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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Jan 26. 2024

"엄마 미워.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안 해?"

내 노선이야 정해졌지만, 가슴은 여전히 쓰렸다.

나는 아직도, 아이 친구의 엄마와 사귀는 게 어렵다. 첫째 12년, 둘째 10년, 셋째 7년, 각각의 세월들 속에 만난 동네 사람들, 어린이집과 유치원과 학교의 엄마들... 얼굴을 익힌 수백 명, 그중 인사를 하고 지낸 백여 명, 그중 눈을 맞추고 담소와 웃음을 나눈 수십 명... 그중에 내게 '친구'로 남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글쎄, 다섯 명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스스로 굳이 뽑아놓은 이런 '결과표'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역시 나는 사람 사귀는 데 젬병이구나, 하는 생각. 그거 다 필요 없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인데, 하는 생각. 내가 그렇게 매력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 뭘 잘못했나, 어떤 점을 바꾸면 달라질까, 하는 생각. 조금은 부끄럽고, 살짝 아쉽기도 하고, 진짜 궁금하기도 하고, 괜히 피곤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이제 이 이슈는 넘겨버려도 될 것 같다. 첫째는 내년에 중학교에 들어가고, 막내는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 내가 학교에서 학부모로서 특별히 활동하지 않는 한(그럴 일은 없을 테지), 앞으로 길면 2-3년 정도만 애쓰면 될 일이다. 이후로는 아이를 끼고 다닐 일도 없고, 그룹 과외활동 같은 걸 주선하거나 참여할 가능성도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일은 나를 잡아끄는 주제이기도 하다. 풀지 못한 숙제 같기도 하다. 내게 결핍된 것, 그래서 살아가면서, 아마도 평생에 걸쳐 배우고 익혀야 할 무언가와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면 쉽사리 그다음으로 넘어가지질 않는다. 물론, 이런 내가, 이런 내 삶이 크게 불편하고 아쉬워서, 바꾸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이제는 나와 내 삶의 이러함은, 불편해도 감수할 만큼, 아쉬워도 괜찮을 만큼이다.


다만, 나의 이러함 때문에 나의 아이들이 무언가 놓쳤을까? 엄마로서 주었어야 할 무언가를 아이들에게 주지 못했을까? 하는 질문 앞에선 머뭇거리고 만다. 그렇다면 내가 변해야(적어도 노력해야) 마땅...해서가 아니라, 그렇다면 변할 의향과 용기가 모처럼 생기기 때문이다.





갓난아기와 집 안에만 있다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 '놀이터'라는 세계에 입성한다. 그곳은 '정글'이기도 하고(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아노미 상태' 같기도 하지만(규범이나 가치관이 합의된 적 없다), 유아의 손을 잡고 나온 엄마들에겐 대체 불가능한 '사랑방'이자 '만남의 광장'이다. '사회인'으로 귀환한 양 스몰토크를 하고, 월령/연령에 따른 발달상황을 확인하고, 교육과 지역 전반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처음에 나는, 굉장히 흥미롭고 따스한 세계를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거의 언제나 대화할 '어른'이 있어서 좋았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공통의 대화 주제가 있어서 편했다. 그가 낯선 사람이라고 의심하거나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마치 '수학의 정석'에서 '집합' 부분만 계속 공부하는 학생처럼, 대화의 시작 언저리에만 머물렀다. 아이의 이름과 나이, 사는 곳, 형제자매, 자는 시간,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학원, 소아과, 식단... 놀랍게도 같은 이야기만 하고 또 했다.


이러한 반복 자체에 질렸다기보다(물론 그것도 맞지만), 언제나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소개팅을 할 때마다 애프터는 없고 그날로 끝인 거다. 매번. 분명 이 이벤트를 통해 어떤 사람은 연애를 한다던데, 결혼까지 한다던데...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끼리, 어린이집 등하원길에 마주친 엄마들끼리, 학교나 학원에서 오가다 인사하던 엄마들끼리, 나만 빼고 슬슬 말을 놓고, 따로 만난 모양이고, 번갈아 각자의 집에 초대하고, 날을 잡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에 갔다. (의도적으로 나를 뺐다기보다, 결과적으로 나는 빠져 있었다.) 그런 상황을 눈치채고, 미묘하게 다른 거리감에 스스로 한 발 물러서고, 아이를 통해 내 아이만 소외됐다는 걸 알고는 아이를 다독이면서 그들 앞에선 모르는 척, 혹은 의연한 척을 하는 일이 유쾌할 리가.


내가 너무 딱딱하게 굴었나 싶어 방긋방긋 웃기도 하고, 얼핏 무례한 구석이 있었나 싶어 은근히 예를 갖추고 사근사근하려고도 했다. 과하게 적극적이었나 싶어 소심한 척도 해보고, 좀 쭈뼛거렸나 싶어 오지랖을 부리기도 했다. 내 얘기를 너무 안 했나 싶어 내가 적당하다고 여기는 선보다 더 오픈하기도 했고, 인심이 삭막했나 싶어 먹거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꽝이었다. 몇 번 겨우 애프터를 받기도 했지만, 손을 잡기는커녕 썸도 못 탔다. 스스로 어색하기만 할 뿐이었다.





자의로, 타의로, 나는 그러한 '사귐'을 포기했다. 나는 그렇게 해서 관계를 맺고 우정을 쌓을 만한 사람이 아님을 인정했달까.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는 모른 채로. 아마 내 표정이, 내 눈빛이, 내 말투가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딱히 뭐가 어떻다고 설명하지 못해도, 나 역시 어떤 사람을 보면 경계하게 되고 피하고 싶어지니까. 또 어떤 사람에겐 마음의 빗장이 풀리고 말이 술술 나오고 더 웃게 되고 그러니까. (이렇게 쓰려니, 가슴이 쓰리네..)


첫인상은 선입견이었고, 관상은 비과학이었다고 깨우치게 할 만큼, 관계 초반의 서걱거림과 껄끄러움을 헤쳐나갈 나만의 비기 같은 것이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런 건 없고, 오히려 상대의 마뜩잖은 반응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나도 모르게 그들을 비추는 거울처럼 얼어붙고 뻣뻣해지곤 했다.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나를 한심해하기 싫어서, 나를 잘 모르고 나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닌 사람들 때문에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이에 대해선 놓아버리기로 했었다. 어차피 아이를 셋쯤 키우니 발달상황이 궁금하지도 않고, 웬만해선 조바심이 나지도 않고, 그 외 다른 것들에 대한 '정보'도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아이 이야기 자체가 재미가 없었다. 자식 이야기는 서로 조심스러워서, '집합'보다 더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잘난 척도 꼴사납고, '우리 애가 젤 힘들어' 배틀도 우습다.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고, 웃기도 많이 웃었고, 호의도 오갔는데, 정말 마음속의 이야기, 머릿속이 환기되거나 가슴에 파동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나누려면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건가,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언제나, 돌아오는 길엔 기가 빨렸다.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허투루 쓴 것만 같았다.


아이 친구와 그 엄마랑 자주 만난다고 아이끼리 진짜 친해지는 것도 아니고(개성이 드러날수록 한계가 오게 마련), 가뜩이나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는데 엉뚱한 데 애쓰지 말고 집에서 아이들에게 잘하자고 결론을 내렸었다.





하지만 이런 결론도, 그 과정도 어쩔 수 없이 첫째에게 제일 가혹했다. 시행착오의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실제로 기회도 별로 없었다. 첫째를 위한 만남에 줄줄이 동생들을 데리고 가야 했고, 거기서도 나는 동생들에게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첫째에게도, 동생들에게도, 친구 엄마에게도 별로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반대로 셋째의 경우는, 언니들이 엄마 없이 여기저기 다니고 집에 혼자 있을 수도 있어서, 예기치 않게, 또 자연스럽게 엄마들 모임에 종종 끼고 있다. 그사이 나도 여유로워져서, 인상과 분위기가 달라졌는지도..)


2년 전 초여름, 첫째가 4학년이었다. 금요일 저녁, 집 근처 치킨집에 온 가족이 갔다. 저녁식사를 그렇게 하는 특별한 날인데, 첫째는 온통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친한 친구들과 그 엄마들이 다른 테이블에서 모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얼추 식사는 했는지 엄마들은 맥주를 마시고, 친구들은 가게 앞 공터에서 놀았다. 첫째는 치킨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거기 끼어 놀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엄마들과 인사하면서, 내 노선이야 정해졌지만, 가슴은 여전히 쓰리다는 걸 깨달았다. 그 친구들이 다 첫째가 노는 무리들인데, 거기에 우리 아이만 빠진 것이다.


식사를 끝내고 일어나면서, 더 놀겠다고 하는 첫째를 두고 나왔다. 가까이 사는 친구가 있으니 조금 늦어져도 같이 오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엄마, 더 놀면 안 돼?"를 몇 번 묻는 동안 저녁이 지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분들은 진짜 불금을 보내려는 모양...) 이제는 안 된다고 하니, 돌아오긴 돌아오면서, 첫째는 너무 속이 상했었나 보다.




엄마, 미워.
엄마도 다른 애들 엄마처럼 남아서 기다려주면 좋은데!
그럼 집에 갈 때 같이 갈 수도 있고...




울컥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이를 달랬다. "OO이를 생각하면 그게 좋았을 텐데... 엄마는 엄마의 상황이 있어서. 엄마는 다른 방식으로 OO이에게 좋은 걸 줄게."


코끝이 시큰거렸다. "OO이가 원하는 걸 엄마가 다 해줄 수는 없어도, 이것 말고 OO이가 원하는 수많은 것 중 해줄 수 있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해..."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안 해?




이쯤엔 조금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지금 친구들 다 노는데 혼자 오는 마음이 쓰릴 거라는 거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인생은 길어! 다른 엄마처럼 안 해서 싫을 때도 있지만 좋을 때도 있을걸?!"


잠시 후, 딸은 밉게 말하는 친구 때문에 더 속상했다고 투덜거렸다. 아마, 다행히도, 마지막 말에 조금은 수긍을 했던 것 같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른 엄마들과 같아지려는 노력은 언제나 어려웠고 잘 되지 않았지만, 다른 엄마와 같지 않아서 좋은 엄마가 되는 건 그보다 결과가 낫다(딸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러니 이쪽으로 가는 게 맞지 않겠나. 내가 어딘가 조금 이상하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못 되는 것은, 살면서 찬찬히 풀어보는 걸로...



물어봐줘서 다행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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