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악몽

내 이름 같은 거, 기억 못할지도 몰라.

by 모도 헤도헨



“그때는… 다른 인격이 나왔던 것 같아.”


“허!”


지현의 말에, 윤영은 자기도 모르게 반응했다. 콧방귀인지 헛웃음인지, 막상 소리 내놓고 놀란 것은 윤영이었다.


“허, 험. 콜록. 콜록.”


윤영은 허둥대며 변명을 하려다가 지현의 눈을 보고 그만두었다. 그녀는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음, 그러니까 소풍에서 우리 모둠은…”


“아우, 입냄새!”


우식은 손으로 코를 가렸다. 선경은 아무 말도 못 들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소풍에서 우리 모둠은 콩트를 하면 어떨까? 6학년 전체 학생 대 선생님들로 나누고, 두 사람이 각 대표가 되는 거야. 그리고 서로에게 바라는 것을 말하고 어긋나다가 이해하는 이야기. 어때?”


아무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우식은 여전히 코를 막고 여차하면 또 입냄새 타령을 할 태세였다. 효은과 기범은 선경의 의견이 꽤 괜찮다고 생각해 좋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될지 지현의 눈치를 살폈다. 지현은 히죽히죽 웃을 뿐이었다. 그때 윤영이 지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는 듯 말했다.


“야, 임선경, 너 입 가리고 말하랬지!”


“아우, 입냄새. 진짜 언제 짝 바꾸는 거야? 이 괴로움을 당최 누가 알아주나!”


기다렸다는 듯 우식이 맞장구를 쳤고, 효은과 기범은 우스꽝스러운 우식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키득대던 지현이 말했다.


“춤추자, 우리. HOT.”


“그래, 그게 좋겠네!”


윤영의 동의로 논의는 끝났다. 윤영은 선경을 보았다. 지난번처럼 울 줄 알았는데, 실실 웃고 있었다. 볼 한쪽에 보조개가 깊게 패면서 덧니가 드러났다. 습관대로 머리카락을 귀에 꽂았다. 끝을 가볍게 펌한 단발머리에 리본이 달린 머리띠는 하얗고 보송한 얼굴과 어울렸다. 그녀의 입에서 지독한 입냄새가 나는 것은 의외였다. 그리고 이렇게 바보같이 웃고 있는 것도 의외라면 의외였다.



ㅡ별 생각 없었어. 그냥, 의견이 달랐던 거야.




“어이, 임선경!”


“야, 입냄새! 거기 서!”


남자 애들 두어 명이 따라오는 줄 알았다. 뒤돌아보니 열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선경은 갑자기 눈앞이 캄캄했다. 머리 한구석에서 도망가라고 외치는 소리가 났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야, 얘기 좀 하자?”


“무, 무슨, 얘기?”


네댓 명이 선경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중에 지현의 남자친구 상훈이 보였다.


“네가 그렇게 깝친다며? 뭘 믿고 그러냐?”


“내가 어, 언제?”


나머지 예닐곱 명이 선경의 뒤쪽으로 와서 선경이 빠져나갈 수 없이 빙 둘러섰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꽉 막혀 숨쉬기도 어려웠다.


“네가 그렇게 춤을 잘 추냐? 엉?”


선경은 하마터면 “아~ 소풍 때?”라고 물어볼 뻔했다. 그때, 춤이 끝나고 담임이 자신에게만 “오, 선경이 제법인데.”라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바보같이 웃지 않으려고 했지만, 또 보조개가 팼다.


“어쭈? 웃어?”


뒤에서 누군가 선경의 가방을 밀었다. 선경의 몸은 상훈에게 닿았고, 상훈은 기다렸다는 듯 선경을 밀어냈다. 고약한 돌림이 시작됐다. 선경은 남자 아이들이 손으로 발로 밀칠 때마다, 마치 급전을 구하는 사람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붙었고, 그때마다 다시 밀쳐졌다. 선경은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달려갈 때마다 다가오는 건 화가 난 건지 비웃는 건지 무료한 건지 알 수 없는 표정들뿐이었다. 마침내 선경은 자비를 구하는 데 실패하고 무릎을 꿇었다. 넘어진 선경에게 상훈이 침을 뱉는 것으로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나대지 마라.”



ㅡ상훈아, 그러지 마. 그렇게까지 해달라고 한 건 아니야.




“그래서 고막이 찢어졌대.”


“헐! 얼마나 세게 따귀를 때렸으면!”


“내 말이. 그래서 임선경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는데, 왔는지도 모르게 조용했대.”


“난리를 친 게 아니고?”


“응, 그런데 그 다음에 담탱이가 생난리를 치는 바람에….”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효은은 말을 멈췄다. 효은의 엄마가 롤케잌과 포도가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신효주, 신효은. 시험공부는 안 하고 웬 얘기들이야?”


“엄마, 걔 있지, 효은이네 반에 차지현이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맨날 임선경 괴롭히던 애. 이전퇴학 당했대.”


“아이고, 결국 그렇게 됐구나. 걔는 왜 그렇게 친구를 못살게 군대니? 남의 애니까 가만있었지, 우리 애한테 그랬으면….”


“엄마. 효은이 듣는 데서 못하는 얘기가 없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남의 애라서 가만있었다니….”


“아아니, 그러니까, 걔 엄마도 아닌데 내가 나서면 이상한 거 아냐. 멀쩡한 엄마아빠가 있는데.”


“헐.”


효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효은은 선경을 볼 때마다 갑갑했던 마음이 괜히 엄마를 향해 터졌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엄마, 내가 당했으면 엄마만 겨우 나섰겠네? 내가 아무 잘못 안 했어도? 그러니까 부모도 힘이 없고, 아무것도 안 변하지!”


효은 엄마는 느닷없는 공격을 받고 어이가 없었다.


“아니, 네가 왜 당해? 응? 네가 어디가 어때서? 네가 뭘 잘못했다고 너를 괴롭혀? 그 임선경이라는 애는 입냄새가 심했다며!”


“아유, 엄마. 그건 핑계지. 엄마까지 애처럼 왜 그래?”


자신 있게 그건 핑계라고 말했지만, 효은도 그 이유가 뭔지 뾰족이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아니, 그러니까…”


“친했다는데, 원래. 둘이 친해서 맨날 서로 집에 놀러가고 그랬대.”


“그런데 왜 갑자기 그렇게 틀어졌는데?”


“모르지, 그건. 어쨌든 5학년 때부턴가 선경이는 학교가 지옥이었지.”



ㅡ너도 왜냐고 묻지 않았잖아. 왜 갑자기 너를 피하냐고, 왜 그때 거짓말을 했냐고.




“지현이가 만 원을 주고 갔다고?”


“응…. 여기 액자 뒤에 있었다면서.”


“휴. 지현이가 가져갔고만.”


선경의 엄마 입에서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엄마, 진짜 없어진 거 맞아? 확실히 거기 둔 거 맞냐고요.”


“그래, 여기 핸드백에 20만 원 넣어뒀다니까.”


“그리고 윤영이랑 우식이도 오늘 같이 놀았어요.”


“윤영이랑 우식이는 부족한 애들이 아니잖아.”


선경의 표정은 멍했다. 선경 엄마는 멈칫했다.


“선경아, 엄마는 솔직히 지현이가 가져간 것 같다. 자기가 훔쳐놓고 괜히…”


선경의 눈에서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선경아, 이제 지현이는 우리 집에 안 데리고 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웬만하면 같이 놀지 말았으면…”


엄마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선경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가만히 문을 닫았다. 선경 엄마는 그런 선경이 애처로우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걔는 고작 열한 살짜리가 어쩜 그렇게 맹랑한지….”



ㅡ차라리 나한테 물어보지. 한 번만 물어보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를 시험한다고 생각했어.




“이야. 반갑다!”


“야, 너 나 없는 동안 짱 행세하고 다녔다며.”


“그래, 이전퇴학 간 학교에서 또 이전퇴학 맞아 돌아올 줄 누가 알았냐!”


“아, 씨발. 존나 쪽팔려. 그 얘기 그만해라.”


“크크, 아무튼 졸라 환영이다. 그런데 담배 좀 작작 펴라. 가까이 오기만 해도 냄새가 그냥….”


윤영을 비롯한 패거리는 지현이 오자, 예전의 위세를 금방 회복했다. 선생님들은 기가 막혀 하거나 쯧쯧, 혀를 차는 쪽이었다.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현이 원래 그렇게 쭉 있었던 것처럼 지냈다. 지현의 패거리만큼 사정이 달라진 것은 선경이었다. 지현이 사라지고 눈에 띄게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등하굣길에 누군가 인사를 한다든가 체육시간에 짝이 생긴다든가 하는 식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선경은 다시, 언제나 혼자였고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운동회 날도 마찬가지였다. 반대표로 계주를 나가는 선경에게 같은 반 어느 누구도 응원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체육선생님인 담임만 들떠서, “우리 선경이, 파이팅! 선경이가 마지막 주자니까 백팀이 분명이 이길 거야! 하하하!”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청팀! 이겨라! 청팀! 이겨라!”


정말로 선경은 막판에 청팀 주자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었다. 청팀을 응원하는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결승선에서 호루라기를 입에 문 선경의 담임은 반 아이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어서 응원하라는 뜻인 걸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선경네 반은 물론이고 운동장 어디에서도 백팀을 응원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아슬아슬하고 긴박한 순간에 백팀 응원소리가 빠졌다는 것은 기이했다. 마치 축구 원정경기에 스트라이커가 혈혈단신 와서 페널티킥을 차기 직전 같았다. 같은 팀도 없었고 함성도 없었다. 하지만 끝내 선경은 역전에 성공했고, 두 팔을 들고 결승테이프를 끊었다.


활짝 웃는 선경에게 날아온 것은, 돌이었다.


“툭.”


“딱!”


하나둘 돌멩이가 날아왔다. 어떤 것은 아팠고, 어떤 것은 견딜 만했다. 선경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돌을 피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맞고 떨어지거나 맞지 않고 발 아래로 굴러온 돌멩이들을 세기 시작했다.


“마흔하나, 마흔둘, 마흔셋…”


그때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삐이익!!! 야, 너희들 뭐하는 거야? 응? 당장 멈추지 못해?!”



ㅡ무료했을 뿐이야. 나는 그냥 돌 하나 던졌다고. 다들, 왜 그러는 거야.




“선생님, 안녕하세요. 임선경 엄마예요. 선경이 좀 데려갈게요.”


시를 읽던 국어선생은 느닷없는 방문객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밑에서 담임선생님과 이야기했어요.”


그제야 국어선생은 안경을 벗고 눈짓으로 선경에게 나가보라고 했다. 선경은 서둘러 책과 필통을 가방에 넣었고, 눈물을 한 방울 뚝, 흘리더니 가방을 메고 교실 문을 나섰다.


“뭐야?”


“쟤, 어디 가?”


안경을 고쳐 쓴 국어선생이 시를 이어서 읽자 웅성거리는 소리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운동회 날 일로 왔을까?”


윤영이 지현에게 속삭였다. 지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그때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경을 본 마지막이었다. 선경은 이후 며칠 학교에 나오지 않다가, 전학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며칠 사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는 소식을, 담임은 아무런 감정을 싣지 않고 말했다.


“장례식이, 끝났다고요?”


“뭐?”


“장례식이 다 끝나고 얘기해주는 거냐고요!”


“야, 차지현! 네가 무슨 상관이야? 알려줬으면, 네가 거길 갔을 거야? 이 자식, 완전 웃기는 새끼 아니야? 네가 허구헌날 선경이 괴롭힌 거, 여기 모르는 사람 있냐? 선경이한테 그 따구로 한 자식이…”


드르륵, 쾅!


“또 나가냐? 응? 자식이, 학교를 자기 멋대로 왔다 갔다 하고…. 어휴.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해서 저런 놈 담임을 하고 있는지. 내가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그날 지현에게서 평소보다 담배 냄새가 더 많이 났다.



ㅡ알았으면 갔을 거야. 가고 싶었어.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어. 아니야, 내가 어떻게 거길….




“오늘 혼자 온 사람?”


지현은 조금 머뭇거리다 손을 들었다. 모든 이목이 지현에게 집중됐다. 담임선생님은 본인이 물어놓고도 설마 초등학교 입학식에 혼자 온 학생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는지, 잠시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사이 지현은 손을 계속 들고 있었다. 핑그르 눈물이 맺혔다.


지현의 엄마는 오늘 공장을 쉴 수가 없었다. 아무 때고 남이 하는 복덕방에 나가 좀 도와준다고 앉아서 장기나 바둑을 실컷 두다가, 아무 때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지현의 입학식을 간곡히 맡겼다. 대충 대답을 하기에 엄마는 안심하고 공장에 갔다. 지현은 친하지 않은 아빠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아빠는 별 말 없이 골목을 몇 번 돌더니, 한 집 앞에서 느닷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선경 아빠, 오늘 입학식 가지? 나 급한 볼일이 생겨서, 아이 좀 맡길게. 부탁해요.”


지현은 기겁했다. 하지만 아빠는 벌써 선경의 손을 놓고 어깨를 한 번 툭 치고 인사 비슷한 걸 하는 중이었다.


“아, 아빠...”


지현은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으려고 주먹을 꽉 쥐었다. 아빠는 딸의 흔들리는 눈도 꽉 쥔 손도 보지 못하고 뒤돌아 갔다. 황급히 걸어가는 아빠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망연해서 서 있는 걸, 대문 앞에 나온 선경 아빠가 보고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름이…?”


“…”


“아빠가 전에 부탁하셨는데, 내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잊었네. 미안.”


“지현…이요.”


“아~ 그래그래, 차지현! 잠깐 들어올래? 딱 이 시간에 약속을 했는데, 우리 선경이가 아직 준비를 다 못해서…”


지현은 그 말이 거짓인 줄 뻔히 알았다. 아빠는 이 아저씨와 미리 약속을 한 것도 아닐 것이고, 내 얘기를 제대로 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 복덕방 일로 알게 된 아저씨겠지, 딸이 똑같이 이번 해 초등학교 입학한다는 이야길 들었겠지. 그렇다 해도, 지금은 이 아저씨 말을 믿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대문을 들어서서 마당을 지나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막 오르려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아빠, 나 예뻐요?”


지현은 자기 등보다 커다란 빨간색 가방을 멘 선경을 보았다. 검정색 체크무늬 모직코트 아래로 분홍색 원피스의 레이스 밑단이 보였고, 하얀 타이츠 양옆에는 작은 보석들이 하트 모양으로 붙어 있었다. 광택이 나는 까만 구두, 그리고 커다란 분홍색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지현의 눈에도 예쁘고 귀여웠다. 지현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응! 그럼~ 우리 선경이가 제일 예쁘다! 물론 아빠 눈에는 말이야.”


선경 아빠의 악의 없는 말에 지현은 다시 한번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뒤의 말을 덧붙이지 않았을 것 같았다.


아빠 대답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지현을 빤히 바라보는 선경을 보고, 선경 아빠가 서둘러 말했다.


“선경아, 지현이라고, 음, 아빠 친구 딸이야. 인사해. 오늘 아빠 친구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우리랑 같이 가게 됐어. 지현아, 아저씨 딸 선경이야.”


지현과 선경은 어색하게 서로를 빤히 바라볼 뿐,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지현은, 아침까지만 해도 맘에 들었던 자신의 차림새가 신경 쓰였다. 엄마가 며칠 전 시장에서 사준 까만 줄무늬 치마와 하얀 블라우스, 그 위에 하나뿐인 겨울 점퍼인 때 묻은 분홍색 파카를 입었다. 타이츠 대신 무릎이 거뭇해진 하얀 쫄바지를 입었고, 앞으로 1년 내내 신어야 할 조금 큰 운동화를 신었다. 치마와 블라우스만큼은 새 것이었지만, 흠 없는 차림의 요정 같은 선경 앞에 서니 그마저도 점퍼나 신발처럼 초라하게 느껴졌고 부끄럽기만 했다. 선경 쪽에서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을 때 선경 엄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여보, 나 괜찮지? 적당히 꾸민다는 게 참 어렵네. 어맛, 이 아이는…?”


“나 코트 입는 것 좀 도와줘, 여보. 선경아, 지현아,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옆자리에 앉은 선경이 지현의 손을 살며시 잡고 내려주자, 지현은 정신이 들었다.


“오늘은 모두가, 흠흠, 거의 모두가 부모님과 함께 학교에 왔지만, 내일부터는 혼자 오는 거예요. 이제 여러분은 초등학생이니까…”


지현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다. 끝날 때까지 엄마나 아빠가 필요한 일이 제발 없기만 바라고 또 바랐다. 무사히 입학식이 끝나자, 지현은 그전까지 맛보지 못했던 피로를 느꼈다. 벌떡 일어나 가방을 메고 교실 문을 나섰다. 집까지 앞만 보고 갈 것이다, 다짐하면서. 그런데 교실이 있는 3층에서 1층에 내려와 보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양, 어른들은 어딘가에서 우산을 꺼내어 아이와 함께 쓰고 하나 둘씩 교문을 빠져나갔다.


지현은 손을 내밀어 비를 맞아보았다. 3월의 비는 차가웠다. 한 발짝 걸음을 옮겨보았다. 엄마가 단정하게 하나로 땋아준 머리 위로 후두둑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지자, 흠칫 놀라 자기도 모르게 다시 뒷걸음질 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붐비던 운동장과 교문이 한산해져갈 때쯤 지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지현아~! 엄마, 아빠! 지현이 여기 있어요!”


선경이 달려왔고, 이어 선경의 엄마와 아빠가 지현에게로 빠른 걸음으로 왔다.


“여기 있는 줄도 모르고, 3층에서만 한참 찾았구나. 휴, 다행이다.”


‘아저씨가 왜 다행이에요?’


지현은 그런 마음으로 선경 아빠의 웃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 점심 외식할 건데, 같이 갈래?”


“아, 아니요…. 저는…”


“짜장면 먹을 거야!”


선경이 그야말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빠진 이의 빈 공간이 보였다. 선경은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귀에 꽂더니, 나머지 한 손으로 지현의 팔짱을 꼈다. 지현은 얼떨결에 따라 나서게 되었다.


“아, 기념사진 찍어야지! 비 오는 날의 입학식이라~ 이것도 꽤 운치 있네. 그치, 여보?”


며칠 후 지현은 선경에게 사진 두 장을 받았다. 입학식 날 학교 스탠드에서 선경과 지현이 같이 찍은 사진과 지현의 독사진이었다. 지현의 팔짱을 낀 선경은 지현을 향해 귀가 달린 분홍 토끼 우산을 기울여 들고 있었다. 활짝 웃는 선경이 빠진 독사진에서 지현은 초록 개구리 우산을 들고 있었다. 지현은 엄마에게 독사진만 내밀었다. 도대체 누가 찍어줬냐고도 묻지 않고 “좀 웃지…”라고 말한 엄마에게 지현은 웃을 이유가 뭐냐고 말하려다 입술을 앙다물었다.



ㅡ싫어. 싫어! 아무도 나타나지 마. 학교 같은 곳에 날 보내지 마.




“싫어. 싫어…. 아무도… 보내지 마….”


“엄마, 또 꿈 꿔?”


“허, 허, 허어…”


숨이 트이자 지현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려고 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보람이 작은 손으로 엄마의 이마를 스윽 문질렀다.


“엄마, 요즘 왜 무서운 꿈을 날마다 꿔?”


“아니야, 그런 거….”


지현은 보람을 보았다. 결혼 9년 만에 시험관시술로 겨우 얻은 하나뿐인 아이. 어디서 이런 아이가 나왔나 싶게, 사랑스럽고 맑은 아이였다. 아이 뒤로 시계가 보였다. 6시 55분.


“벌써 일어났어?”


“응, 1등으로 가려고. 그럼 선생님이랑 나랑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잖아. 히히.”


“하아….”


지현은 다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선생님도 일찍 오셔서 할 일이 있으실 텐데….”


“아, 그렇겠다…. 너무 방해하진 말아야지. 그냥 옆에서 얌전히 책만 읽을 거야.”


조잘대는 보람의 입을 보며, 지현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닫았다.


“엄마, 있잖아. 민서가 그제 1등으로 갔는데 선생님이 딸이랑 아들 사진을 보여주셨대. 언니는 대학생이고 오빠는 군인이래. 엄청 예쁘고 잘 생겼대!”


맞장구를 바라는 보람을 앞에 두고 지현은 할 말을 찾았다. 기다려도 답이 없자, 보람이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


“당연하겠지? 우리 선생님 딸이랑 아들인데!”


“아… 그래.”


“엄마, 다음 주에, 뭐더라, 맞다, 학부모상담! 엄마 오는 거 맞지? 이쁘게 하고 와야 돼!”




“아. 아. 친애하는 한누리초등학교 학생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학부모님, 오늘 한누리초등학교 입학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 저희 한누리초등학교는…”


지현은 가슴이 벅찼다. 학부모라니. 자기 등보다 커다란 빨간색 가방을 메고 ‘1학년 3반’ 팻말 뒤에 앉은 아이, 연신 뒤돌아 엄마아빠를 찾아 눈웃음 짓거나 손 흔드는 저 아이, 저 아이가 학교에 가다니. 지현은 코가 매큰해지려고 했다.


“어이구, 저러다 목 돌아가겠네.”


진우는 보람을 향해 앞을 보라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뭐야, 당신 울어?”


“너무 예쁘잖아…. 언제 저렇게 컸지?”


진우는 한 팔을 들어 지현의 어깨를 감쌌다.


“처음 ‘아빠’라고 했을 때, 처음 걸었을 때, 처음 어린이집 갔을 때… 아, 진짜 ‘처음’은 잊지 못하겠어. 오늘은 속도 좀 울렁거리네.”


“에이, 난 그 정도는 아닌데.”


지현과 진우는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가장 소중한 대상을 공유하며 함께 애쓰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지켜내는 시간들이 그들을 단단히 묶어주었다. 이러한 동지‘애’가 지현이 기대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진우는 그 모든 일을 함께하기에 좋은 사람이었다. 그거면 되었다. 배우자의 ‘부재’ 혹은 ‘직무유기’가 당사자나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지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게 죽을 만큼 힘들다는 것도. 진우가 ‘보람 아빠’로 충실한 이상, 지현과 진우 부부는 튼튼할 것이다.


“와. 애들 진짜 춤 잘 추네.”


선배들의 축하무대가 벌어지고 있었다. 진우 말대로 키 크고 예쁜 아이들이 춤도 잘 추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유전자가 달라진 것만 같다.


“대안학교 안 보낸 거 후회하지 않겠어?”


지현은 잠시, ‘학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지긋지긋하게 대립했던 요 몇 년을 떠올리고, 진우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 쳤다.


“아야!”


“이겨서 좋냐?”


“이기다니~ 여기 오는 거, 결국 당신이 결정한 거잖아. 뭐든지, 내가 결정한 게 있나, 뭐.”


지현은 생각보다 아쉽지 않아서 이상했다. 지현의 기준에 맞는 학교, 보람의 어린 시절을 누구보다 알차고 특별하게 해줄 학교를 찾아 보내려는 생각은 보람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했다. 자신에게 일반 공립학교는 행정과 관리의 편이, 획일적 틀이 중요한 곳, 거기서 벗어나면 낙인찍히는 곳이었고, 변화하는 세상에 맞게 아이들을 가르치기는커녕 그 자신조차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진우는 생각이 달랐다. 좋은 곳을 찾아 아이를 넣어주는 것이나 그렇게 찾은 곳이 정말 아이에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어디서든 현재 자신이 속한 곳에서 배우고 스스로 나아갈 바를 찾는 동안 지켜봐주는 것이 부모가 할 역할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은 지현에게 한없이 안일하게 보였고, 그런 의견에 순순히 따를 지현이 아니었지만, 보람이 한사코 유치원 동기인 동네 친구들과 같은 학교를 가겠다고 주장했다. 거기다 지현이 드디어 찾아낸 학교는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보람의 멀미는 참으라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몰아붙이려던 이사가 실패하고 결국 남편과 아이의 바람대로 아파트 단지 내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여기도, 괜찮겠지?”


“그~럼! 여기 혁신초래잖아. 공립학교라고 무조건 구시대적이기만 하겠어? 믿어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보람이, 믿을 수 있잖아.”


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든든한’ 느낌에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변화하지 않음’이 ‘안정성’ 같았고, ‘대부분이 다닌다는 사실’이 ‘안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지현은 자신이 삶의 목표를 바꾸고 나서 삶에 더 만족하게 된 것처럼, 교육에 대한 신념과 가치관이 바뀌는 걸 경험하는 지금, 그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좋은’ 결과인지는 막연했지만 말이다.


다시 뒤돌아 손을 흔드는 보람을 향해 진우와 지현 역시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제, 각 반 담임선생님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한누리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은 전국 각지에서 열정을 가지고 우리 학교에 지원하여 뽑히신 분들로…”


단상 한쪽에서 일곱 명의 선생님들이 들어와 일렬로 섰다.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선생님 한 분 한 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1학년 1반 김수미 선생님, 1학년 2반 이재정 선생님, 1학년 3반 임선경 선생님…”


한순간, 지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기 또래의 1학년 3반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은 자기 반 아이들 쪽을 향해 활짝 웃었다. 그때 덧니가 드러났다. 습관처럼 머리카락을 귀에 꽂았다.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지현은 뒷걸음질 쳤다.




“아니, 어디 갔었던 거야?”


진우는 운동장 벤치 한쪽에 앉아 있는 지현을 찾았다. 지현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보고 있었다.


“반에 들어가서 담임선생님께 인사하고 친구들 보고, 그러는 거 몰랐어? 중요한 이야기 많이 나왔는데…. 내가 메모를 일단 해두긴 했으니까…”


“대안학교 보내야 해.”


“뭐라고? 다 끝난 얘기를 왜 또…”


“아니면 이사라도 가자. 시골로, 당신 어머니 계시는 곳도 좋아. 응?”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갑자기 왜 이래? 보람이가 지금 얼마나 신났는데. 저기 봐. 예린이랑 같은 모둠이래. 건이랑은 짝 됐고.”


보람은 예린과 무슨 얘기를 하는지 계속 까르륵 웃고 있다.


“이 학교에서 1학년 보냈다가는 보람이 큰일 날 거야. 우리 보람이… 우리 보람이…”


지현은 눈물을 닦은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걱정이 지나치네. 걱정스런 마음은 알겠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한 반이고, 담임선생님도 좋은 분 같으니까, 막연하게 불안해하는 마음은, 이제 그만 좀…”


지현은 진우 말은 들리지 않는 듯 머리를 숙인 채 혼잣말을 멈추지 않았고, 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람이 쪼르르 달려와 말을 건다.


“엄마아빠, 오늘 점심 사먹을 거야? 예린이네랑 같이 먹으면 안 돼요?”


지현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말했다.


“보람아, 우리, 아무래도 학교…”


“그래, 그러자. 예린이한테 가서 말해.”


진우가 서둘러 말했다. 보람이 활짝 웃으며 진우를 꼭 안고 뽀뽀했다. 예린을 향해 뛰어가자, 진우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여보, 이제 학교 옮기는 이야기는 그만했으면 해. 이 학교로 결정했고, 선생님도 반 친구들도 잘 만났잖아. 이제 우리가 흔들림 없이, 보람이를 지켜볼 시간이야. 이런 이야기 자꾸 하는 건, 우리 모두를 지치게 해.”


입술을 달싹거리며 들리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던 지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진짜야? 임선경 걔가 보람이 담임이라고? 진짜로?”


윤영은 침을 튀기며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얼굴로 물었다.


“응….”


한 달 사이 지현은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핼쑥해진 얼굴은 푸석했고, 목소리는 잠겼다.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어도, 은근히 매력 있는 생김새에 본인에게 어울리는 세련된 차림새로, 보면 볼수록 예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지현이, 지금은 당장 쓰러질 듯 초췌하고 볼품없었다.


“걔도 알아? 네가 보람이 엄마인 거. 그 입냄새도 아냐고.”


윤영의 입에서 ‘입냄새’라는 말이 나오자, 지현의 눈에 경멸이 스쳤다.


“너는 지금 몇 살인데 아직도… 휴. 아니, 아직 모르는 거 같아.”


“그럼, 보람인? 보람인 학교 잘 다니고? 선생님에 대해 뭐라고 안 해?”


“응. 좋아해. 너무 좋대….”


“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냐. 세상은 역시 좁다! 아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고 해야 하나? 천하의 차지현이 임선경의 을이 됐네.”


“을… 그래, 을이지….”


지현의 마른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니다. 너는 지금 을이 아니라, 뭐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계네, 계!”


윤영은 지현이 조금이라도 웃길 바랐으나 지현은 눈물을 닦을 뿐이었다.


“에휴. 그러니까, 그때 왜 그렇게 선경이를 못살게 굴어가지고…. 작작 좀 하지.”


지현은 손을 무겁게 들어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때는… 다른 인격이 나왔던 것 같아.”




“치카치카! 치카치카! 치카치카치카치카!”


지현은 눈을 떴다. 오랜만에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잘 잤다. 머리가 개운했다.


“보람이, 이 닦니?”


“네~ 하요 알 유비해요. 퉷. 엄마,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학교 갈 준비해요’였어. 하하.”


“아니, 전혀 몰랐는데? 하요라는 아이가 운다는 거야, 뭐야, 했지~”


“하하하. 역시. 치카치카!”


지현은 침대에 누운 채 씩, 웃었다. 얼마 만에 진짜로 웃은 걸까.


다음 주면 학부모 상담주간이다. 아직 선경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주면 알겠지, 결국.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는 척할까? 내 이름 같은 거, 기억 못할지도 몰라. 차지현, 아주 흔하진 않아도, 이 이름이 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거의 30년이 지났으니 알아보지 못할지도 몰라. 그래도 혹시… 혹시 알아본다면… 그럼, 사과하자. 그래, 무릎이라도 꿇자. 보람이를 위해서인데, 못할 게 뭐야. 그렇게 해서라도…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면….


“치카치카! 치카치카! 치카치카치카치카!”


아까부터 계속 들리는 이 닦는 소리가 지현의 귀에 거슬렸다. 지현은 일어나서 욕실로 갔다.


“보람아, 아직도 이 닦는 거야? 이제 그만하면 됐… 아악!!!”


보람의 입에서 피가 흘러 턱과 가슴께가 피로 흥건했다. 칫솔과 손을 타고 흘러내린 피는 욕실 바닥에 뚝뚝 떨어져 바닥도 이미 피투성이였다.


지현의 다리가 풀렸다. 욕실 앞에 주저앉았다.


“보람아… 헉… 헉… 보람아…”


“엄마, 선생님이 그러시는데요. 이를 잘 닦아야 한대요. 아주아주 꼼꼼히 닦아야 한대요. 그래야 입냄새가 안 난대요.”


활짝 웃는 보람의 이는 온통 새빨갰다.



ㅡ내가,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다고…! 아이는, 아이는, 내버려둬, 제발, 제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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