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놀고 빈둥대라(Eat Play Loaf)

그렇게 우리의 방학이 간다

by 모도 헤도헨

오늘 아침엔 <볼빵빵 배통통 요리 수첩>에 나온 바나나 팬케이크를 해먹었다. 바나나를 으깨, 계란 풀고 섞어서, 소금과 계핏가루 톡톡, 그리고 버터 녹여 부쳐내면 끝이다. 여기에 블루베리, 메이플시럽, 살구잼, 버터, 땅콩버터 등 취향대로 더해 먹었다. 간단한 재료와 과정이라 맘에 드는데, 맛도 괜찮았다.


아니, 맛은 생각보다 별로였을지 모른다. 이걸 만들어보자고 스스로 정하고, 직접 바나나를 으깨고 계란을 풀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했을 것이다. 즐겁게 만들었고 아이들이 잘 먹으니, 나도 괜찮은 요리로 기억.


ㅡ3호/10세(바나나 담당): 언제까지 으깨?
ㅡ2호/13세(계란 담당): 으깨질 때까지 으깨.
ㅡ3호: 으깨진다는 게 어떤 건데?
ㅡ2호: 으깨지면 으깨진 거야.


끼어들지 않고 낄낄댄다.





요가를 다녀오니, 각 방에 하나씩 들어가서 종이쪽지를 숨기고 있다. 내가 벗어놓은 수면양말 한 짝 안에도... 샤워하고 나올 때쯤 방탈출 게임은 마무리가 됐다. 준비됐냐고, 손은 씻었냐고 묻고, 약속대로 샌드위치 만들기를 시작했다.


첫째는 소스(마요네즈+머스타드+레몬즙+꿀+후추)와 과카몰리(아보카도+다진 토마토+레몬즙+소금+후추+꿀)를 만들고, 둘째는 빵에 소스를 바르고 베이컨을 굽고 내용물(치즈, 과카몰리, 토마토, 양상추, 베이컨, 계란)을 얹고, 막내는 빵을 토스트하고 음료 주문을 받고 사진과 영상자료를 남겼다.


세발나물전도 오징어김치부침개도 맛있게 먹었고, 처음 만들어본 마녀수프도 인기 대만점이었다. 남편은 주마다 한 번쯤 본인의 영혼을 위해 삼겹살을 굽는다.


3호: 엄마, 이거 정말 맛있다. 엄마는 맛있지 않은 것도 맛있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
나: ㅋㅋㅋ 그래?
3호: 응, 엄마도 흑백요리사에 나가보는 게 어때?
나: ㅋㅋㅋ 그 정도야?
3호: 응, 결승전 직전까지는 확실히 갈 것 같아.


부정하지 않고 낄낄댄다.





어젯밤은 남편과 나, 첫째와 막내 넷이서 (지난 크리스마스 때 산타할아버지가 주신...) 카탄 확장판을 했다. 4인용이기도 하지만, 둘째는 할 때마다 기어코 빠진다. 이런 식의 (경쟁적인?) 게임은 싫다면서. 승점을 13점에서 10점으로 줄여서 하는데도 두 시간은 기본으로 걸린다. 그사이 둘째는 옆에서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 시청.


지난주에는 <흑백요리사 2>를 끝낸 아이들과 <슈렉> 시리즈를 나흘밤 연이어 하나씩 봤다. 이번 구성은 둘째와 셋째, 그리고 나. 첫째는 자기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했고, 남편도 무언가를.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긴 하지만, 나는 재미가 없을 걸 감안하고 영어 듣기 훈련이나 할 심산이었다.


<슈렉 1>은 대학교 1학년 때 봤고, 클리셰를 깨는 전개가 나 역시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때 나는 클리셰나 클리셰가 들어간 잘 짜인 이야기 자체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보니, 끊임없이 깨알같이 뒤트는 시도를 볼 때마다 감탄이 나왔다.


그리고 2탄에선 아내의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 3탄에선 아버지가 된다는 것, 4탄에선 어른의 역할을 감당하는 일로 꽉 채워진 일상에서 (자유롭고 거칠었던) 혼자였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 등 테마로 잡고 가는 이야기에 때때로 가슴이 울렸다. 4탄을 보다가는 아이들 몰래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다시는 안 갈 줄 알았던 동물원이나 놀이공원에 아이들 때문에 갔다가 새로운 감흥을 얻게 되는 것처럼, 이런 애니메이션을 아이들 때문에 다시 접하면서, 몰랐던 걸 만나고 놓쳤던 걸 마주한다.





오후 3시쯤 되면, 아이들은 하나씩 피아노학원과 태권도학원으로 나선다. 한 시간이라도 어린이 없는 집에 있고 싶으니 제발 같은 시간에 나가달라고 하지만, 자기들끼리도 학원에서 만나기 싫다며 굳이 시간차를 두고 나간다. 덕분에 겨우 고요해졌다 싶으면 처음에 나갔던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겨울이고 방학이지만, 바깥바람을 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며, 나간 김에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라고도 하고, (학원 안 가는) 주말이면 나가서 배드민턴이라도 치고 오라고 한다.


눈이 와도 이제 첫째에 이어 둘째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어떻게든 내보내려고, 아이스크림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내고, 도서관에 책 반납하라고 책을 들려 보낸다.


지난 11월 여차저차 회사를 그만두게 된 남편까지 5인 가족이 하루의 대부분을 한 집에서 보낸다. 이런 합숙생활이 코로나 덕분에 낯설지가 않다. 기본적으로 어수선하고, 대체로 시끄럽고, 수상쩍게 분주하며, 때때로 낄낄대다 보면, 아쉽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밤이 온다.


수십 일을 이렇게, 한 공간에서 (아이들 포함) 여럿이, 흥분하지 않고 언성을 높이지 않고 싸우지 않고 억울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지내기는 굉장히 어려운데, 딱 한 가지 내가 터득한 방법은, 욕심 내지 않는 것이다. 알차려고 하지 않으면 된다.





방학이 되면 죽음학 관련한 책들과 논문들을 차근차근 읽어야지 했던 생각은 이미 흔적이 없다. 아니, 과연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던가? 의심스러울 만큼 부담조차 없다.


2026년 계획, 목표도 세우지 않았다. 어떤 마음가짐이라도? 하려는데 벌써 한 달이 다 가버렸다.


어느 영상에서 김미경 강사가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데) '40대 이후로 사람들이 얼마나 헐거워지는지 좀만 열심히 하면 성공하기 쉽다'고 했을 때, 내 안의 어떤 욕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제인가 산책길에 들었던 영상에서 최유나 작가가 '저녁 8시에서 12시 사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했을 때도 어떤 스파크가 머릿속을 잠깐 스쳤다.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해서도, 나는 다르게 살겠다고 독해지는 모드를 켜는 것에 주춤거린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만큼에 만족하는 것도 아니다. 굳이 이유를 파헤치자면, 튀어나갈 태세가 안 잡혔다는 것과 모든 것엔 후과가 따른다는 걸 확신한다는 것 두 가지다. 바닥을 긁다가 팡 쳐야 튀어나가는데, 아직 덜 뭉갰달까. 그리고 이렇게 데워지지 않았는데 열을 내봤자, 채워지지 않았는데 쥐어짜봤자, 나만 괴롭고 별일이 안 생기더라.


그러니 아이들에게도 하루에 한 번은 바깥바람을 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지만, 거기까지만 하기로 한다. 방바닥을 긁어봐야 하니까. 엉덩이가 뭉개져봐야 하니까.


이 와중에도, 어제 한 가지 남몰래 목표가 생겼다. 풀업이 상체 근력에 그렇게 좋다는데, 이번 해 안에 세 개까지만 해볼까? 요가원 가는 길에 있는 철봉에, 그 길 지날 때마다 매달려보기로 했다. 어제 해보니 30초 겨우 매달릴 수 있다. (얼레? 더 이상 남몰래가 아니게 되었군...)




https://youtube.com/shorts/kx5KYt3A5XI?si=QLTooa79i9aas8ho


https://youtu.be/qT8y06oN18I?si=xSXBMMz7v4bxAw2Q



체스 이야기를 빠뜨렸다. 왼쪽 3년 전. 오른쪽 2주 전. 그사이 막내는 체스 방과후를 하더니 실력이 늘었다! 여행지에서 가볍게 두었는데 졌다… 돌아오자마자 재결전! 이겼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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