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작자는 그런 위인이었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려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구나
ㅡ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중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겨울이었다. 발표수업 준비모임을 하고 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아빠가 돌아가셨대. 뭐? 심장마비로 쓰러지셨대. 나는 놀라지 않았다. 놀랄 준비는 했지만, 전혀 놀라지 않았다. 동생 역시 전화로 소식을 들었고, 전화는 확인이 필요한 매체다.
언젠가 아버지가 몇 주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집으로 전화가 왔다. 처음 듣는 남자 목소리였다. 그는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가 원조교제를 해서 경찰에 잡혀 있다고. 한참 원조교제가 뉴스에 나오고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다. 나는 안방 한쪽 티비다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수화기를 붙든 채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쩍 벌리고 앉아 있었다. 구역질이 서서히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 이야기를 어린 나에게 경찰이라는 사람이 하는 이유가 뭐지?
전화를 끊고 나는 구역질 대신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30분마다, 그러다 20분, 10분, 5분마다… 결국 변기에서 엉덩이를 들어 옷을 추켜 입자마자 도로 내려야 하는 지경이 됐고, 그제야 나는 체념하고 그냥 변기에 붙어 있기로 했다. 한 시간 동안, 내 몸의 모든 물이 이물질과 함께 항문으로 빠져나갔고, 나는 한 마리 마른 오징어가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변기에 앉아 사투를 벌일 때만 해도 땀이 비 오듯 흘렀는데 설사가 끝나면서 땀도 같이 말랐고, 그때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어 돌아온 엄마는 침대에 누운 나의 이마를 짚어보더니 어머, 얘가 펄펄 끓네, 라고 말할 뿐 말라비틀어진 내 몸통은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울고 싶어졌는데 눈물도 이미 말라붙었기 때문에 눈물 역시 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응, 그 웬수가 뭐?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장난전화였어. 그 따위 장난전화에 속다니. 하지만, 그때 이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속을 만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란 작자는 그런 위인이었다. 누군가 너희 아빠가 원조교제를 했단다, 라고 말해도, 아, 그렇군요, 하고 수긍하고는 부끄러움과 역겨움으로 마른 오징어가 되고 말아도 이야기의 흐름에 허점이 없는 것이었다. 다만 내게 그것을 전화로 이야기하고는 이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그 미심쩍음이 한 줄기 의심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을 뿐.
하여,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우리 가족에게 전화로 전해졌다는 데에 의심부터 했던 것이다. 이것은 장난전화일 수 있어. 어디, 기다려보자.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누가 그래? 아빠 친구가. 너도 아는 사람이야? 응, 몇 번 뵌 적이 있어. 나는 아버지의 친구라는 사람 역시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뭐래? A병원에 있대. 그럼 같이 가보자.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동생은 눈물에 젖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나의 건조한 반응에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또 쓸데없이 마른 오징어가 될 수는 없었다.
같이 발표 준비를 하던 친구들에게도 애매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집에 가봐야겠어. 알고 보니 아무 일도 아니었을 때를 대비해 심각한 표정 같은 건 짓지 않았다. 급하다는 것만 어필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데 심각하지 않은 것도 이상했으므로, 내 얼굴은 뭐랄까, 말라비틀어진 오징어 같았을 것이다. 친구들 역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낌새였다. 하지만 내가 말한 의도를 정확히 알아들은 B가, 발표는 걱정 마. 우리끼리 하고 진행상황은 메일로 알려줄게, 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잘하면 무임승차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고 고개를 끄덕, 하고는 얼른 뒤돌아 종종걸음으로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면서 내가 고민했던 것은, 이 일을 엄마에게 알릴까 말까,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나처럼 미심쩍어하면서 판단을 유보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라질 놈, 또 수작 부리네, 라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면 아버지가, 만약, 정말로 돌아가셨다면 그건 또 너무한 일 아닌가…. 육체가 아직 따끈따끈할 때, 그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오자마자 들은 이야기가, 비명이나 곡소리도 아니고, 적어도 안됐다, 라는 말도 아니고, 우라질 놈, 또 수작부리네, 라는 것은 조금 슬프고 망측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사망이라는 사건을 엄마에게 숨긴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 지하철은 여러 역을 통과해서 C역에 다가서고 있었다. 엄마의 포장마차가 있는 곳. 나는 상황을 보며 눈치껏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플랫폼에 발을 디뎠다.
발길은 익숙한 듯 4번 출구로 향했다. 고등학교 때는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면 늘 엄마에게 들렀다. 남겨둔 떡볶이와 어묵을 먹고 엄마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그날 있었던 일이나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말하곤 했다. 정리가 끝나고 포장마차를 두껍고 빳빳한 고무줄로 친친 감아 묶으면 엄마가 끌고 내가 밀어 주차장으로 갔다. 웅크린 거인 같은 포장마차를 한쪽에 세워두고 우리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 막차를 탔다.
그때 먹은 떡볶이는 맛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는데, 엄마가 해준 떡볶이는 맛이 있다고도, 맛이 없다고도 할 수 없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었지만, 그것은 허기의 맛일 뿐이었다. 내 미각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은, 엄마가 포장마차를 하고부터 나는 다른 떡볶이를 사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게 떡볶이는 엄마의 떡볶이뿐이었으므로 맛을 평가하는 건 불가능했고 무의미했다.
그 떡볶이를 먹는 것도 거의 3년 만인 것 같았다. 더구나 이렇게 낮이 훤할 때 가는 것은 낯설었다. 그런 나의 의식과는 다르게 발길은 자연스레 목적지를 향했다. 저 멀리 엄마가 보였다. 어떻게 등장해야 할까. 가까이 가보니 손님 한 명이 어묵을 먹고 있었다. 포장마차의 포장을 열어젖히고 들어가, 순대를 썰고 있는 엄마에게 말했다. 떡볶이 1인분 주세요. 엄마는 반사적으로 네에, 하고 대답하다 내 목소리를 듣고 나를 보고는 흠칫 놀랐는지, 오잉? 오랜만에 웬일로… 오셨네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떡볶이를 접시에, 마치 고봉떡볶이를 만들어보겠다는 듯이 한가득 담아서 내게 내밀었다. 내 앞에 있는 떡볶이를 보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내 몸은 허기의 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와구와구 떡볶이를 먹었다. 엄마의 떡볶이는 여전히 맛을 알 수 없는 맛이었다. 그럼에도 내 배는 포만감으로 만족했다.
어묵 꼬치를 하나 꺼내들고 먹었다. 그러고 보니 낮에 엄마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대학생이 된 나는 학교에 붙어살았다. 학업에 정진한 것은 아니었고, 동아리 두 개, 학회 한 개에 가입해 사명감을 가진 사람처럼 활동했다. 틈만 나면 과방에 퍼져 있었다. 술자리를 마다한 적이 없었고 항상 마지막 소수정예 멤버로 남았다. 재미있는 수업은 열심히 들어서인지, 재미없는 수업은 자체휴강을 밥 먹듯이 했는데도, 유급은 면했다. 선후배와 동기가 무슨 가족 같다고 우스개로 말했는데, 실제로 가족은 내팽개쳐진 지 오래였다는 것을, 낯선 엄마의 얼굴을 보며 깨달았다. 새삼, 엄마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냐고 묻고 싶었다.
손님이 포장한 순대를 가지고 갔다. 엄마, 화장실 다녀오세요. 그래, 마침 잘 됐다. 엄마가 자리를 비운 동안 나는 어묵을 세 개 더 먹고 따끈한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떠서 후릅후릅 마셨다. 처음에 들어올 때는 따뜻하다고, 포장마차의 포장이 제법 쓸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포장마차의 포장 틈새로 한기가 새어 들어왔다. 엄마는 그래도 겨울이 여름보다 낫다고 했다. 내복과 양말을 두 겹씩 껴입어도 추위는 어쩔 수 없었지만, 불 근처에서 하는 일이었다. 한여름이 되면 그 불의 열기가 꼼짝없이 엄마의 몸뚱이를 휘감았고, 끊임없이 흐르는 땀 때문에 목과 이마에 댄 물수건을 쉴 새 없이 갈았는데, 떡볶이가 눌어붙지 않도록 휘젓는 횟수보다 수건을 갈아대는 횟수가 더 많았다. 머리가 아찔해지면 바로 앞 약국에 가서 싸구려 피로회복제나 집에 쌓여있는 밴드 같은 걸 사고서 잠깐씩 앉아 있었다. 그동안 에어컨 바람을 쐬며 고비를 넘기곤 했다. 나는 엄마가 포장마차를 하고부터 겨울에 춥다고, 여름에 덥다고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엄마가 돌아왔다. 아니, 웬일로 온 거야? 오랜만에 생각나서 왔지. 뭐 필요한 거 없어요? 필요한 거? 그래, 대파 한 단이랑 너 먹고 싶은 과자나 사오든가. 에이, 과자는 무슨. 내가 애도 아니고. 길 건너 슈퍼마켓에서 대파와 초코바 두 개와 젤리 세 봉지를 사서 돌아왔다. 엄마랑 사이좋게 나눠먹으며 물었다. 엄마, 아버지, 잘 지낼까? 왜 갑자기? 아니, 그냥… 그 썩어죽일 놈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이제 이혼했으니 남남이야. 왜 진작 안 했나 몰라. 그래도 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럼 속이 다 후련하겠지! 내가 그 웬수 때문에 고생하고 산 거 생각하면… 아니, 그런데 왜 느닷없이 그 웬수 얘기야? 아니,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엄마, 이 초코바 맛있네. 하나 더 사올까? 엄마는 눈을 좀 흘기고는 됐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야기는 상황 파악을 한 후에 해야겠다. 나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포장마차를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동생은 어디서 찾았는지 아버지 사진을 손에 들고 보고 있었다. 왜 이제 와? 그 아저씨한테 좀 전에도 전화 왔어. 시댁에는 뭐라고 하고 왔어? 친정에 다녀온다고…. 동생은 배에 손을 얹었다. 동생의 배는 불룩 나와 있었다. 내가 먼저 다녀올까? 아니야. 같이 가. 괜찮겠어? 괜찮아. 그럼 가자.
택시를 탔다. A병원이요. 병원 어디로 가야 하지? 응급실? 가는 길에 동생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가는 중이에요. 어디 계신가요? 네, 알겠습니다. 앞에 나와 계신대. 도착하니 날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아저씨는 조금 운 듯한 얼굴이었고, 좀 착잡해 보였다. 하필 자신이 이 상황을 떠안게 된 것에 황망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실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끼고 침을 삼켰다. 왜 이제야 오는 거야? 자식들이… 너무하군. 혼잣말인 듯 내뱉었다. 정말 돌아가셨어요?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동생도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장례는 여기서 치를 건가? 나는 눈만 껌뻑였다. 아저씨는 고개를 흔들고 동생에게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동생과 절차를 의논하기로 마음을 정한 거 같았다. 동생은 간혹 훌쩍이며 대답을 하기도 하고 뭐라고 묻기도 했다.
켁, 켁, 갑자기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목이 간질거리더니 턱, 턱 막혔다. 몸 안에서 무언가 무너지고 있었다. 무너지면서 잔해와 먼지가 어지럽게 부유했다. 희뿌옇게 된 속은 물을 달라고 했다. 나는 정수기를 찾아 헤맸다. 겨우 정수기를 찾았는데 일회용 종이컵이 없었다. 나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잔해와 먼지가 목까지 치밀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려 냉수가 나오는 꼭지에 입을 대고 손으로 레버를 밀었다. 철, 철, 철, 철. 차가운 물이 매캐한 몸으로 흘러들어가는 동안 내 턱과 목 주위, 소매도 젖고 있었다. 소름끼치게 차가웠다. 이봐요, 뭐하는 거야? 나는 깜짝 놀라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아직, 멀었는데…. 멀쩡한 아가씨가, 거기다 입을 대고 먹으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려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에서 입으로 공기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눈을 껌뻑이다가 숨을 헐떡였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동생이었다. 언니! 어디야?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디냐고? 응? 나는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문자를 보냈다. 갈게.
물에 젖은 옷에서 한기가 퍼지고 있었다. 나는 몸이 떨렸다. 이가 다닥다닥 부딪쳤다. 얼굴이 왜 이래? 옷은 왜 젖었어?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집 근처 D병원으로 옮기기로 했어. 거기서 장례식 치르기로. 병원 쪽에 몇 가지 서류 작성할 것이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D병원으로 가면서 친척들에게 연락하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말이 없어? 응? 나는 동생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몇 년 전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등록금이며 교복값이며 돈이 필요했는데, 아버지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엄마는 아버지와 말도 섞지 않을 때였고, 그 돈은 내가 직접 아버지에게 얻어내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돈 때문에 겪은 일들이 생각났고, 엄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화가 났다. 그날 아버지가 집에 오자마자 돈을 달라고 했다. 없어.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오늘까지 주신다고 했는데요. 없다고. 주신다고 했잖아요. 또 미뤄요? 없는데 그럼 어떡하냐? 아버지, 정말… 제가 언제까지 어린애일 줄 알아요? 저는 점점 어른이 되고 아버지는 이제 늙겠죠? 그때가 되면, 아버지가 바지를 옷걸이에 걸다 말고 멈춰서 나를 봤다. 그때가 되면, 저도 아버지 모른 척할 거예요. 더 못된 말을 하고 싶었는데 고작 그렇게 말했는데도… 아버지가 팬티 바람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얼른 내 방으로 뛰어 들어와 문을 잠갔다. 쾅! 쾅! 뭐, 이 새끼야? 뭘 어떻게 해? 그러더니 문고리를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오래되어 한없이 낡은 문이 둑, 두둑, 하더니 파박, 팍! 맥없이 열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대로 나를 덮쳤고, 손으로 발로 닥치는 대로 나를 팼다. 나는 좀 전의 패기는 어디로 가고, 몸을 웅크린 채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질러댔다. 아버지 뒤를 따라 들어온 엄마가 아버지를 막으려다 한 번 나가떨어지고, 다시 일어나 소리치며 막았다. 그만 좀 하라고! 아버지는 온 몸을 들썩이며 씩씩대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티비를 켰다. 나는 그날부터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동생은 나를 보고 한숨을 쉬고는 휴대폰으로 여기저기 부고를 알렸다. 전화를 하기도 하고 문자를 하기도 하는 동생을 보다가, 나도 휴대폰을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발표 준비는 같이 못할 거 같다. B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과엔 내가 알릴게. 발표 같은 건 걱정하지 말고. B의 문자를 가만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연민을 받아야겠다. 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아버지와 어떤 관계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난 아버지를 잃은 사람일 뿐이다. 나는 휴대폰 연락처를 열어 닥치는 대로 부고를 알리기 시작했다.
택시 안에서 동생이 말했다. 엄마한테는 오빠가 말해. 동생은 임신하고 급하게 결혼식을 치르면서 엄마와 대판 싸우고 사이가 데면데면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대요. 한참을 기다려도 답이 없었다. D병원 장례식장 잡았어요. 조금 있다 답이 왔다. 알았다.
D병원으로 옮기고 빈소가 정해진 후에 아저씨가 와서 자신은 이만 가겠다고 말했다. 동생은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나도 꾸벅, 인사했다. 아저씨를 마중하고 돌아와서 동생이 말했다. 아저씨가 그때 옆에 계셔서 정말 다행이야. 아빠가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 얼마나 아팠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음이 아파….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동생을 보면서 나는 궁금했다. 왜 나는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따위는 하나도 안 궁금한데, 동생은 아버지 때문에 슬퍼하는구나. 하긴 동생은 나와 달랐다.
동생은 아버지를 닮았다. 진한 눈썹, 오똑한 코, 가는 입매, 까만 피부, 숱 많은 흑발 등이 아버지를 쏙 빼닮았고, 나는 외탁했다. 그 때문인지, 동생이 막내이기 때문인지, 아버지는 동생을 예뻐해서 어릴 때부터 어디든 데리고 다녔다. 동생과 싸울 때 아버지는 늘 동생 편이었고, 동생이 잘못을 해도 매를 대기는커녕 혼내는 일도 없었다. 집에 몇 달씩 안 들어올 때도 동생과는 간간이 연락해서 불러냈고, 용돈을 쥐어 보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버지는 늘 없는 사람이었고, 눈앞에 있어도 어색하고 먼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안은 적도, 업은 적도, 자전거 뒤에 태운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버지와 엄마가 싸울 때 말리기만 할 뿐 엄마 편을 들지 않았다. 일이 더 커질까 봐 무서웠다. 아버지를 내 힘으로 이길 수 있는 날을 기다리다가 엄마와 아버지를 이혼시켰다.
상복으로 갈아입고 영정사진 앞에 앉았다. 동생이 가져온 사진은 젊은 날의 아버지였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영화배우같이 잘생겼다. 얼굴이 밋밋하고 입이 튀어나온 엄마는 그런 아버지의 외모만 보고, 하는 일 없이 한량처럼 산다는 소문을 듣고 뒤늦게 결혼을 말리는 외할머니의 말을 어기고 결혼해버린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저렇게 잘생긴 얼굴로… 왜 그렇게 쓸모없이 살았을까…? 쓸모? 쓸모 있는 인생이 뭐지? 하지만 분명 아버지는 부모에게도 형제에게도 아내에게도 자식들에게도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고 사회를 위해, 대의를 위해 무언가 한 일도 없었다. 그냥 자기 한몸 편한 대로, 그렇게 살았다. 그런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고민 같은 게 있었는지, 삶의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나는 아버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어쩌다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이상한 상상이 떠올랐다. 겨우 취직해서 피똥 싸며 일하는데, 아버지가 찾아와서 돈을 달라고 하는 장면. 결혼해서 자식 키우느라 쌔가 빠지는데, 늙고 병든 아버지가 찾아와서 같이 살자고 하는 장면. 그런 상상이 나래를 화알짝 펴기 시작하면 잠이 퍼뜩 깼다. 명치부터 무언가 치밀어 올라서, 절대로 부모, 효, 도리, 인지상정 이런 것에 휘둘리지 않으리라, 머리통이 깨지도록 다짐을 하고서야 잠이 들곤 했다.
그런 일은 이제 없게 됐다. 가슴 한 구석이 시원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없어져버린 것은 빈 공간만을 남기지 않았다.
E오빠가 군산에서 지금 올라온대. 사촌오빠, 큰아버지의 큰아들이다. 아버지가 그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리고 그이도 일 끝나면 바로 온대. 옆에 앉은 동생의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힘들면 바로 들어가 누울 거야. 나는 하릴없이 다시 영정사진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녁이 지나고 큰고모 내외와 작은고모 내외가 왔다. 고모들은 들어서면서 동생과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벌써… 왜 간 거야… 벌써… 불쌍한 인간… 아이고… 나는 고모부들과 인사를 했고, 고모들은 내 앞에서도 눈물을 찔끔거리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향을 피운 후 자리에 앉아서는, 다짜고짜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친구 분이랑 있다가… 갑자기 쓰러지셨대요. 어디서 뭘 하며 지내다가? 그건 저희도 잘… 아니, 자식이란 것들이 아버지가 어디서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도 몰랐단 말이야? 동생은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그러고 보니, 너 홀몸이 아니구나? 결혼했어? 네. 뭐야? 언제? 우리한테 연락도 없이? 엄마가 조용하게 하자고 하셔서. 아빠한테는?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아빠 없이 결혼식을 했단 말야? 늬 아빠가 너를 그렇게 예뻐했는데? 동생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아니, 딸자식이란 년이! 큰고모와 작은고모가 번갈아 질문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나는 동생을 일으켜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어디 가?! 어른 말씀하시는데!! 나는 그 말을 한 작은고모를 노려보았다. 이를 악물었다. 어머, 저, 저, 저 년 눈 부라리는 것 좀 봐. 아주 싸가지가 없네.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동안 쌓인 설움, 원망, 분노 같은 것을 쏟아내고 말겠다는 듯이, 작은고모가 혀를 차며 눈길을 거둘 때까지 계속 노려보았다.
내게 고모들은 어른이 아니었다. 친척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가족을 내팽개치고 저 혼자만 알아서 살 때, 그래서 엄마가 갖은 궂은 일로 우리를 먹여 살릴 때, 엄마와 동생과 내가 비루하고 불행하게 살 때 그들은 한 번도 우리를 찾아오거나 도와준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명절과 제사 때마다 엄마가 시댁에 와서 일하기를 요구했고, 엄마는 시댁에 다녀오면 며칠을 앓아누웠다. 엄마는 소처럼 부려졌을 뿐 아니라 천대 받았다. 예를 들면 밥을 다 먹으면 아직 식사를 끝내지도 않은 엄마 그릇 앞에다 빈 그릇과 수저를 밀어두는 식이었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가지 않다가 나중엔 대놓고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친가 쪽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에 금세 얼굴이 얼얼해졌다. 동생을 안았다. 동생의 어깨가 심하게 흔들렸다. 손가락 사이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나는 가만히 동생을 안고 있었다.
울음이 잦아들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동생의 어깨를 감싸고 빈소로 돌아오니 고모 내외들은 상에 앉아 육개장을 먹고 있었다. 가끔 깔깔대는 소리가 듣기 싫어 나는 다시 나가려고 했다. 늬 엄마는 어디 갔냐? 큰고모가 동생에게 물었다. 안 온 거야? 응? 안 온대? 나는 다시 동생 옆에 앉아 이번에는 큰고모를 노려보았다. 쯧쯧, 인간이 못됐어. 남편 장례식에 자리 안 지키고 뭘 하는 거야. 쯧쯧. 나는 큰고모가 혀 차는 것을 그만둘 때까지 큰고모를 노려보았다.
제부가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동생에게 쪽방에 들어가 누우라고 했다. 나도 동생의 등을 떠밀었다. 휴. 그래. 그럼 잠시 눈 좀 붙이고 나올게. 장례비용이며 화장과 납골당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고모 내외들이 의논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한테 조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그리고 나를 흘끗거리며, 쟤네들한테도 무슨 조문객이 있겠어? 나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자정 무렵 E오빠가 왔다. 오래전에 보고 못 본 얼굴이라 길에서 만났다면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어린 나를 데리고 뒷산으로 올라가 풀과 꽃과 벌레 이름을 가르쳐주었던 그 냄새가 아직 남아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처음으로 안심했다. 고모들 내외와 인사를 하고는 나와 동생, 제부와 마주앉아 지금까지 정해진 것과 앞으로 정할 일이 무엇인지 묻고 듣고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무엇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인지 몰랐지만, 그리고 내가 걱정이란 걸 하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 말을 하는 오빠의 얼굴과 냄새는 내게 이제 아버지에 대해서만 생각해도 된다고, 애도만 하라고 전하는 것 같았다.
오빠가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 나와 제부에게 술을 따랐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힘들었겠구나. 미안하다. 그런 말들이 그의 입에서 나왔고, 우리는 더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술을 마시는 마음이 편안했다.
새벽이 되었다. 동생이 나에게 들어가 잠시라도 눈을 붙이라고 했다. 방은 따끈했다. 노곤한 기운이 밀려들었고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나를 찾는 소리에 눈을 떴다. 친구가 왔다고 했다. 아침 일곱 시. 고등학교 때 친구였다. 오늘 저녁엔 일이 있어서 출근 전에 왔어. 친구는 한참을 말없이 내 앞에 앉았다가 갔다. 그 친구를 시작으로 친구, 선후배가 연이어 찾아왔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안쓰러워하면서, 혹은 눈물을 비치면서. 나는 그에 맞추어 반응했다. 긴장한 사람에게는 편안하게 웃으면서, 안쓰러워하는 친구에게는 연민의 대상으로서 애써 괜찮은 것처럼, 눈물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나도 울 듯한 얼굴로… 맞이했다.
연세가 어떻게 되셔? 어떻게 돌아가신 거야? 장지는 어디야? 조문객이 묻는 것은 비슷했다. 내 친구들은 거기에, 그런데 왜 너는 말을 안 해? 라고 덧붙여 물었다. 언니가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어제부터 말을 못해요. 동생은 내 손님들에게 나를 설명하고는, 59세이시고,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화장 후에 F납골당에 모실 것이라는 얘기를 대신 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지인들에게 대신 답하고 전하면서 나도, 동생도 대답의 의무에서 차차 놓여났다. 그 뻔하고 반복되는 질문이 지겹지 않았던 것은, 대답을 할수록 갑작스런 사건이 익숙하게 다가오고, 죽음이 야기하는 강렬한 감정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것임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었다. 오전에는 조문객이 오면 만나자마자 혹은 이야기하다가 꼭 눈물을 흘리던 동생도, 시간이 흐를수록 담담하게 답했다. 저녁 무렵에는 육개장을 앞에 두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친구들 틈에 앉아 간혹 웃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동생에 대한 걱정을 잠시 거두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바로 일어서지 않고,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주었다. 아예 몇몇은 오늘밤을 같이 새우고 내일 발인까지 함께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나 대신 사람을 맞아주고 알은 체를 해주고 반겨주고 질문에 답했다. E오빠와 제부가 조의금을 담당할 뿐 돕는 친척들이 보이지 않자, 몇몇은 장례식장의 도우미와 함께 음식을 나르고 치우고 곳곳을 정돈했다. 나는 처음으로 겪는 장례식이 너무 어렵고 거대하고 심각하게 느껴졌고, 뭐가 뭔지도, 어찌해야 할지도 몰라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당연한 것인 양 그 자리에 있는 친구들을 보고 땅에 발이 닿는 것 같았다. 살면서 갚아나가야 할 빚이, 감사한 빚이 나를 붙들어줄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조문객은 종일 이어졌고, 저녁이 되자 빈자리가 없었다. 북적대고 떠들썩한 분위기는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를 이따금 잊게 했고, 일종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젖게 하기도 했다. 고모 내외들은 이어지는 조문객들에 내심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조의금으로 장례비용 등이 해결될 것이 계산이 되자 표정이 밝아졌다. 그제야 자신들도 조의금을 내고, 내일 발인 때 다시 온다며 빈소를 떠났다.
입관식에 들어갔다. 염을 마친 아버지는 수의를 입고 누워 있었다. 화장을 해서 얼굴에 부자연스러운 생기가 돌았다. 비록 수의였지만 말끔하게 차려입고 단장한 채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낯선 것이었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자상해 보였고, 그래서 내가 그토록 바라고 기대했던 아버지로서 대해도 실망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해도, 무엇을 원해도 들어줄 것이었다.
톡, 내 가슴의 물꼬가 트였다. 가라앉지 않고 자욱했던 먼지와 잔해가 꾸역꾸역 모여들더니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버지. 당신은, 왜… 아버지, 당신은, 왜… 나는 아버지의 많은 것에 물음을 던져야 했다. 그동안 아버지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원망하고 무시했던 이유를 아버지에게서 찾아야 했고, 그것으로 내게 아버지가 아니었던 아버지에게 이곳을 떠나는 길에 마지막 인사를 할 명분을 삼아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답이 없었다. 잠잠할 뿐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추억할 일조차 없는 아버지를 다시는 떠올리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내 앞에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에게 그동안 가슴 속에 쌓여 있던 것들을, 튀어나올까 봐 꽁꽁 묶어두었던 것들을 쏟아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버지 품에서 잠이 들고 싶었다고, 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옛날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고, 어깨 위에 올라가 목말을 타고 싶었고, 아버지가 간지럼을 태우면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고 싶었고, 무언가 사달라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고, 아버지 손을 잡고 동물원에 가고 싶었고, 아버지가 찍어주는 사진 앞에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같이 밥을 먹다가 아버지가 내 숟가락에 얹어주는 반찬을 먹고 싶었다고, 내가 받은 상장과 성적표를 보여드리고 싶었고, 늦은 밤 학교에서 나오면 나를 마중나와 내 가방을 들어주는 아버지와 집으로 가는 길에 말 없는 위로를 받고 싶었다고, 남자친구를 소개하고 싶었고, 그리고, 그리고… 나는 아버지를… 아빠를…,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우는 나를 제부와 동생이 가까스로 부축해 나왔다. 나는 쪽방에 들어가 쓰러졌다.
자정이 지나자 조문객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마지막 조문객이 떠난 후 남기로 한 친구들과 동생과 나는 빈소를 정리했다. 제부와 E오빠는 조의금을 맞추었고 병원 쪽과 정산을 마쳤다.
그즈음에 엄마가 왔다. 엄마는 향을 피운 후 우리를 한 번씩 안고 그대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내비치지 않은 굳은 표정이었다. 엄마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니면 이미 텅 비어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동이 트기 전에 화장터로 출발했다. 순서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은 망연히 여기저기 의자에 흩어져 앉았다. 쏟아지는 잠과 피곤이 추위와 엉겨 씻지 못한 몸에 눌어붙었다. 지루한 시간을 견디고 순서가 되어 아버지의 관이 화장장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창 너머로 관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보지 못할 것을 본 것처럼 숨이 멎었다. 바로 유리창이 가려졌고, 고모들은 아이고, 불쌍한 사람, 아이고, 하며 울기 시작했다. 동생도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몸 안이 뜨거워지더니 불이 붙었다. 먼지와 잔해들까지 불타고 있었다. 활활 타올랐다. 더웠다.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모두 눈물을 닦을 때 나는 땀을 닦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리창을 가렸던 것이 거두어져 다시 안을 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 남아 있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회색의 흔적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아버지의 몸은, 아버지는 없었다. 이제 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다. 내 몸 안의 불도 사그라들고 있었다. 먼지와 잔해, 그리고 재뿐이었다. 재로 남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났고, 장례의식도 끝났다. 우리는 다시 망연히 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창밖을 바라봤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빠는 복이 있는 사람인가 보네, 옆에 앉은 동생이 말했다. 아버지의 복. 장례가 다 끝나서야 눈이 오는 것은 장례를 치르는 우리에게 좋은 일인데… 아버지 덕을 보기도 하네.
눈발은 점점 굵어져, D병원에 도착할 때쯤엔 새하얀 땅이 함박눈으로 덮이고 있었다. 감사 인사와 위로를 마지막으로 나누고 사람들은 헤어졌다. 빈소에 두었던 짐을 가지고 동생, 제부와 집으로 향했다. 추위는 누그러져 있었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이삼 일 씻지 않았다고 행색은 추레하고 이삼 일 제대로 못 잤다고 머리는 띵했지만, 기운만은 가뿐했다.
내게 무엇이 지나간 것인지, 내 안에 무엇이 사라졌는지 당장은 알 수 없겠지.
번호키를 누르고 문을 연 순간, 엄마가 다급하게 외친다. 들어오지 마! 거기 그대로 있어! 곧이어 나타난 엄마가 바가지에 담은 굵은 소금을 우리에게 마구 뿌리며 말했다. 부정 타지 마라, 부정 타지 마라.
나는 실소가 나왔다. 엄마, 일단 씻을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