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초 손바닥선인장
재작년 10월, 작업실 인테리어를 하던 중 친한 농장 사장님께 백년초 손바닥선인장을 얻어왔습니다. 둥글둥글한 모양이 꼭 미키마우스처럼 보여 처음부터 정이 갔지요. 햇빛 잘 드는 작업실 한쪽에 두고, 내년 봄에는 혹시나 꽃도 피고 열매까지 맺지 않을까 기대하며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장마가 끝나자마자 백년초는 갑자기 힘없이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썩은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뿌리를 파보니 역시나 고름처럼 물러 있었습니다. 무름병이었습니다. 세균성이라 옆 화분으로 옮을까 걱정돼 곧장 분리했고, 백년초와 흙은 모두 버린 뒤 화분은 락스로 소독했습니다.
죽은 백년초를 정리하고 나니, 그 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 자리엔 아직도 새로운 식물을 심을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장마는 뜨거운 공기와 함께 습도를 끝까지 끌어올리며 모든 것을 지치게 만듭니다. 마치 물속을 걷는 것처럼 팔다리가 무겁고, 해를 볼 수 없는 날씨가 이어지다 보면 마음도 함께 가라앉습니다. 저의 무기력은 그럴 때 찾아옵니다. 바깥의 감각은 사라지고, 동떨어진 뭉툭한 감각만이 남습니다. 제 안의 목소리는 항상 부정적인 이야기만 반복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만, 그 대신 미뤄둔 일들만 잔뜩 떠오릅니다. "해야 할 일을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한심하게 볼 거야"라는 상상 속에서 불안이 쌓여 갑니다. 결국 하루는 무기력과 불안 속에서 흘러가고 맙니다. 장마철에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것은 늦은 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장대비 소리뿐입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면 잠시나마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저도 백년초도 장마라는 계절을 이겨내진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니 힘든 계절도 지나갑니다. 백년초 화분의 빈자리도 익숙해지고 어쩔 땐 어떤 식물이 있었는지 잊기도 합니다. 그래도 비슷한 모양의 선인장을 보게 될 때면 가장 먼저 미키마우스를 닮은 제 선인장이 떠오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