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부K네 회사 이야기 ep 1
똑부K네 회사 이야기
모 중견기업 문 이사는 너무 잘 나갔다. 스스로 '난 참 모든 게 잘 풀려, 남편 복은 없어도 회사 운은 타고났나 봐'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복잡하게 줄 설 것 없이 회장님에게만 잘 보이면 되는 중견오너기업에서 임원도 달았고, 회장님에게만 잘 보이면 대기업처럼 잘려나갈 걱정 없이 얼마 전 76세로 은퇴한 김 상무처럼 70세까지는 무난히 다니다 임원으로 은퇴할 거 아닌가. 문 이사에게 회사생활은 걱정할 게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믿었던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2세 분이 신임 회장님으로 취임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일머리도 사내정치머리도 잘 돌아가던 문 이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파티가 끝나면, 음해가 시작된다
선대 회장님이 돌아가시기 전, 문 이사에게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이 없었던 건 아니다. 수십 년간 변함없던 후계구도가 회장님이 돌아가시기 6개월 전 갑자기 바뀌었던 것이다. 본디 선대 회장님은 장자승계 원칙이 강하셨다. 문 이사도 당연히 부회장으로 계신 첫째 아드님에게 대놓고 보험을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첫째 아드님이 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외부에 있던 셋째 아드님이 회사로 복귀하며 부회장으로 취임을 한 것이 아닌가. '큰일이다' 싶었지만 재빨리 새 부회장님을 매일같이 찾아뵈며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그게 효과가 있었던지 선대 회장님 작고 후 셋째 아드님이 신임 회장님으로 취임하신 후 1년이 되도록 문 이사의 자리는 굳건했다.
신임 회장님이 아버지의 색채를 덜어내고 자신의 색채로 회사를 바꿔나가며 이런저런 행사와 복지들이 추가되면서 회사는 사실 파티 분위기였다. 그렇게 회장님이 바뀌고 1년이 지나고, 회장님도 직원들도 모두가 이제는 바뀐 회사가 익숙해진 그때 '조직개편'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파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임원들간 생존 싸움이 시작되며 자신에 대한 음해도 시작되었던 걸 문 이사는 짐을 싸며 알게 되었다. 문 이사가 박사 논문을 쓸 때 A 외주사 대표의 대필 도움을 받고 그 대가로 A 외주사에게 외주일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회장님 귀에 돌았던 것이다.
전말은 이랬다. 문 이사가 데리고 있었던 김 부장이 타 본부 박 이사와의 술자리에서 "저희 문 이사님은 회사 임원 하시면서 어떻게 박사 과정까지 밟는지 참 대단해요. 우리끼리 외주사 대표한테 대필 도움 받는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까지 할 만큼 참 슈퍼우먼이라니까요'라고 했던 말을 모략꾼 박 이사가 퍼뜨린 것이었다. 문 이사와 늘 사사건건 일로 부딪치며 문 이사의 잘난 척에 이를 갈던 박 이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루머를 던졌다.
그리고 그 루머는 신임 회장님의 조직개편 시기, 사내정글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직원들의 불안감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리고 어느새 루머는 확실한 증거까지 있는 팩트가 되어 있었다.
신임 회장님은 원래 문 이사가 다른 임원들보다 일을 독보적으로 잘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조직개편 시 2개 본부를 하나로 통합해서 문 이사가 맡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 상무가 찾아와서는 '회장님께서 회사 일로도 생각하실 것이 많은데 제가 괜한 걱정을 더해드리는 것 같아 오랜 기간 고민하다가 그래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린다'며, 문 이사에 대해 사내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를 보고하는 것이 아닌가. 우 상무는 자기가 사실여부를 확인해 보았고 루머가 사실인 것도 확실하다고 했다. 증거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문 이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 회사의 정의, 회사의 규칙이 흔들릴 거라는 이야기까지 더한다. 증거고 뭐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문 이사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차근차근 임원까지 올라가며 30년 가까이 몸 담았던 회사를 떠났다. 박사 논문 대필, 외주사와의 부당한 관계라는 음해와 함께. 그것도 선대 회장님 시절 외주사에게 돈 받은 것이 첫째 아드님에게 걸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첫째 아드님께 무릎 끓고 충성을 맹세해가며 사죄받았던 박 이사의 음해로.
| 조선시대 궁궐도 그랬다고 한다
조선시대 중종 때 '작서의 변'이 있었다. 중종은 경빈 박씨를 무려 20년이 넘게 총애하고 있었는데 그런 경빈 박씨는 '작서의 변'으로 하루아침에 궁궐에서 폐출되었다. 후에 아들인 복성군과 함께 사약까지 받았다. 그 배경에는 자순대비가 있었다. 자순대비가 경빈 박씨를 동궁전에서 발견된 불에 탄 쥐의 범인으로 음해한 것이다.
사실 경빈 박씨는 결백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로 20년이 넘는 총애 관계는 하루아침에 끝나고 경빈 박씨의 인생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전개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