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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과 반성

사태가 심각해지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by 모도 헤도헨




네 번째 직장에 다닌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2개월이 채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작은 공간, 적은 동료들에 금방 적응했고, 맡겨진 일도 얼추 해냈고, 마감도 겪어보았다. 할 만한데? 하는 (실수하기 딱 좋은) 상태.


한 달에 한 번 출근한다는 토요일이었다. 신혼(결혼 3년차였지만 아이가 없었으므로, 신혼이고 말고)이었던 나는 매우 싫은 마음으로 회사에 갔다. 재무상황 등 회사의 전체 운영에 관한 컨설팅을 받는 시간이란 것만 알고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입이 갈 자리가 아닌데, 전 직원이 4명뿐이니 ‘중요한’ 이야기를 다같이 듣고 다같이 활로를 모색해보자는 윗분들의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찌뿌둥한 몸, 맹한 정신, 뚱한 얼굴로 앉아, 오늘의 이 근무는 대체휴가 같은 보상이 없겠지, 짜증스럽군, 그런 마음으로 약속된 시간보다 늦는 그들을 기다렸다.


지각이라니. 두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늦게 들어와서, 외투를 벗고, 노트북을 켜고, 준비한 유인물을 우리에게 나눠주고, 뒤숭숭한 공기를 가르고 말을 시작하는 그들은, 나처럼 찌뿌둥하고 맹해 보였다.


나는 컨설팅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회사에 대해서 거기 모인 사람들 중 제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유인물은 엉성하게 보였고, 프레젠테이션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앉아서 노트북 화면을 보며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클릭하며 정제되지 않은 말들로 설명하는 그들에 태도는 나의 비판력에 불을 댕겼다. 어찌 된 일인지 편집장님과 부편집장님은 순박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하고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던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따지듯 질문을 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이의를 제기했다. 어떤 부분에서 나는 뜻을 굽히지 않다가 심지어 논쟁을 하기도 했다. 한 달도 갓 지난 신입이 컨설턴트와!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렇게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황금 같은 토요일 오전에 출근을 했다는 게 기가 막히고 화가 치밀었다. (만약 금요일 오후에 근무 대신 이런 시간을 가졌다면, 온화하고 수용적인 마음가짐으로 앉아 있었을지도..)


분위기는 점점 애매하게 험악해지고 있어서, 누군가 서둘러 마무리를 지었던 것 같다. 어쩔 줄 몰라하며 죄송해하는 편집장님과 부편집장님에 이어서 나도 사과를 하고 그쪽에서도 뭐라 사과하고 다음을 기약하고... 그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은 우리 회사의 공적인 가치에 공감해서 무료로 컨설팅을 몇 달째 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의 재능기부는 아마도 나 때문에 그날이 마지막이 되었다.)


아무튼, 10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어마어마하게 황당한 사건이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을 만들었던 것이다. 무식하고 용감했던 내가.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다음 일어난 일이다.


사태가 심각해지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정말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콩닥였다. 이 일을 어찌 수습할 것인가... 편집장님과 부편집장님의 얼굴은 사색과 난감의 사이 어딘가에서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내고 회의실에서 사무실로 오자마자, 편집장님(남자)은 그분이 선 자리에서 내 자리에 있는 나에게,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모도 씨,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로 운을 떼며 나를 혼내려고 했다. 혼이 나도 마땅하다는 생각과 나름의 항변 사이에서, 다가올 호통일지 무엇일지 모를 처벌에 두려움에 빠져 나는 얼음이 되어 있었다. 놀란 토끼눈이었을 거고 아주 초라하고 볼품없는 그런 기운이었을 거다. 그때 부편집장님(여자)이 서둘러, 그러나 차분하게 말했다. “됐어요, 편집장님. 지난 일이에요. 모도 씨, 나 좀 볼까?” 그녀가 화가 났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화에 압도되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는 안심이 되었고,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은 상태로 그녀를 따라갈 수 있었다. 혼자서 화를 추스르느라 괴로워하는 편집장님을 뒤로하고...


또 다른 공간에서 그녀와 마주앉았을 때 나는 이미 (호기는 어디 가고 어찌 된 일인지) 반성의 마음만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너무 대충 해와서 화가 났다고. 부편집장님은 그들의 재능기부에 감사하다는 이야기와 우리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아무튼 길지 않았다. 나는 혼꾸녕이 나지 않았지만, 내 잘못을 뉘우쳤고 겸손한 마음 상태가 되었고 앞으로 이 회사에서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진정으로 굳게 했다. 그리고 부편집장님을 공경하고 신뢰하고 의지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그때 제대로 혼이 났다면 어땠을까? 공개적인 자리에서 호통을 듣고 내 잘못이 적대적인 목소리로 표현되고 드러난 행동의 부적절함이 비난받았다면. 나는 아마도 기가 죽고, 내 능력과 나 자신이 평가절하 되었다고 느끼고, 내 의도의 정당함을 떠올리며 억울해하고, 수치심과 반항심과 적개심을 오랫동안 처리할 수 없어 끙끙대지 않았을까? 그 컨설턴트나 나를 혼낸 사람이나 이 회사나 모두 싫고 밉지 않았을까? 그래서 일 자체가 싫어지지 않았을까? 결국 그만둘 때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 되지 않았을까?


대신 나는 잘못을 양해받았고, 반성의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그 순간에 이미 깨달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는 것은, 내 인격이 존중받았다는 점이었다.




오늘도 나는 내 아이의 잘못에 과하게 혼을 냈다. 잘못을 바로잡는다고 얼마나 큰 잘못을 하고 있는지 뉘우치려고 이 글을 쓴다.


(기승전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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