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여지지 않는 말들

이 메아리를 어떻게 할까나.

by 모도 헤도헨

춘천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옆 자리 앉은 중년 남성이 탑승자를 확인하며 통로를 지나는 기사님께 긴히 할 말이 있다는 듯 몸을 기울여 속닥속닥 말을 건넸다.


ㅡ중년 남성: $£¥+*^%# 카톡 카톡 @:₩(“&


그러자 기사님이 난처하다는 듯 답했다.


ㅡ기사님: 그건 매너의 문제니까...


그리고 두세 번 더 말이 왔다갔다 했는데, (중년 남성은 계속 ‘따로 조용히 할 말’이라는 듯 작게 이야기해서) 대강 추정하자면, 차 안에서 핸드폰의 문자나 톡 알림을 소리 나지 않게 무음으로 하도록 기사님께서 미리 공지를 해줬으면 한다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기사님은 ‘별걸 다...’ 하는 표정으로 "육성으로 통화를 하면 그러진 말아달라고 하지만, 무음 설정까지는 매너의 문제니까..."라며 거절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무시하지는 않는 말투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귀찮은 상황이군' 정도.)


나는 전날 도서관에서 있던 일이 떠올랐다. 정신없이 과제를 하는 중이었는데, “꽝!!!!”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과장임). 바로 옆에 뭔가 떨어져 있었다. 천장 에어컨에 붙은 거대한(과장임) 팬이었다. 사람들이 다양하게 놀라는 소리들을 냈고, 그중엔 “어휴. 저기 사람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도 있었다. 누구나 그 생각을 했을 것이었다.


곧바로 사서가 와서 훑어보고는 팬을 들고 사라졌다. 이어서 시설 관리 담당자로 보이는 분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 팬을 다시 설치했다. 그러자 내 뒤에 앉은 중년 남성이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이었다.


ㅡ중년 남성2: 그거 도로 다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조용한 도서관에 뚜렷한 육성 자체로도 갑작스런 존재감이 있는 법인데... 갑자기? 시설 관리자더러 고치는 걸 하지 말라고?


ㅡ시설 관리자: 네? 왜요?


그도 어지간히 당황스러웠나 보다.


ㅡ중년 남성: 그게 또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ㅡ시설 관리자: ... 안 떨어질 거예요.

ㅡ중년 남성: 그럼 아깐 왜 떨어졌어요?


사서가 나섰다.


ㅡ사서: 아, 저희가 어제 저거 풀어서 청소했거든요. 제대로 조이지 않아서 떨어졌던 거예요.

ㅡ중년 남성: 그래도 그게...

ㅡ시설 관리자: 걱정 마세요. 꽉 조이면 돼요.

ㅡ중년 남성: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이 말엔 나도 좀 웃음이 나왔는데...


ㅡ시설 관리자: 안 떨어져요. 떨어지면 제가 책임질게요!


'오지랖도 풍년이다!'로 들리는, 더 이상의 참견을 완강히 거절하는 억세고 단호한 어조였다. 하긴, 책임진다는데 누구든 더 이상 할 말도 없을 것이었다. 아저씨는 자리로 가면서도 몇 마디 궁시렁댔지만.


이틀에 걸쳐 나타난 두 중년 남성의 말과 어조가 마음을 떠돌았다. 그리고 그 두 아저씨를 상대했던 다른 두 아저씨들의 태도도. 머릿속에서 꼭 필요한 말, 해야 할 말이라 여겨지는 말을, 나서서라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그런 한 마디 한 마디를 수도 없이 듣고 대거리해야 하는 사람들을. 전자의 사람들이 악의 없이 만드는 위화감과 주위와 묘하게 어긋나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후자의 사람들이 보이는 사뭇 다른 반응에 대해서도.





내게 단톡방은 참 시끄럽고 번잡스럽고 편치 않은 곳이다. 관망만 하려 해도 그렇고, 꼭 필요할 때만 등장해야지 마음먹어도 그렇고, 사교모드를 켜고 좀 헤퍼져도 그렇다. 여러 생각이 드나드는데 말을 고르는 것도, 고른 말을 할지 말지 정하는 것도, 그것을 문자로 다듬는 과정도.


그래도 크게 별일은 없었는데, 도서관 팬 추락사건 전날 별일을 겪었다. 꼭 확인해야 할 일이라 여겨 내가 반복해서 던진 질문이 시작이었다. 에둘러 삐딱했던 담당자의 답과 날카로움이 밴 나의 건조한 문장을 거쳐, 냉소적인 공격, 그리고 냉소적인 수비 끝에, 그가 (나나 이번 일과 관련 없는, 담당자로서 겪은 애로사항 등) 그간의 감정까지 보태서 쏟아내면서 불난 집에 되어버린 것이었다. 단톡방의 사람들은 그의 노고를 치하하며 진정시키느라 분주해졌다.


이쯤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건, 이 분야에서 애 같은 나도 알겠어서 물러섰다. 불쾌하고 짜증스럽고 억울하고 분하기도 했으나, 그보다 의아함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아니, 도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내 질문은 필요하고 온당한 것이었다. 그쪽에 확인 한 번만 하면 되는 것을. 나는 일정이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따로 두 명이 내게 연락해, "네가 궁금한 건 이거지? 내가 알아봐줄게."라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이미 매우 힘든 중이었다. 일이 이렇게 될 일이 아닌데 이렇게 되어버린 것도, 나의 질문과 확인 요청이 누군가를 건드릴 만한 일이 되었다는 것도, 이 상황의 한쪽 주인공이 나 혼자가 될 만큼 다른 십여 명의 사람들은 궁금하지 않았던 것(그는 나 말고는 아무도 이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혹은 질문하지 않았던 것도 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나를, 질문을 하는 이유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이해받지 못하고,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은 정말 괴롭구나, 새삼 느꼈다. 하지만 그가 나를 향해 문자로 했던 말들을 보아하니, 오해를 풀려고 했다가는 오해가 깊어질 것 같았다. 하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도 오해를 풀려다가 더 큰 오해를 발견하게 되는 마당인데... 그래,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타인에게 이해시킨다는 건 꿈이야. 포기하자.





포기는 깨끗하게 했는데, 머리와 마음에서 생각들이, 발화되지 못한 말들이 솟아나고 배회하고 똬리를 틀고 난리였다. 두 아저씨들을 연이어 만나며 나의 일이 연결되어서, 내 말이 받아들여졌으면 좋았겠는데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러지 못했을 뿐이라고, 그쪽 입장에선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레 흘러갔을 일인데 굳이 내가 나섰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고 정리했다.


정리는 깔끔하게 했는데, 역시 머리와 마음은 시끄럽고 어지러웠다. 나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 이미 그의 일상과 지난 삶에 대해서까지 서사를 훑었고, 그와 화해하는 수만 가지(과장임) 시나리오도 짰다. 물론 그를 말로든 뭐로든 공격하거나 혹은 멋지게 무시해서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영화도 몇 편 찍은 다음이었다. 중요한 과제를 하면서 이런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는 게 기가 막혀서 죽을 것 같았다(과장임).


버스에서 내려 호텔까지 걸어가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내 속에서의 말들을 덮으려고 유튜브에 접속했더니, 귀신같이 다음 영상이 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HsIOk5Y_jg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들의 '양날의 검' 같은 능력과 그들이 겪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내가 설명되고 이해받는 것 같아서 잠깐 위로가 됐다. 그래, 난 인지적으로 과활성화된 사람이지. 이건 바꿀 수 없기도 하거니와, 이런 복잡한 내가 아닌 '단순한' 나는 이제 원하지 않잖아.


또 그렇게 나에 대한 인정을 단정하게 하고 보니, 기분도 좀 나아졌다.





그런데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속에서는 여전히 말들이 메아리쳤다. 그만 생각하고 싶은데도. 그만 떠올리고 싶은데도. 어떤 식으로든 한번 흔들리면 이렇게 흔들려야 한다니.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하나, 장벽을 단단히 세워야 하나, 마음을 넓혀야 하나...


아, 그래. 영상에서 말한 대로 '외부화'를 해야겠다, 하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금 조용해진 채로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친구들을 만났다. 온갖 주제에 대해 온갖 이야기를 하고, 수도 없이 눈을 맞추고 같이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다. 완전히 고요해졌다는 걸. 이제는 굳이 귀를 기울여 뭐든 건져내는 것이 좀 더 어려운 쪽이었다.


그러니까 그 메아리를 가지고 씨름하거나 내 귀를 막거나 더 센 소리로 덮으려 애쓸 일이 아니라,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가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평화로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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