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나는 누구보다도 노력하며 달려왔다"고 말할 수 있다.
체력이 넘치던 20대에는 하루가 헛되이 흘러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았고, 30대에는 독일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버텼다. 귀국 후에도 쉬지 않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으니, 나의 지난 시간은 늘 열정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목표를 위해 달려온 나의 노력이 자랑스러웠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무언가에 몰두할 때 삶이 제자리를 찾는 듯했고 이에 안정감을 느꼈다.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라고 믿을 수 있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나는 집에 여러 화분을 두고 가꾸고 있다. 하루의 시작은 늘 식물들 곁을 돌며 상태를 살피고 물을 주며 돌보는 일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고장이 났다. 성실해야 할 나는 성실함을 잃었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도 몸이 무겁고, 식물 곁에 다가가는 일조차 버거워졌다. 스파티필름과 크테난테는 물 부족으로 잎이 노랗게 말라갔고, 아랄레아는 해충에 시달리다 잎이 거의다 떨어졌다. 히메몬스테라는 벽을 타다 쓰러졌지만, 그 순간조차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다. 무엇 하나 손댈 힘이 없었다.
몸은 휴식을 요구했지만 마음은 쉴 수 없었다. 무기력으로 열심히 할 수 없는 상황에 오니 급격하게 불안해졌다. 그동안의 노력이 나의 삶에 안정감을 주었던 것 만큼 내 삶이 무의미해지면 어쩌나, 나는 더 이상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잠겼다.
처음 무기력을 겪었을 때 나는 그것마저도 성실하게 이겨내려 했다. 노력하면 사라질 거라 믿었지만, 곧 깨달았다. 무기력은 잠시 앓고 지나가는 감기가 아니었다. 한 번 들어오면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려 다시는 몰랐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없애려 애쓰기보다, 조금이라도 덜 무겁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
최근에는 쑥대밭이 되어버린 식물들을 정리하며 아직 희망이 있는 식물들을 살려내고 있다. 동생이 그 모습을 보고 "식물 CPR 하는 거냐"고 농담을 건넸다. 그 단어가 마음에 들어 ‘식피알’이라 짧게 줄여 부르며 유튜브 영상으로도 남기고 있다.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과정이 느린 걸음이지만 천천히 이어가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설국열차처럼 쉬지않고 매섭게 달리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다. 대신 글을 쓰고, 밖에 나가고, 테니스를 치고, 식피알을 이어가며 느린 하루를 살아간다. 때때로 아무런 성취 없이 끝나는 삶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올라오지만, 적어도 나를 다시 무기력 속으로 몰아넣지 않을 만큼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