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작아지는 마법

왜 맥아리가 없어지는지 모르겠다.

by 모도 헤도헨

내가 열 살 때, 서른 살 삼촌이 내게 꿈을 물었다. 그때 나의 답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한 같은 질문에 그가 한 대답은 기억난다. (나의) 할머니, 엄마, 이모들, 삼촌들이 아무 일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라고. 한참 머뭇거리다 맥아리 없이 한 답이었다.


그게 어떻게 꿈이 될 수 있을까? 그는 나의 영웅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꿈은 영웅답지도, 어른답지도 못했다.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는 동안, 어떤 꿈은 세상 끝까지 닿아 나를 일으켜 뛰게 하고 날아오르게 했다. 그러다 짝을 만나고 둥지를 틀고 나니 흐릿한 것은 흐릿한 채로 두고, 내 품 안의 뚜렷한 것에 온 힘을 다하기로 했다. 꿈이란 건 인생의 맥거핀 같은 걸까?


마흔 살 쯤엔, 밤마다 까만 허공에 인생의 지워져버린 가능성을 셌다. 그렇게 밤을 새우며 절망과 냉소에 한 발씩 절여 놓다가 우울증에 걸렸다. 웅크려 주저앉아 이대로 사라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또 간절히 바랐다. 그런 것도 꿈이라 할 수 있을까?


그사이 어떤 일들에 뒤죽박죽 엉켜서, 마흔다섯의 나는 달리기를 하고 대학원에 다니고 내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새해가 되었다고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지만, 스스로에게도 비밀처럼 어떤 것들을 꿈꾸고 있었을 텐데... 쾅.


정희원 교수의 뉴스를 뒤늦게 보았다.





"수만 년 동안 우리는 잘난 체하는 사람을 모두 쓰러뜨리는 효율적인 방법, 즉 유머, 비웃음, 뒷담화 등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이것들이 작동하지 않으면 뒤에서 활을 쏘면 된다."

ㅡ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중에서.


S는 실컷 목사님 험담을 해놓고 어느 날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모두가 보는 자리에 섰으면, 이만큼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의 24시간이 까발려진다면 나도 떳떳하지 못하다.' 과연 맞는 말이고, 탁월한 성찰이다. 그럼에도 험담을 그치지 않은 것은, 어쨌든 그런 자리에 있는 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뜻이었을까?


정희원 교수의 뉴스를 접하고 한동안 심란했다. 그의 영상을 꽤 많이 보고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사람으로서 불거진 내용에 충격받기도 했고, 그가 하는 주장에 동의하고 그를 응원했던 사람으로서 속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따르는 인물을 잃었다는 점이 안타까웠고, 드러난 사실에조차 눈 감고 편드는 사람들이나 대놓고 조롱하고 욕하는 사람들 앞에서 서늘해졌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그가 설파했던 주장이나 보여주었던 삶의 올바름 때문에, 그만큼 더 물의가 생기는 것이라 씁쓸했다. 편안함에 끌리고 본능에 내맡기다 보면 자연스레 어긋나게 되는 우리의 면면을 돌아보게 하고 고쳐서 나아지고 싶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뭇매가 되어 돌아갔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좀 더 건강하게, 느리게 나이 들게 만들고 싶다는 그의 꿈이나 그가 한 노력이 다 거짓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그가 펼쳤던 주장마저 신뢰를 잃고 힘이 빠져서 허탈했다. 하지만 나 역시, '너무 건전하게 살려고 하면 어딘가 뒤틀릴지도 몰라. 적당히 하는 게 낫겠어.'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그랬으면 좋겠다) 남의 일에 한참 괜한 마음을 쓰다가, 엉뚱하게 내가 '뭣도 아닌 사람'이어서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올바른 말과 올바르지 않은 말들, 글, 잘못과 실수... 기억나지 않는 것들을 포함하여, 그리고 진심과 별개로 앞으로도 계속 저지르고 말 것들까지.


더 큰 세계로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해보지 않은 경험들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일들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열심히 하고, 이런저런 우연도 겹쳐서, 성과를 낼 수 있기를, 더 큰 세계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꿈의 크기는 내가 존재하고 싶은 세계의 크기가 아니라, 맷집과 깜냥이 정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내가 존재하고 싶은 넓은 세계에서 작게, 아니 본래의 나만큼 펼치며 살 수도 있는 거겠지. 그게 진짜 행복일지도 모르지.


이렇게 삼촌과 같은 이해하게 되었다. 왜 맥아리가 없어지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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