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거만하지 못했는데, 역시 원치 않게 겸손해지게 되었다.
종종 보는 유튜버(다이어트 과학자 최겸)가 이 영화를 추천했다. 딸이 있는 자녀라면 꼭 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영화가 좋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백지상태에서 보는 것을 선호하는 나는, 게시물의 몇 줄을 대충 훑고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데미 무어인 줄도 모르고 봤다. 얼핏 징그러워서 보기 괴로울 수 있다고 경고 비슷한 말을 써두었다는 걸 보는 내내 떠올려야 했다. 현대사회의 (특히 여성의 몸을 향한) 젊음과 예쁨에 대한 갈망과 강박이라는 주제는 이미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데, 내가 영화를 통해 무얼 보기를 원했던가 스스로 의아해지기도 했다.
영화는 여러 모로, 놀이기구로 비유하자면, 회전목마가 아니라 롤러코스터 쪽이다. 그리고 나의 취향은 회전목마 쪽에 가깝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럼에도, 어쩌다 한 번쯤 팔 걷어붙이고 제대로 놀아보고 싶을 때, 그러니까 집에서 편히 넷플릭스를 볼 수도 있고 영화가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게 많은 세상에서 굳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즐기겠다고 했다면, 이렇게 제대로 영화적인 재미와 흥분과 자극을 주는 영화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슬픔의 삼각형> 같은 영화들이 떠올랐다. 전자처럼 뻔히 리얼리티가 없는 이야기임에도 기꺼이 상상력을 따라 가장 현실적인 사유를 하게 하고, 후자처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숨기고 사는 인간의 실상을 가장 구역질 나는 방식으로 과장해서 드러낸다. 아니, 그보다 '정신없는 편집'이 닮았다. 시청각적 자극이 어마하다.
이 영화의 장르 란에는 스릴러, 서스펜스, 블랙 코미디, SF 그리고 공포라고 쓰여 있다. '바디 호러'라고도 하고 '고어 호러'라고도 한다는데, 나로서는 '공포'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스릴과 서스펜스는 좋아하지만 호러는 싫어한다. 특히 깜짝 놀라게 하는 류의 재미는 극혐이고, 고어는 거의 가치관을 건드리는 수준이어서 즐길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때때로 짧은 비명이 터져나오고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만, 분명히 끔찍하지만, 무섭거나 혐오스럽거나 괴롭지 않았다. 함께 본 친구가 "꽤 잘 보던데?"라고 할 만큼 눈이나 귀를 한 번도 가리지 않고 보았고, 심지어 몇 차례 웃기까지 했다. 극강의 설정에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걸까? 몰입이 되지 않았나? 아니면 그런 것들을 껍데기라고 여길 만큼 본질적인 내용에 심취해버린 걸까? 아니면 그냥 나이가 들었나?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여성이 젊고 예쁘기를 바라는, 폭력과도 같은 요구, 어쩔 수 없이 혹은 스스로 내면화해서 이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려는 여성의 집착과 욕망, 결국 일그러지고 망가지는 자아감, 정체성, 누구도 편하지 않고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모두가 피해자이고 모두가 가해자가 되는 끔찍하고 구역질 나는 사회에 대한 영상화는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피상적인 감상 말고, 영화를 보는 동안 속으로 이어갔던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데미 무어에 대한 것이었다. 딱히 좋아했던 배우도 아니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내 세대와 비슷한 정도로 <사랑과 영혼>을 보면서 반했고('이야.. 남자 같은 머리를 하고도 저렇게 예쁠 수 있구나..'), '전신 성형'이라든가 '15살 연하 애쉬튼 커처와의 재혼' 등의 가십거리 뉴스를 접하고 그 사이의 거대한 빈 공간을 제멋대로 상상해서 대충 채워넣었을 뿐이었다. 그렇다 해도 입 밖에 그 배우에 대해 꺼낼 일 없었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영화에, 이런 역할로 나오다니. 생김새나 연기력이나 아우라로 보건대 그녀가 맞을 텐데도, 자꾸 되물었다. (영화 정보나 포스터조차 보지 않고 갔으니, 100퍼센트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역할이나 연기 자체도 파격적이었지만, 어쩌면 그 자신과 겹치는(한때 톱스타였지만, 나이 들고 한물 간) '엘리자베스 스파클'로 분한 그녀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ㅡ영화 <은교> 중에서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도 잠깐 고요해졌는데, 갈수록 그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니까 젊음은 상이 되고 무기가 되고, 늙음은 벌이 되고 약점이 된다. 똑같이 젊을 땐 '예쁨'이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똑같이 늙고 보면 예쁨도 사실 젊음의 일부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진리와도 같은 이상은의 노래처럼)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다가, 잃어가는 중에,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것이 한때 내가 가진 것이었고, 좋은 것이었다는 걸.
잃어가는 중에 무얼 할 수 있을까? 되돌릴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성형도 하고 약도 쓰고 다이어트도 하고 운동도 하고... 마침내 우리 모두 알게 된다. 다 소용없다는 걸. 그걸 알면서도 씁쓸해하고, 모르는 것처럼 애쓰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차거나 착잡해한다.
이런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이 스친다. 안 예뻤어서 다행이야. 내가 예뻤다면, 그로 인해 얻었던 이익(선망의 눈초리, 사소한 호의, 크고 작은 기회, 다 알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은근하고 실제적인 이득 등)을 마땅히, 영원히 내 것인 줄 알았을 거야. 당연히 그건 영원하지 않고, 마땅히 내 것도 아니었으니, 어느 순간 잃어버렸을 때 속상했을 테지.
비슷하게, '내가 부자가 아니었어서 다행이야', '내 부모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어서 다행이야', '내가 엄청 똑똑한 사람이 아니어서, 특별한 재능이 없어서 다행이야' 그런 생각도 한다. 원래 인간이란 대단치 않아, 그래 보였던 것도 내 것이 아니고, 다 한때의 것이야. 어쩔 수 없이 거만하지 못했는데, 역시 원치 않게 겸손해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졌던 것들에 대해 너무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더 오래 내 것으로 두려고 애쓰지 않을 수 있던 것, 지나가는 것들을 보며 조금은 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이 그다지(비교적) 별것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데미 무어처럼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미인이라면, 영화의 '수'처럼 쏟아지던 분노와 불평도 순식간에 삼키게 할 만한 미인이라면 어땠을까?
연예인들이 더 미모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나 역시 내가 쥐었던 미모가 내게 유일한 좋은 것, 무기였다고 생각되면, 미모를 잃으니 나에 대한 관심과 선망, 호의와 친절, 기회와 일자리를 잃어버리면 집착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데미 무어는 (지난 삶의 어떤 순간에 다른 선택을 했었는지 몰라도) 자신의 가치를 미모에 두지 않기로 했구나! 그런 생각을 영화를 보는 내내 했다. 오랜 세월 배우로서 살았으니, 당연히 연기와 배우로서의 정체성이 중요했을 테지만, 이 영화로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연기자로서의 파격적인 변신, 과감한 도전'을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드리 헵번이 자연스럽게 늙은 모습으로 아프리카에서 구호활동을 했을 때 보여준 것처럼, 세월이 가면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사람들의 열광과 환호, 그 대상이 되었던 것을 이제 별것 아닌 걸로 여긴다고, 놓아버린다고 천명하는 것 같았다. 젊은 시절 그녀의 미모에 대해 감탄했던 것은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받은 감동은 그녀의 선택과 노력에 대한 것이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실제로 젊을 때도 받지 못한 상들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다른 생각의 한 줄기는 이런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미모, 부와 사회적 재산, 부모의 명예나 권력 같은 건 없었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부스러기에 다름없는 학벌이나 영민함 같은 걸 붙들고 산 적은 없었나? 그조차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면서 부서져버렸지만, 그 시절 내가 괴로워하고 결국 우울증을 겪게 된 것은 내가 남들보다 좀 더 가졌다고 여겼던 것, 그래서 조금이나마 유리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잃은 것과 관련이 없을까? 그 모든 것에 애도를 표하며 가뿐해졌다고, 조용히 겸손하게 다시 삶을 시작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대단치 않아도, 건강한 자식이라는 존재 자체로)이나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가정적인 남편에 대해서도 내가 쥔 것이라고 여긴 적이 없나? 달리기나 요가 등 운동을 하면서, 글쓰기를 하면서 (내 동기와 목적은 분명 그런 게 아니라고 믿지만) 내 상과 무기를 만들려는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을까? 이런 글을 통해 드러내는 나의 사유 같은 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나?
물론 이런 식으로, 백옥같이 희고 순수하게 나나 다른 사람을 몰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적이고 존엄한 생존이 보장되지 않은 현실 세계에서 어쨌든 우리는 머리를 굴리고 몸을 써서 안전한 것을 구축해야 하니까. 그것은 본능이고 당연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괜히 경계하며 이런 다짐을 했다. 삶의 어느 순간에도, 정말 세상 제일 불행하고 불운하다 생각될 때에도, 나도 모르게 남보다 좋은 위치에서 유리했던 것이 있었고 그것을 누렸다는 것을 기억하자고, 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것도, 마땅한 것도 아니어서 언제든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도 명심하자고, 심지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거라고 여겨지는 것 또한 그럴 리가 없으니 정신 차리자고, 집착했다가는 족쇄가 될 뿐이라고, 그게 무엇이든 있을 때 충분히 감사하며 누리고, 언제든 편하게 놓아주며 안녕! 하는 사람이 되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