노래와 꺼려지던 대리석 모두 인연의 상대를 만나기 전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가치를 알아봐 주고 잠재능력을 끌어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 자신이 가진 걸 아낌없이 드러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었다. 노래나 대리석이라는 존재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는가 아닌가라는 상황만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 사람들 모두 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을 다니느라 힘든 사람들.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들과 지내려니 괴로운 사람들. 스스로가 쓸모없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잘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내가 그걸 할 수 있겠어? 말도 안 돼.", "나는 도움이 안돼."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살면서, 어떤 일이든 누구보다 쉽고 빠르게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아니냐고? 

  여전히 나는 딱히 잘하는 게 없다. 공부도 그다지, 운동은 형편없이 못하고, 능력에 대한 칭찬은 살면서 거의 들어본 적 없다. 다만 앞서 언급한 자신을 비하하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잘하는 일은 없지만 좋아하는 게 있지", "나는 그걸 못해. 근데 다른 건 그나마 좀 나아. 그리고 그걸 못해도 딱히 상관없는데?", "나는 너에겐 도움이 안돼. 그런데 누군가에겐 이런 나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실패하고 좌절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이 모자라게만 느껴지고 점점 더 비참해진다. 세상과 남을 원망하고 싶은데 그것도 한두 번이다. 실패가 계속 반복되면 사람은 결국 자신의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남 탓을 해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결국 자신을 바꾸려고 한다. 이때 자신을 바꾸는 이유를 '내가 못나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분명히 잘못된 행동은 존재한다. 그러나 점검이 필요하다. 개관적으로 정말 내가 잘못하고 있거나 너무 부족한 또는 과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나와는 맞지 않는 상황에서 애쓰고 있었던 건 아닌지 말이다. 상황에 따라, 함께 하는 사람에 따라 우리가 취해야 할 적절한 행동이나 생각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어떨 때는 맞는 것이 다른 경우에는 틀린 것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서 계속 상처를 받고 있으면서도 그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면 돌이켜보라.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지. 지금 하는 일이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면 점검해보라. 정말 직종이 맞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지금 자신이 일을 해낼 수 없게 만드는 어떠한 어려움에 처한 것인지. 성공을 거머쥘 수 있을 만한 재능이 없어 앞날이 캄캄하다면 생각해보라.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지 아니면 남들이 좋다고 칭찬해주는 일에서만 능력이 없는 것인지. 

  때론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도 있다. 재능이 필요한데 나는 가지지 못했다면 울고 싶은 만큼 펑펑 울고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나처럼 쉽사리 포기하기 전에 세 번은 생각해보길 바란다. 정말 재능이 있어야만 하는 건지. 정상에 오르지 못했어도 어느 정도 성취하고 나쁘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만약 포기하는 게 맞다고 결론이 내려졌다고 할지라도 꿈 자체를 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글을 쓰는 재능이 없어 출판사의 에디터가 되어 작가를 지원하는 사람.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재능이 없어 스포츠마사지사가 되어 선수들을 돕는 사람 등 꿈에서 멀어지지 않을 방법을 꼭 찾아보길 바란다.


  그저 재능이 없다고 포기하기엔 여러분의 꿈은 너무나도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다. <J에게> 노랫말과 멜로디보다도, 다비드상보다도. 가능하다면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분들의 꿈이라는 불꽃이, 버려진 자신을 불러줄 가수를 만난 것처럼 또는 모두가 피하는 자신을 깎아줄 조각가를 만난 것처럼, 세상을 밝게 비추는 등불이 될 수 있게 해 주는, 불꽃을 담아낼 램프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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