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의 기록

개신교도의 2박 3일 천주교 기웃거림기

by 모도 헤도헨



피정[避靜, retreat, recessus spiritualis]
피세정념(避世靜念) 또는 피속추정(避俗追靜)의 준말. 가톨릭 신자들이 영성 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해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한 곳에서 묵상과 성찰 기도 등 종교적 수련을 하는 일.


|첫째날_9/25금|

#0. 가는 길_15:00-17:30

드디어 집을 나와 예수회센터로 가는 버스를 탔다. 눈앞에서 타려던 버스를 놓치고(버스앱으로 시간 보며 100미터 전부터 뛰었는데) 다른 루트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영화 <슬라이딩 도어스>를 떠올려 본다.
어떤 경험이나 사건을 앞두고 그것이 과연 어떠할지, 이후 내 존재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 오랜만이다. 그 자체로 좋다.
침묵수행. 짬이 나면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도록 책이나 볼거리를 준비하지 않는 여행 역시 처음이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 말 걸 만할 것 역시 가져오지 않았다. 나는 오직 내 자신과 하나님에게만 집중할 것이다. 적막하고 고요할 때에만 들리는 내 안의 목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
2박3일.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만이라도 내 일상에서 마련할 수 있었다는 데 감사한 마음이다.
식단도 짜주고 여러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들 적어두고 왔으니 남편은 잘 해내겠지. 혼자서 아이들 돌보는 것이 힘들기야 하겠지만.
막내는 아침에 어린이집 보내면서 엄마가 두 밤 자고 온다니까 반쯤 알아들은 거 같았는데, “난 엄마가 일찍 왔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둘째는 어제 저녁 이야기해준 후 “엄마가 안 갔으면 좋겠어”를 다섯 번쯤 말했고, 내가 집을 나설 때 읽고 있던 <마법천자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만 흔들었다.
첫째는 어제 저녁 처음 말할 때도 5분을 울며 가지 말라고 하더니 (안 가면 자기가 모은 용돈을 다 주겠다는 둥 엄마가 자기를 때려도 좋다는 둥..-_-) 오늘 아침에도 울고, 피아노학원에 가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는데 학원에서도 한 20분 동안 울다 치다 그랬다고 한다. 어젯밤 하도 침울해하기에 내 옆에서 자도록 해주었는데, 자면서 하는 말이, 얼마 전 본 티비인지 어떤 영상에서 어떤 엄마가 남편과 아들을 두고 집을 나가서 자살했다고, 그 생각이 나서 자기는 너무 무섭다고.. 엄마는 도연이를 위해서 죽을 수는 있지만 도연이를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애교라곤 하나도 없고 무뚝뚝하고 시큰둥한 첫째의 이런 모습이라니. 아이들은 참 다르고, 다른 배움과 다른 기쁨을 준다.

지하철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이대역쯤에서 어제 받은 안내문자를 열려는데 갑자기 문자가 먹통이 되었다. 일전에 받은 안내문도 뽑아왔고, 온갖 지도 앱이 있는 휴대폰도 손에 들고 있었지만, 뭔가 직접적인 안내문자를 날려버린 상태라는 것은 찝찝했고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싶어서 사소한 일인데도 허둥댔다.
신촌역은 20대에 꽤 많이 왔었지만 서강대는 처음이었다. 지도를 계속 보면서 가는데, 지도를 본다는 사실(나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낸다는 게 왠지 부끄럽고 경계가 되었다.
서강대 입구에서 코로나 방문록을 쓰면서 앞에 앉은 두 대학생을 보며 ‘아, 대학생은 이렇게 생겼지’ 하고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오기 전 안내문을 보면서 지도에 커다랗게 ‘이냐시오 성당'도 있고, ‘예수회 한국관구’도 있고, ‘예수회센터'도 있고 해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했었다. 셋이 대충 모여 있는 것처럼 보였고, 당연히 ‘센터'겠지 싶어서 확실히 물어볼까 하다가 관뒀었다. 방문록을 쓰고 나서 그 대학생들에게 예수회센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이쪽으로 쭉 올라가세요”라고 거침없이 말하기에 나도 안심하고 갔다. 꼭대기까지 갔는데 아무리 봐도 성당만 보이고 피정 관련 표시가 없어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결국 전화했다.
서강대 안 이냐시오 성당 근처인데 어디로 들어가는 거냐고 했더니, 서강대 캠퍼스 안이 아니고 입구에서 쭉 더 걸어오란다. 오랜만에 익숙치 않은 곳을 다니면서 나는 역시 길을 잘 못 찾는구나, 그런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했다. 누구나 이 정도로는 헤매는지, 그런데 나는 이 정도 헤맴에 이건 나는 못하는 영역이라고 쉽게 생각해버리는 건지 궁금했다. 같은 정도의 실패에 더 많이 좌절하는 거 같달까. 어쨌든 나는 모르는 길이 무섭다.


#1. 도착 그리고 저녁식사_17:30-

겨우 찾아 안내를 받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503호. (..) 혼자서 방을 쓰고 화장실을 쓰고.. 작고 소박한 공간이지만, 뷰도 그냥 그저그런 도심이고.. 그래도 ‘아. 내가 피정을 온 이유 중 하나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였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만족스런 기분이 들었다.
방 안을 둘러보고 안내문을 읽고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하니 저녁식사 시간. 단순히 밥을 먹는다는 사실, 그 자체로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늘 기분이 좋았다.
식당에 들어서서 반찬을 보니 막 흥분되기 시작했다. 싸게 많이 팔려고(만들려고) 만든 음식이 아니야! 정성 들여 솜씨 좋게 만든 음식이야! 그리고 겉절이며 고구마줄기들깨볶음이며 연근튀김을 본 순간, 내가 좋아하는 자연식이야! 그런데.. 소고기도 있었다. 우와. 국도 건더기는 가끔 떠다니는 그런 국이 아니라 엄마가 자식 줄려고 만드는 아낌없이 내용물을 넣은.. 그런..! 나는 나도 모르게 반찬을 한가득 담기 시작했다. 이 음식을 먹으며 아쉽고 싶지 않아!
사회적 거리두기로 띄엄띄엄 앉고, 침묵 피정답게 굳이 첫 대면에 인사하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모른 척하고 먹는데 한편으로는 편하고 한편으로는 어색했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펐나, 나처럼 만족하며 먹나 괜히 궁금했다.
하나씩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여자.. 기혼도 비혼도 있는 거 같고, 직장인도 전업주부도 있는 것 같다. 30대, 40대, 50대.. 60대..? 나는 저들을 대강 나이순으로 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그 중 어디에 들어가는지는 모르겠다. 남들은 나를 몇 살로 볼까..? 아무튼 ‘여자들이 젊음을 지나 이런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구나’ 알 것 같았다.
다시 식사로 돌아와서.. 살짝 간간한 반찬은 맛도 좋았다. 너무 만족하며 먹는 한편, 움직임이 별로 없을 텐데 내가 이렇게 많이 먹어서야 되겠나, 지난주 장염을 호되게 앓아놓고..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닌데.. 여기서 배탈이라도 나면 웬 낭패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먹었다.
그런데 국과 김치까지 7가지 반찬이라니(후식도 과일 두 가지!) 피정 비용이 아깝지 않긴 하지만 수련하려 왔는데 이렇게 식탐이 일 만큼 먹을 걸 잘 주는 게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템플스테이는 안 가봤지만 소박하게 먹을 것 같고(적어도 고기는 없겠지) 대학 때 예수원에 2박3일 간 적이 있었는데(물론 거긴 무료이긴 하지만) 밥도 정말 조금 주고 반찬도 두 가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정말 식탐이 아니라, 아니 부추전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다니 하며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풀떼기 반찬들을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밥도 그렇고 숭늉도 그렇고.. 그리고 식간에 달달한 게 엄청 당겼던 기억이 난다.
영적 수련에 그런 소박함이 필요한 건지, 잘 먹고 잘 쉬는 게 더 좋은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엄청 비장한 마음으로 온 건 아니어서.. 맛있는 밥상, 정성 가득하게 차려진 밥상이 나는 너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양치하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 30분의 오리엔테이션과 한 시간 기도 강의.
영적인 것을 배우기 위해 모인 곳의 분위기가 익숙하기도 하면서, 마스크 쓰고 말을 안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질문은 괜찮지만) 있으려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로서는 사회적 모임 자체가 오랜만이다 보니 새삼스런 느낌이 있었다.
강의가 재밌으면 좋으련만,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신부님이 살짝 지루한 화법이셔서 피곤함이 좀 몰려오기도 했다.
여기 있는 2박3일 동안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씩 네 번 기도하라고 하신다. 산책도 꼭 하라고 하고.. 공식적인 일정은 첫날엔 오티와 기도 강의, 둘째 날엔 미사와 기도 강의, 셋째 날엔 미사, 그리고 둘째 날, 셋째 날에 30분씩 면담이 다다. 처음엔 8시, 12시, 6시 식사 그 사이사이가 길겠다 싶었는데, 시간 맞춰 그런 것들 하려면 쫓기는 것까진 아니어도 꽉 찰 것 같다.
샤워하고 이걸 쓰고 나니 슬슬 졸음이 몰려온다. 기도하고 자고 싶은데.


#2. 밤 기도_21:30-

기도를 통해, 침묵 피정을 통해 내가 무얼 얻고 싶은 걸까.
하나님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달라고, 나는 흔들리고 싶지 않다고 부인할 수 없도록 보여달라고 기도하다가..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기도에도 침묵을 더 하기.
소명을 발견하고 싶다고, 나의 에너지를, 내 삶의 방향과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할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다가 ‘어떤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많은 기대를 하면서도,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실재하는 하나님이 기다려진다.


|둘째 날_9/26 토|

#3. 아침 묵상_7:00-8:00

(다니엘 3:51-90)
자꾸만, 모든 것들을 불러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는.. 다니엘의 세 친구의 노래에 처음부터 읽자마자.. 불편한 심기가 들었다. 왜 그렇게 찬송해야 하나. 하나님은.. 그리도 찬양받기 좋아하는 분인가? 우리를 만드신 이유가 그렇게 찬양받고 높임 받으려는 이유인가. 스스로 완전하신 분이.. 왜 그런 걸 그리 필요로 하고 좋아하시나..? 나, 인간인 나조차도, 내 아이들이 내게 그런 계속해서 찬양과 높임을 한다면 기쁘기보다는 마음이 불편할 거 같은데..
그러나 이런 찬양과 높임은 우리 인간의 문제라는 깨달음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 찬송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인간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자신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찬양을 요구하신 적이 없으신 것 같다. 마치 안식일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처럼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도 인간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 아닐까?
그를 찬양하고 높이기 위해선 일단 내가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나는 주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코드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날 때, 찬양할 때, 그리고 일이 뭔가 내 마음대로(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이다. (어제 여기 올 때처럼) 그런 때면 뭔가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을까 하고 곰곰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면? 어그러진, 못난 인간들을 볼 때도, 익숙하고 내 계획대로(예상대로) 되어가는 일상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면. 나는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주인은 하나님이며 나는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의 뜻에 따라 내 몫을 감당하며 감사해야 할 위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그토록 공격/방어 태세였던 것도, 부조리한 세상이나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낙심하거나 화가 난 것도..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고 내가 감당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싶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주님, 찬양 받으소서. 당신은 드높은 찬송과 드높은 찬양을 영원히 받으실 이름입니다. 아멘.


#4. 아침식사 그리고 산책_8:00-

안전이 보장되고 배고플 걱정 없이 주어진 혼자만의 공간은 정말 좋구나.
아침 묵상 후 아침식사를 하고(토스트, 잼, 치즈, 스크램블, 우유, 스프, 사과, 양배추샐러드), 경의선 숲길 산책에 나섰다.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겨우 입구를 찾았다. 도심 속에 이런 길을 만들어놨구나! 여기 사는 사람들에겐 정말 좋겠다 생각했다. 숲길 양 옆으로 늘어선 상점을 눈여겨 보았다. 비싼 땅값을 감당하며 있으려면 사람들이 찾아올 만하게 해놓았겠지 싶어서.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지금 말고 다음에. S 생각이 많이 났는데, 이렇게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던 친구이기도 해서 그렇고, 그가 공덕역 근처에서 자취를 했었기 때문에도 그렇고, 이전에 예수원에 함께 갔었기 때문에도 그렇다. 옆에 있다면 같이 오자고 했을 텐데. 지금의 나를, 이런 혼란스럽기도 하고 뭔가 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한 나를 제일 잘 알고 받아들여주었던 친구였던 거 같다. 좀 더 정확히는 지금 느끼고 있는 나, 가장 편안하고 스스로 만족스런 내 모습을 가장 잘 아는, 그 모습으로 만난 친구랄까. 그가 보는 내 모습이 내가 아는 내 모습이고 내가 편안하고 만족스러워하는 내 모습이었다. 그래서 난 그녀가 그리운가 보다. 특히 이렇게 영적 여정에 나설 때.. 함께 하고 싶다.
지도엔 없지만 공덕역 이후에도 경의선 숲길이 이어져 만들어졌다기에 찾아보는데 두어 번 실패해서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이리저리 다녀본 끝에 찾아냈다. 그늘이 없었고, 아파트 옆 산책로 느낌이 더 났지만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걸으라고 마련해놓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10시가 다 되어가자 슬슬 더워져서 겉옷을 벗어 허리에 묶었다. 돌아오는 길은 길을 찾느라 아까만큼 긴장하진 않았지만, 뭔가 숲속을 걸을 때 느끼는 평온함, 그런 건 못 느꼈던 것 같다. 도시의 소리가 너무 많이 들려왔고, 반려견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걷는다는 것, 땀이 날 만큼 걸었다는 게 좋았다. 한 시간 반쯤 산책하고 돌아와, 물을 달게 마시고, 11시에 있을 면담을 위해 10:45에 알람을 맞춰놓고 이불 위에 사바아사나 자세로 누웠다. 잠이 솔솔 왔다. 양말, 시계, 안경을 벗어던졌다.


#5. 면담 1 + 점심식사_11:00-11:30

알람 소리에 깼고, 매무새를 고치고 면담실로 갔다.
조금이라도 기도하다 가고 싶었는데 자다가 가게 되다니.. 그래도 ‘꼭 이렇게 해야 돼’, ‘잘 해야 돼’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앞 사람이 면담 중이어서 밖에서 좀 서성대다가 11시에 맞춰 들어갔다. 어제 작성한 상담 설문지는 왠지 읽지 않으신 듯하다. 나를 위해 준비된 이야기 같은 것도 있을 리 없고.. 신부님 역시 성령의 인도에 따르려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런 마음가짐이었으므로 이어지는 침묵이 불편하거나 괴롭지 않았다.
세례명이 뭐냐고 물으시기에 개신교인이라 답했고 어떠냐고 물으시기에 편안하고 좋다고 했다. 지내면서 그리고 기도하면서 내게 든 생각, 느낌을 물으시기에 아침묵상에 대해 말씀드렸다. 들으시더니 차분한 사람 같다고 하시네.. 흠.
그동안 궁금했던 기도와 명상의 차이에 대해 여쭤보았다.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복음,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이라는 답.
기도방법에 대해서도 여쭸다.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하느냐고. 나는 원래 기도를 소리 내어 하지 않고 ‘명상적 기도’처럼 하는데, 생각을 없애기보다 깊은 생각을 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그런 기도 스타일이 틀린 거냐고. 긍정의 기도와 부정의 기도가 있는데, 전자는 오관을 따라가는 기도, 후자는 그런 것들을 부정하는 무념무상의 기도라고 하셨고,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틀린 것은 아니다, 자기에게 맞는 걸 찾으면 된다고 하셨다.
더 묻고 싶은 게 없냐기에 머뭇거리다 개종 고민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그리스도인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프레임 안에서 세 가지 부르심에 맞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하셨다. 첫 번째가 존재론적 부르심. 하나님을 따르기로 한, 끊임없이 회심하는 것이며, 가장 기본적인 부르심이고 가장 중요한 거라고. 두 번째가 신원적. 신부나 목사가 될 것이냐 평신도가 될 것이냐, 개신교인이냐 천주교인이냐, 이 직장에 다닐 것이냐 등등. 세 번째가 달란트. 자기 재능을 어떻게 쓸 것이냐.
두 번째, 세 번째 부르심은 첫 번째로 향해야 한다. 그걸 방해한다면 잘못된 게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따르고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데 개신교인인 것이 방해가 되는가? 성당에 다니는 것이 그의 뜻대로 사는 데 더 부합할까? 고민해보아야겠다.
좋으신 하나님.
면담 후 30분 동안 성당 안에서 기도했고, 점심식사를 했다.
닭도리탕에 만두, 계란말이, 견과류멸치조림, 겉절이, 알감자조림, 황태무국. 그리고 포도.
또 너무 과식하고 말았다. 그래도 맛있었다.

6층 옥상에 올라갔다. 순례자의 길이라는 동그란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걸었다. 손바닥만 한 공간을 이렇게 뜻깊은 공간으로 만들다니!
코로나 혹은 추운 날씨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할 때 거실에다 그려놓고 아이들과 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에 돌아와 이불에 배 깔고 엎드려 쓰는 중이다.


#6. 저녁기도_21:00-12:00

오후에 단잠을 잤고, 미사를 드렸고, 저녁을 먹은 후 기도 강의를 들었다.
누가복음 2:1-14로 관상기도를 하라는 숙제를 주셨는데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어마어마한 사건이자 기쁜 일이 내게 감흥이 잘 되지 않다니. 좀 더 씨름해 볼까 하다가 저녁무렵부터 내 머릿속을 채운 문제를 바로 보기로 했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하는 문제. 내일이면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이곳에서 받은 은혜, 침묵과 기도, 하나님께 집중함으로써 갖게 된 평안을 금방 잃어버릴 것이다. 그럼.. 이런 시간들에 대해 회의하게 될 것이다. 몇 번 그랬듯이.. 나는 또 실패할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
머리로 기억되는 은혜, 한때의 경험으로 치부되는 하나님과의 만남,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정확하고 쉬운 변명으로 무장한 채 점점 더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유리되는 삶, 그러다 그분의 능력에 대해서도 냉소하게 되는.. 그저 그런 삶.
에베소서 6:10-17 묵상했다. 나는 악마의 간계와 맞서야 하는 것이고, 그분이 주시는 그분의 힘으로 굳세어져야 한다. 내가 강해지려고 내 힘을 내는 게 아니다. 자꾸만 연약해지려고 하는 나를 그대로 두려는 것은 악마의 간계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싸우고 싶지가 않다. 긴장하며 살고 싶지가 않다. 하나님 안에서 강해지려고 매일 사수하듯 말씀을 읽고.. 숙제하듯 그분의 힘을 덧입고 싶지가 않다.. 그냥 좀 힘을 빼고 살고 싶다.
너무나 지친 걸까? 하지만 정말 전쟁이 일어났고 내 눈앞에서 전투가 벌어지는데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고,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또 적이, 상황이 나를 가만두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어리석은 것이다. 그래도 괜찮을 줄 아는 건 착각이다.
하나님의 무기. 진리, 의로움, 평화의 복음, 믿음, 성령의 칼 곧 말씀. 이런 것들로 완전무장 하라는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군사가 되는 걸 미적거리다니..
나의 풀어진 마음, 지친 상태를 하나님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나는 것이 어렵고 재미없고 억지로 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 아니라, 기쁨이고 축복인 것을 맛보아 알게 해달라고.. 악마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이 주신 힘으로 강하게 해달라고.. 기도 드렸다.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엄청난 변화를 보여주겠다가 아니라, 아주 작은 한 가지를 지켜나갈 수 있다면..


|셋째 날_9/27 일|

#7. 아침묵상_7:00-8:00

무념무상의 기도로 그분을 경험하고 싶었다. 잘 되진 않았지만,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그분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을 간직해둔다.
어제에 이어 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을 사수하는 것이라든지,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의 어려움을, 그럼에도 그래야 함을 알기에 뭔가 결단할 수밖에 없는 깨달음을 얻기 원했지만.. 그런 기도로 가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하나님이, 내가 배운 하나님이 맞냐고 기도하게 되었다. 그 믿음이 흔들리기에, 여러 가지 일상의 번잡함과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는 게 어려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신은 있는데, 인간들이 찾다가, 여러 종교가 생긴 게 아닐까. 그중 몇 가지 이유에서 더 세련되고 설득력 있게 체계를 잡은 불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이 널리 퍼진 게 아닐까. 그 가운데 기독교를 믿고 배우고.. 다른 종교는 다 틀렸다고밖에 할 수 없는 믿음체계를 내면화해서 코끼리 중 다리 하나를 만지면서 내가 아는 것만 맞다고 하는 오만과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고민이 다시 들었다.
그런 마음을 내어놓는데,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다른 사람들 말고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다. 이 물으심에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자꾸 증거를 보여달라는 내게, 이 땅에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과 죽으심과 부활하심 말고 더 큰 증거가 있겠느냐고 하는 반문이 들었다.
나를 덮은 어리석음, 무지, 오해, 어두움을 걷어내시고, 깨닫게 하시길 기도했다.


#8. 아침식사와 산책_8:00-

어제랑 같은 메뉴였다(샐러드 소스는 다르고). 한 번에 네 장씩 구울 수 있는 토스터기 두 대를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용하느라 어제는 조금 어수선했는데, 누가 그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자기 것을 굽고 꺼낸 후 뒷사람 것을 토스터기에 넣고 앞으로 갔다. 좋네.. 하고 생각하며 줄 서 있는데, 내 앞앞 아저씨가 세 장을 가져가면서 한 장을 다음(내 앞) 사람 접시에 두고 갔다. 보니까 좀 많이 탔다. 내 앞사람 청년이 그 탄 거를 그대로 가지고 새로 나온 두 개 중 더 탄 거 하나를 자기 접시에 넣고 안 탄 거를 새 접시, 그러니까 내가 먹을 그릇에 놓고 갔다. 나는 그의 몸에 밴 배려심에 조용히 탄복했다.
그런데 보통 두 개를 먹으니까 나도 한 장이 더 나오길 기다리는데 안 나오는 것이다. 내 뒷사람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 일단 앞으로 가서 잼도 놓고 치즈도 놓고 하는데 토스트가 나왔다. 나는 뒤로 가서 그 사람을 제끼고 알맞게 탄 토스트를 내 접시에 넣고 좀 더 탄 토스트를 그의 접시에 두었다. 그리고 조금 탔는데 버리시려면 버리시라는 눈길을 보냈다.. 새 식빵을 토스터기에 넣고, 다음 음식들을 내 접시에 넣으며 나는 바로 후회했다. 내 앞앞 아저씨, 내 앞 청년, 그리고 나.. 아주 작은 일에서 각자 어떤 사람인지 드러난 것이다.
나는 차라리 한 장만 넣은 상태로 왔다가 마지막에 다시 더 가져올 일이었다. 아니면 적어도 내 거 한 장만(그게 덜 탄 거라도) 가져올 일이었다. 굳이 더 탄 거를 다음 사람 그릇에 넣고 오다니.. 내 앞 사람처럼 내가 더 탄 거를 넣지는 못할 망정.. 매번 탄 거를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딱 한번인데. 만약 나 스스로 탄 거를 선택했다면 내가 먹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편했을 테지만, 앞 사람이 주고 간 탄 토스트를 먹는 사람은 아침부터 불쾌한 심기를 느꼈을 것이다.
일상에서 주님을 따르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왔지만.. 난 이렇게 작은 일에, 일상이 아닌 이곳에서도 넘어지고 말았다. 식사 내내 그런 수치감, 패배감에 휩싸여야 했다.
산책하면서도 비슷했고.. 돌아와 성당에서 기도하는데 잡생각이 너무나 많이 났다. 이제 면담하러 간다.


#9. 면담 2_11:00-11:30

일상으로 돌아갈 것에 대한 걱정, 이런 시간들에 대한 회의감을 말씀드렸더니 모든 사람들이 영적 여정에서 consolation(위로)과 desolation(황량함)의 리듬을 겪는다고 하셨다. 몸이 최상의 컨디션과 안 좋은 컨디션을 왔다갔다 반복하는 것처럼 영의 상태도 그렇다고, 이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다고. 콘솔레이션의 상태에서는 감사해야 하고, 데솔레이션의 상태에서는 더 의지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데솔레이션이 왜 오느냐. 1. 게으름 때문일 수도 있고, 2. 콘솔레이션의 상태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3. 영적 성장을 위해. 오히려 이런 메마름, 사막과 같은 황량한 상태에서 더욱 성장하고 신앙의 여정에서 꼭 필요한 시간들이라고.
그러므로 나는, 1. 지금 이런 상태가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돌아보고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하고, 2.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3. 이 시간들을 잘 견뎌야 한다. 지금이 너무 힘들어서 내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을지라도 내가 살아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라는 걸 기억하며.
또 지난해와 이번해 나의 화두였던, 하나님이.. 내가 배운 하나님이 맞는지 궁금하다고, 다른 종교에서도 각자 신을 찾고 구하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냐고, 모두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자기만 진짜라고 하는 것 같다, 난 헷갈린다.. 말씀드렸다. 나에겐 너무 어려운 문제,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의문이라 5분도 남지 않은 시간에 말씀드리면서 단지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에 대해 신부님은 모든 종교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자기만 맞고 자기가 옳다는 식의, 위에서 아래로 가르치려는 근본주의적 흐름과 나 역시 장님일 뿐임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려는 흐름..
우리는, 그리스도인은 어제 말한 대로 부르심, 존재론적 부르심에 계속 응답하는 삶을, 그 여정을 순례자처럼 살아야 하는 거고, 계속 응답하는 과정, 그것은 다른 어떤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오직 내가 해나가야 하는, 해내야 하는 여정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인사하고 기도실로 가 엎드려 기도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다. “지금 나의 상태.. 하나님의 부재로 메마르고 힘겹지만,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에 그랬듯,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게 아니라는 것 믿습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나는 노력할 것이다. 당장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 해도. 그리고 이 모르겠는 여정을.. 주님께 인도하심을 구하며 계속 나아가야겠다.


#10. 마무리_16:15-

짐도 거의 꾸렸고 5시 미사를 드리면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2박3일이 정말 금방 지나갔다.
잘 먹고 잘 잤고 잘 쉬었다. 그동안 세 번의 낮잠을 잤다. 어제도 오늘도 한 시간 이상 산책했고. 30여 년 전 삼촌 결혼식 때 드린 미사를 빼면 처음으로 미사에 참여했다. 영성체도. (교회식으로 내가 직접 빵을 집으려다가.. 왼손을 오른손 위에 대고 손을 펴면 신부님이 주시는 거라고 가르침도 받고) 오티 때와 면담 때 말을 하긴 했지만 침묵으로 시간을 보낸 것도 좋았다. 어렵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핸드폰은 아예 끄고 잊어버렸다면 더 좋았을 텐데, 집에서 비상상황이 있을까봐 하루 두 번씩 켜보았고, 어제는 S 생각이 너무 나서 메일을 보냈고 오늘 답장 받고 또 답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글을 쓰니, 그렇게 침묵 같은 느낌이 없었다. 그래도, 일상에서 말을 아껴야겠다는, 그러는 게 훨씬 좋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도는.. 더 깊게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기도에 집중하기보다 쉬는 데 더 우위를 둔 거 같다. 그래도 기도를 통한 깨달음, 모든 일에 주님을 찬양하기, 내 일상에서 전투하기 싫다고 빠져나갈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겠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신 것도.
면담을 통해 많은 의문과 회의가 풀린 것이 참 좋다. 존재론적 부르심.. 1차적 부르심에 맞게 모든 걸 판단하면 된다는 것, 회의감이 오는 시기,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는 반드시 오는 것이며, 그때에 오히려 의지를 내어 기도해야 할 것이라는 말씀과 이 시기가 영적 성장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은혜를 구하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현재에 발 딛고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겠다. 그리고 근본주의 흐름에 들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듣고 배우려는 흐름에 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계속 응답하는 순례자의 길을 가겠다.
마지막 미사가 기대된다.
아쉬움을 안고.. 집에 가야지.

마지막 미사 후.
간다. 예물을 못 드린 게 아쉽다.
신부님의 말씀이 좋았다.
신부님은 문 앞에서 배웅 인사 하실 때 환하게 웃으시며 나에게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오세요!”라고 하셨다. 미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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