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과 자연 사이

by 박민지

집 근처 농협에서 지역 농산물을 샀다. 진열대에 붙은 ‘유기농’ 표시를 보고 잠깐 망설였다. 유기농이라면 가격이 좀 나가겠지 싶은 마음이었는데, 의외로 저렴했다. 가격표를 몇 번 들여다보다가 결국 장바구니에 담았다. 오랜만에 신선한 채소도 먹고, 지역 농부님도 도울 수 있으니 괜찮은 소비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배추된장국을 끓이려 배추를 씻는데, 잎사귀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건 정말 ‘유기농 중의 유기농’이었다. 마트에서 늘 보던 공산품마냥 반듯하고 매끈한 채소가 아니라, 자연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배추였다. 순간 웃음이 났다. “이건 혹시 농부님이 자연에 기증하려고 키운 채소가 아닐까?” 기증품을 산 내가 오늘 합리적인 소비를 한 건지, 자연에 기부를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배추는 사실 농약 없이 키우기 어려운 작물 중 하나다. 아삭하고 달큰하니 우리 입맛에도 좋고, 애벌레와 달팽이, 진딧물에게도 최고의 만찬이다. 그래서 유기농으로 키우려면, 모종이 아주 작을 때부터 한랭사라 불리는 얇은 망사천을 덮어 해충의 접근을 막는다. 그래도 부족할 때는 님오일 같은 천연살충제를 쓴다. 님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오일로, 해충의 알 부화를 억제하고 성장을 방해한다. 생각보다 효과도 좋다. 나 역시 집에서 화초를 관리할 때 님오일을 쓴다. 화학약 대신 자연의 재료로 식물을 돌보는 게 마음에도, 건강에도 더 편하다.



지난주 고구마를 캐러 밭에 갔을 때, 우리 밭 배추 상태가 꽤 괜찮았다. 올해 반 고랑 정도를 심어두었는데, 사실 거의 돌보지 못했다. 아니, 그냥 심어놓기만 했다. 해충이 다 먹어버렸겠거니 하고 기대를 접었는데, 의외로 멀쩡했다. 잎은 제법 자랐고 상처도 별로 없었다. 이번에는 속이 스스로 차는 품종을 시험 삼아 심었는데, 정말로 묶어주지 않아도 서서히 속이 오르고 있었다. 아마 종자가 좋아 해충에도 강한 게 아닐까 싶었다.


자연의 일은 언제나 스스로 흘러가며, 그 사이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준다. 돌보지 않아도 자라고, 무심한 사이에도 속을 채운다. 그럴 때면 설명하기 어려운 경이로움이 밀려온다. 애벌레에게 기증된 유기농 배춧잎도 그렇다. 단순히 한 장의 잎에 불과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을 건드린다.


배춧잎 하나가 자연까지 떠오르게 만들다니 식물은 나에게 무슨 마법을 부리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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