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걷기
요즘 들어 머리가 유난히 복잡하다.
2022년부터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을 꿈꾸며 달려왔는데, 정작 지금의 나는 이룬 게 없다고 느낀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기준이 너무 높다고, 이미 많은 걸 해냈다고 말해주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마음 깊이 와닿지 않는다. 나는 3년쯤이면 스스로 기대한 목표에 도달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나는 생각보다 느리게 걷는 사람이었고, 그 사실이 나를 조금은 답답하게 했다. ‘조금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와 자책이 하루의 틈마다 불쑥 찾아왔다.
아리스토텔레스, 다윗, 테슬라, 아인슈타인. 세상에 큰 영향을 남긴 이들은 산책이 사고를 맑게 해준다고 믿었다. 그들의 말을 떠올리면서 나도 자연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자연 속에 들어가면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가 조금은 정리될 것 같았다.
운 좋게도 나는 산 아래에 산다. 집 뒤편 산길은 맨발로 걷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사람들은 맨발걷기의 효능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그저 발바닥이 흙에 닿는 감촉이 좋아서 그 길을 찾는다. 오늘은 햇살이 따사롭고 바람이 차가웠지만, 공기 속엔 묘한 따뜻함이 섞여 있었다. 맨발로 걷기에 참 좋은 날이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흙 위에 발을 디디자 생각보다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발끝을 타고 다리에 올라오는 냉기에 잠시 멈칫했지만, 곧 몇 걸음 더 내딛었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서늘한 감각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묘한 청량감이 몸 안으로 퍼졌다. 머리 뒤쪽을 타고 정수리까지 올라가는 그 느낌은 마치 막힌 통로가 시원하게 열리는 듯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차가움이라는 자극은 사라지고, 주변의 숲이 감각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맑은 새소리, 두툼한 소나무 껍질의 질감, 아직은 푸르른 풀잎, 그리고 수많은 발걸음이 다져놓은 단단한 흙길.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어제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불안과 잡음들이 조금씩 잠잠해지더니, 무겁게 짓눌리던 머리가 서서히 맑아졌다. 어느 순간에는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바닥의 냉기가 생각보다 강했기에 15분 남짓한 짧은 산책이었지만, 그 시간은 묘하게 깊게 기억에 남는다. 내 안과 밖의 소란스러움이 동시에 가라앉은 신기한 순간이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디자인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을 바라보면 피로를 느끼지 않은 채 마음을 쓰게 된다. 그러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기가 돌며, 결국 그 마음이 몸에 미쳐 신선한 휴식과 활기를 준다.” 그가 말한 문장이 오늘의 나에게는 하나의 경험으로 와닿았다.
그동안 원예치유 관련 책을 많이 읽으며 자연의 회복력에 대해 수없이 배웠지만, 오늘처럼 온전히 체감한 적은 몇 번 없다. 발바닥으로 흙을 느끼던 그 몇 분이 내게는 새로운 시작의 신호처럼 다가왔다. 다시 자신이 생겼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다.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식물과 자연이 건네는 위로와 회복의 이야기를 전하며, 오늘 내가 느낀 이 고요하고 깊은 평안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