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하루

엄마, 그거 버려야 돼. 쥐가 먹었어.

by 모도 헤도헨


똥_



중지를 똥구멍에 집어넣었다 뺀다. 좀 나아지는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똥이 나오려고 한다. 이번엔 더 오래, 더 깊이 넣는다. 손가락을 빼서 코에 가져간다. 쿰쿰하면서도 달큰한, 익숙한 냄새. 더는 참을 수가 없다.


“엄마… 똥 마려워요.”


엄마가 깨지 않으면 다시 손가락 요법을 써볼 참이었는데, 다행히 엄마가 부스스 일어난다. 아무 말 없이 방문의 한가운데, 초라하게 달린 고리를 풀고 부엌으로 나가는 엄마를 따라 나도 일어선다.


엄마는 부뚜막 한켠에 놓아둔 신문지를 세탁기와 부뚜막 사이에 펼쳐 깐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로 그 위에 쪼그린다. 힘을 줄 것도 없이 가래떡 두 줄기가 힘차게 나온다. 이어, 당연하다는 듯 오줌도 따라 나온다. 엄마는 휴지로 밑을 닦아주고서 말한다.


“들어가 자.”


‘한밤중에 똥이 마려워 깨는 일은 제발,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자마자 나는 잠이 든다.




“아유. 더러워! 더럽게 누가 똥을 여기다 버렸어?”


단단히 성이 난 목소리다.


“응? 누가 변소 놔두고 신문지에다 똥을 싸지르고 여기다 버렸냐고!”


나는 이불에서 튀어나와서 엄마를 붙잡는다.


“엄마, 가지 마. 나가지 마.”


“상희야. 걱정 말고, 세수하고 학교 갈 준비하고 있어.”


엄마는 숨을 한 번 짧게 내쉬고는 문을 열고 나간다. 혼자 남은 나는 자꾸만 눈물이 솟아나려고 해서 꾹 참고 일어난다. 부엌에 나가 양치하고, 세수하고, 어제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는다. 방의 한 면, 위쪽에 난 어른 엉덩이만 한 창문으로 소리가 들린다.


“죄송합니다. 공동화장실이 막혀서… 개들이 헤집을 줄 몰랐어요.”


“그렇다고 여기다 이렇게 버려? 응?”


“죄송합니다.”


구경꾼들이 있는 모양이다. 한쪽에서 “정택 엄마, 이제 그만하지.”, “한동네에 살면서… 이런 일로…” 하는 소리가 난다.


“이 꼴을 어쩔 거야? 흉측해서 증말…”


“제가 치울게요.”


쓰레기장에 버렸다고 난리가 난 걸, 또 어디에 치울 수 있는 걸까? 나는 궁리를 해본다. 집안에 들여와야 하는 걸까? 지난번에는 엄마가 어떻게 했지…?


반장 아줌마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몇 번 더 나더니 이내 고요해진다. 나는 엄마와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아 방문을 열고 신발을 신는다. 갑자기 ‘꼬르륵’ 소리가 난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 뚜껑을 열어 물을 마신다. 차가운 물이 뱃속을 깨우는 것 같다. 이내 신호가 온다.


“아, 안 돼….”


나는 계단을 두 개씩 오른 다음, 전속력으로 앞 동을 향해 달린다.


“딩동, 딩동!”


‘빨리빨리….’


이윽고 문이 열리고 한나가 나온다.


“한나야! 안녕? 같이 학교 가려고 왔어. 너, 아직 준비 안 했네? 들어가서 기다려도 돼?”


외운 것처럼 나는 순식간에 내뱉는다.


“아, 아직… 이, 이제 나가려고 해, 했는데….”


“아, 그랬구나! 그럼, 가자! 아, 나 갑자기 화장실이 급한데, 좀 싸고 가도 돼?”


어리둥절해하는 한나를 살짝 밀치고 주방에 계신 한나네 엄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걸어 화장실로 들어간다.


변기에 앉자마자 폭포 소리가 난다. 뱃속이 드디어 편안해진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한나는 모든 걸 깨달았다는 듯 쓴웃음을 짓고 있다. 나는 상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한나야, 가자!”


“너 또, 똥 싸려고 우, 우리 집에 와, 왔지?”


“들켰네. 헤헤.”


“가, 같이 가자고 해, 해도 머, 먼저 가더니.”


“내일부터 날마다 올게.”


“지, 진짜?”


“응. 진짜. 약속!”


한나가 웃는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더 못생긴 얼굴이 된다. 울긋불긋한 눈가 아래 하얀 때 같은 것이 떨어질 것 같다.






돈_



선생님이 시험지를 나눠준다. ‘100’. ‘2학년 7반 고상희’ 밑에 빨간색으로 쓰인 숫자를 보고 나는 턱에 한 번 힘을 준다. 입술이 올라갔다 내려온다.


“100점 맞은 사람이 한 명뿐이네.”


나는 선생님의 입을 보며 그다음 말을 기다린다. 더 말이 없다. 올라갔던 입술이 내려온다. 선생님은 나를 한 번 흘끗 보더니 책을 편다. 눈두덩을 하늘색으로, 볼을 분홍색으로 색칠한 얼굴이 화난 것 같다.


지난번엔 100점을 맞은 사람이 세 명이었다.


“100점 맞은 사람이 세 명이야. 이은주, 또 100점이구나. 잘했어. 최시원, 갈수록 점수가 오르네. 잘했다. 고상희.”


다음 말을 기다렸는데 선생님은 거기까지만 말했다. 그리고 이은주를 보고 한 번, 최시원을 보고 한 번 활짝 웃어주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100점을 맞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날 엄마에게 시험지를 보여주니 엄마는 살풋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은주랑 최시원도 100점 맞았어. 그런데 걔네들은 칭찬해주고 나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엄마는 눈썹을 한 번 꿈틀하더니,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다. 청소당번이어서 청소를 끝내고 선생님께 검사받으러 교무실에 갔는데 엄마가 저만큼 걸어 나가는 것이 보였다.


“엄…”


교무실 앞에선 소리 지르면 안 된다는 것이 생각나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학교에 오다니. 이 시간에 일하지 않고… 그런데 왜 나를 만나지도 않고 그냥 갔지,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그때 선생님이 나왔다. 나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오, 우리 상희 왔구나.”


“청소 다해서요….”


“그래그래, 잘했다. 참, 지난번에 100점 맞았지? 우리 상희는 참 똑똑하구나.”


그리고 두 팔을 벌려 나를 안는 시늉을 하고 내 등을 툭, 툭 두드렸다. 내 코가 선생님의 폭신한 배에 퐁, 퐁 닿았다. 나는 옷에서 나는 꽃향기 같은 것을 맡으며 선생님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이상했다. 딱 일주일 후 선생님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게 웃지 않았고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를 보고 웃게 하려면 엄마가 다시 학교에 와야 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한테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웃으면 됐다. 나는 시험지를 접어 가방에 넣는다.






개_



수업이 끝난 후 컴퓨터실로 간다. 컴퓨터 선생님은 수요일마다 예배를 드린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이야기를 해주신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그다지 재미도 없지만, 예배가 끝나면 나눠주는 빵과 우유 때문에 나는 거르지 않고 간다. 오늘은 일곱 명이 모였다.


“오늘도 예배드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예배드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날개 아래 보호해주시고”


“오늘 하루도 주님의 날개 아래 보호해주시고”


“주님의 손길로 지켜주세요.”


“주님의 손길로 지켜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선생님의 기도를 따라하는 걸로 예배가 끝난다. 보름달빵과 딸기우유가 꿀맛이다. 아침부터 꼬르륵대던 뱃속이 드디어 조용하다.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날이 덥다고 아이스크림까지 나눠주신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으로 걸어간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는 아무도 없다.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며 터덜터덜 걷는다. 모퉁이에 있는 빨간 대문 앞에 똥개가 앉아있다. 날마다 저러고 있다. 개도 더운지 혀를 쭉 빼고 헐떡인다.


나는 갑자기 개를 약 올리고 싶어진다. 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다음, 아이스크림을 든 오른팔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내리며 아이스크림을 입으로 가져간다. 혀를 쭉 내밀었다가 ‘하알짝’ 하고 빨아먹는다. 그리고 찡긋, 윙크를 하고 씽긋, 웃는다.


개가 일어난다. 그리고 혀를 내밀고 ‘헥헥’ 하더니 내 쪽으로 걸어온다. 개 목걸이에 줄이 달려 있지 않다. 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뒤돌아서 뛰기 시작한다. 개가 “컹컹” 짖으며 쫓아온다. 나는 다리가 부러질 것처럼 뛴다. ‘컹컹’ 소리가 커지고 ‘타다닥, 타다닥’ 개의 발소리도 가까워진다. 뒤를 돌아본다. 발을 물릴 것만 같다.


“우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나는 것처럼 뛴다. 정말 나는 것 같다. 발바닥에 불이 난다. 머리통이 불타오르는 것 같다. 멍멍해진 귓가에 ‘컹컹’ 소리가 울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참을 나는 듯 뛰다가 돌부리에 걸린다. 몸이 붕 떠오른다. 몸뚱이가 떨어지면서 양 무릎과 왼손바닥과 오른 팔꿈치가 땅에 먼저 부딪힌다. 후다닥 둘러보니 개는 없다. 아이스크림은 무사하다. 나는 줄줄 흐르는 피와 줄줄 흐르는 아이스크림을 번갈아 바라본다. 아이스크림을 할짝인다. 물컹한 아이스크림이 미지근하다. 한입에 먹어버린다.






혀_



절뚝거리며 빌라단지에 들어서는데 놀이터 벤치에 한나가 앉아있는 게 보인다.


“한나야!”


한나는 일어나 나에게 온다. 가까이 오고서야 무릎과 팔꿈치, 손에 난 상처와 피를 본다. 놀란다.


“왜, 왜 그래?”


“으응, 별거 아니야. 나 기다렸어?”


한나는 무릎을 꿇고 심각한 얼굴로 내 상처를 들여다본다. 내가 일으킨다. 한나의 손에 든 가방을 툭 치자 한나가 열어 보인다. 공책과 필통, 그리고 계란과자와 야구르트가 들었다.


“수, 숙제 같이 하자.”


“그래! 우리 집으로 가자.”


한나가 내 팔을 자기 어깨에 둘러 절뚝거리는 나를 붙든다.


102동이라 쓰인 입구로 들어가 지하실로 내려간다. 지하실 계단 왼쪽 우리 집 앞에서 웬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후다닥 바지를 추스른다. 우리를 지나쳐 황급히 나가려다 우리 둘 뒤로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우리 쪽으로 돌아선다. 아저씨 이마에도 땀이 흐르고 있다.


“안녕? 학교에서 이제 돌아오는구나?”


“네….”


“아저씨는 책을 파는 사람이야. 여기 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가려던 참이었어.”


“네에….”


“책 좀 볼래?”


그러더니 어깨에 멘 가방을 열어 책 한 권을 꺼낸다. 나는 무슨 책인가 호기심이 일어 고개를 내민다. 한나는 눈만 끔뻑이고 있다. 아저씨는 한나를 흘끔 보더니 내게 책을 준다. 두꺼운 책은 생각보다 무겁다. 열어보니 페이지마다 사진이 있고 글자가 빼곡하다. 별로 재미없을 것 같아 아저씨에게 도로 준다.


“잘 봤니?”


“아, 저는 별로…”


“책을 봤으니 값을 내야 하는데.”


“네? 그냥 보기만 했는데. 무슨…”


“원래 그런 거야. 그런데 너희는 어린이니까 돈이 없겠지.”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대신 혀를 내밀어봐.”


나는 아저씨를 빤히 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혀를 내민다. 아저씨는 무릎을 땅에 대더니 내 혀를 입에 넣고 빨기 시작한다. 나는 흠칫 놀라지만 움직이지 못한다. 더러운 느낌이다. 아저씨는 한참 빨다가 입을 빼더니,


“이제는 네가 빨아봐. 아저씨가 한 것처럼.”


그리고 혀를 뺀다. 나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입을 벌린다. 아저씨가 혀를 집어넣는다. 나는 차마 빨 수는 없어서 가만히 물고만 있다. 아저씨가 이상한 신음소리를 낸다. 내 손을 잡은 한나가 손을 마구 흔든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든다.


“꽈악.”


아저씨 혀를 깨문다.


“아악!”


나는 더 꽉 문다. 아저씨가 내 양 볼을 꽉 눌러 입을 벌린 다음, 나를 밀친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는다. 입에서 녹슨 못 맛이 난다. 아저씨는 침과 피가 묻은 입을 움켜쥐고 나를 노려본다. 갑자기 한나가 소리를 지른다.


“사, 살려주세요!! 도, 도와주세요!!!”


아저씨 눈썹이 올라간다. 지하실 저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아저씨가 갑자기 뒤돌아 뛰어간다. 계단을 오르다 내려오더니, 가방을 들고 다시 올라간다. 중간에 한 번 계단에 걸려 넘어진다.






불_



“무슨 일이니?”


후다닥 올라가는 아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언니’가 묻는다. 지하실 오른쪽 계단 쪽에 사는 신혼부부 중 아내다. 나는 그를 ‘언니’라 부른다.


“저 아, 아저씨가, 혀, 혀를… 빠, 빨라고….”


“뭐?”


나는 갑자기 목이 콱 막힌다. 삼켜지지 않고 입 속에 고인 침을 퉤, 퉤, 퉤 계속 뱉는다. 그때마다 눈물방울도 뚝, 뚝, 뚝 떨어진다. 옆에 있던 한나도 훌쩍인다.


“안 되겠다. 들어와. 여기서 놀아.”


단칸방에 티비와 냉장고와 서랍장과 화장대가 신기하게 다 들어가 있다. 서랍장 아래 이불이 개켜 있다. 바닥에 저 이불을 펴면 딱 맞을 것 같다. 소반 위에 한나가 가져온 계란과자와 야구르트를 꺼낸다. 언니는 냉장고에서 포도를 꺼내 씻어 온다.


“먹어.”


나는 야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입속에 넣는다. 쭈욱 빨아들인다.


“진짜 웃기는 놈이네! 쪼그만 애들한테.”


언니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더니 내 등을 토닥이고는,


“먹어, 먹어. 많이 먹어.”


그리고 한나를 바라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한나라고? 잘했어. 음.”


우리는 먹다가 배를 깔고 엎드려 숙제한다. 탈탈탈, 회전하며 방안에 바람을 일으키는 선풍기가 쉬지 못했는지 힘든 소리를 낸다.


“이, 이거 잘 모, 모르겠어.”


나는 가끔 한나에게 설명해준다. 혼자 하는 것보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 재미있다. 언니는 공책 같은 거에 뭘 쓰고 있다. 계산기를 자꾸 두드리며 혼잣말을 한다.


“어디서 더 빼야 되나…. 에잇. 없이 살아보지 뭐.”


탈탈탈, 힘겹게 돌아가는 선풍기에도 불구하고 가끔 땀을 닦아야 했다. 우리는 숙제를 하다가, 포도를 먹다가, 땀을 닦다가, 언니랑 얘기를 하다가, 깔깔대고 웃다가… 깜빡 잠이 든다.




“부, 부, 부, 불이야!!”


한나가 일어나서 나와 언니를 발로 차고 있다. 언니도 벌떡 일어난다.


“어디?!”


답을 들을 것도 없이 우리는 선풍기에서 불이 나는 걸 본다. 선풍기는 여전히 탈탈탈 돌아가는데. 뒤통수와 붙은 얼굴 한가운데서 불이 타탁타탁 소리를 내며 날름대고 있다. 언니는 황급히 선풍기 코드를 뽑는다. 그리고 이불을 펴서 선풍기를 덮는다.


팡, 팡, 팡. 언니를 따라 우리도 두 손으로 이불을 두드린다. 한참 지나고 언니가 이불을 들어본다. 불은 없다. 선풍기와 이불이 군데군데 새까맣게 그을렸다.


“휴우.”


언니가 한숨을 내쉬고 아무렇게나 눕는다.


“휴우.”


나도 따라 눕는다.


“휴우.”


한나도 따라 눕는다.


“이불이랑 선풍기를 사야겠네.”


언니가 다시 한번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우리를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그래도 다행이야. 우리가 불을 껐네.”


한나와 나도 따라 웃는다.






땅_



숙제가 끝나고 우리는 언니 집을 나온다. 땡볕이 조금 누그러졌다. 우리는 놀이터로 간다. 아이들이 얼음땡을 하고 있다.


“우리도 끼워줘.”


“쟤도?”


성호 오빠가 한나를 턱으로 가리킨다.


“응.”


나는 한나 손을 꼭 잡고 대답한다. 다들 한나를 한 번씩 훑어본다.


“술래가 누구야? 가위바위보 해.”


나는 서둘러 말한다.


얼음땡을 한다. 뛰고 멈추고 도망치고 다른 아이를 살려주고 숨을 몰아쉬고 땀을 닦는다. 머릿속엔 친구들 움직임뿐이다. 신난다.


“혜인아, 이제 들어와라.”


혜인이가 간다.


“민수야, 저녁 먹으러 와!”


민수도 간다.


남은 아이들끼리 신발숨기기를 했다가, 막대그래프를 했다가,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했다가, 다방구를 한다.


“한나야, 저녁 먹자~”


한나가 나에게 간다고 인사한다. 한나의 울긋불긋한 얼굴이 더 붉다. 땀이 난 얼굴에 머리카락이 덕지덕지 붙었다. 하얀 때 같은 것과 얼룩진 땀으로 여전히 볼품없는 한나에게, 가지런한 이를 보이며 함박웃음 짓고 있는 한나에게 나도 손을 흔든다.


“내일 아침에 갈게.”


한나가 씽긋 웃더니 집으로 뛰어간다. 나는 가슴이 뻐근하다. 성호 오빠도 가고, 연정 언니도 가고, 진기도 간다. 남은 것은 정희와 나.


“땅따먹기 할래?”


놀이터 흙바닥에 돌멩이로 커다란 네모를 긋고, 나는 이쪽, 정희는 저쪽 모퉁이에서 손바닥만 한 땅으로 시작한다. 손가락으로 돌멩이를 네 번씩 튕겨서 내 땅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땅을 키우다가 내가 정희 땅을 몽땅 따먹었다.


“이거 무효야.”


“뭐? 왜?”


정희가 일어나 내 땅을 나타내는 금을 발로 지우면서 말한다.


“아까 너 반칙했어.”


“뭐야, 너? 지니까 이러기냐?”


나는 벌떡 일어난다. 정희는 나보다 한 뼘이나 키가 크다.


“흥, 그래, 잘 났다. 이런 가짜 땅 많이 따먹어라.”


“가짜 땅?”


“그래, 가짜 땅. 너는 땅이 없잖아. 너네 지하실 집도 너네 거 아니니까.”


나는 화가 나서 정희의 가슴을 밀친다. 정희는 엉덩방아를 찧는다. 나를 노려보더니 일어나 내게 달려든다. 정희가 내 머리채를 꽉 잡는다. 나는 두 손을 마구 휘두른다.


“정희야~ 정희야, 와서 밥 먹어!”


정희가 멈칫할 때, 머리로 정희 배를 받았다. 정희는 또 엉덩방아를 찧는다. 정희는 일어나 씩씩거리더니,


“너, 우리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너는 아빠도 없지?”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빗는다.


“아빠도 없는 게… 엄마, 아빠~~~~!”


정희가 뒤돌아 뛰어간다. 놀이터엔 아무도 없다. 나는 갑자기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는다.


“씨이….”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깜빡. 주륵, 주륵. 눈물을 닦고, 코를 한 번 훌쩍인다. 일어나 터덜터덜 집으로 간다.






쥐_



나도 저녁을 먹는다. 방 한가운데 상 위의 동그란 스뎅 통 뚜껑을 여니 엄마가 아침에 해두고 간 밥이 있다. 부엌에서 숟가락, 젓가락을 가지고 오고, 냉장고에서 김치와 콩자반을 꺼내 상에 놓는다. 티비를 켜고 상 앞에 앉는다. 숟가락으로 굳어버린 찬밥을 퍼서 입에 넣는다. 계속 씹으면 단맛이 난다. 콩 두 알, 김치 한 쪽도 먹는다. 먹다가 만화를 보다가, 먹다가 만화를 보다가, 만화에 빠진다. 혼자 낄낄대고 웃다가, 온몸의 털이 곤두선다. 밥 위에 쥐 두 마리가 앉아서 내 밥을 먹고 있다.


“꺄아아악!!!”


쥐들도 화들짝 놀랐는지 순식간에 냉장고 밑으로 들어간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가슴에서 치는 방망이질 소리가 머릿속에서 퉁, 탕, 퉁, 탕 울린다. 나는 이 방을 나가야 할지, 그대로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다. 밥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뚜껑을 덮어버린다.


“너희들, 거기서 나오는 게 좋을 거야.”



“아니다. 너희들, 지금은 절대 나오지 마.”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너희들 지금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몰라.”



“나 되게 무서운 사람이거든. 어린애로 보일지 몰라도 말야.”



“근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떻게 내가 있는데, 내 앞에서 내 밥을 먹냐….”



“너희들 너무하다, 진짜. 내가 없을 때 나오든가….”



눈물이 나려다가 피식, 웃음이 난다. 쥐와 얘기를 하고 있는 내가 우습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티비라도 보면서 잊고 싶은데, 아까처럼 재미있지가 않다.


그때 엄마가, 들어온다.


“상희야~”


“엄마!!”


“응, 상희야. 오늘 잘 지냈니?”


엄마가 내 옆에 앉아 흐트러진 내 머리를 손으로 쓸어낸다. 나를 보고 웃는다. 주름이 깊다.


“응…”


“저녁은 먹었어?”


엄마가 말하면서 밥통 뚜껑을 연다.


“왜 이렇게 많이 남겼어…? 입맛이 없어?”


“엄마….”


나는 갑자기 코끝이 찡, 하더니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엄마, 그거 버려야 돼. 쥐가 먹었어.”


“뭐?”


“쥐가, 쥐가 냉장고 아래에 있어. 두 마리나….”


엄마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냉장고를 본다.


“엄마, 우리 아빠는 왜 집에 안 와?”


“상희야, 엄마가 말했잖아. 아빠는…”


“엄마, 왜 우리는 화장실도 없어?”


“상희야, 이제 화장실 고쳤대. 화장실 가고 싶니? 엄마가 같이 가줄게.”


“우리 화장실 말이야. 흑. 우리 집 화장실… 흑흑. 엄마, 아까 어떤 아저씨가 왔단 말이야. 그 아저씨가… 흐흐흑. 엄마, 아까 언니네선 불이 났었고. 흑흑흑.”


“상희야. 울지 마. 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응?”


엄마는 나를 안는다. 나는 하루 동안 참았던 것이 복받치듯 눈물로 쏟아진다.


“엄마, 우리 이사 가면 안 돼? 응? 흐흐흑”


“그래, 상희야…. 응, 이사 가자.”


“엄마, 우리 이사 가자. 화장실도 있고 현관문도 있는 집으로…. 응? 흑흑.”


“응, 그래, 이사 가자.”


나는 언제 갈 거냐고 묻지 않기로 한다.


“엄마, 나 또 100점 맞았어.”


“아….”


엄마는 나를 본다. 살풋 웃는다. 엄마의 주름에서 기운이 나는 것 같다.


“엄마, 나 졸려.”


엄마는 상을 문 쪽으로 치우고 한쪽에 개켜둔 이불과 베개로 잠자리를 만들어준다. 엄마는 나를 안아 이불에 누인다. 엄마 목에 코를 대고 살 냄새를 맡는다. 복숭아 냄새 같기도 하고 바람 냄새 같기도 한, 달콤하고도 아득한 냄새.


“자, 얼른 자. 상희야. 엄마도 곧 치우고 잘게.”


나는 코를 벌름거려 가슴에 엄마 냄새를 담는다. 스르륵, 눈이 감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