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Happy End, 2025)>, 네오 소라
이별 앞에 상쇄된 마음들은 전부 어디로 흘러갈까. 우리는 늘 새로운 만남과 떠나간 인연 사이 순환의 연속을 맞이하며 관계의 실타래를 영위한다. 지진은 현실로 닥쳐오고, 현실은 땅끝으로 묻어둔 채 조작된 평화를 잉태하는 정부와 기득권층이 점령한 근미래 일본. 그 안에서 나아갈 미래가 멀게만 느껴지는 고등학생 코우와 유타 그리고 밍과 아타, 톰은 혼란스러운 세상 속 자신들의 안식처인 음악 연구동아리의 낭만과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아직은 낯설기만 한 사회의 앞에 발을 맞춘다.
<해피엔드> 속 근미래 세상은 여러 ‘if’ 상황을 야기한다. 일본 사회의 무한 난제인 지진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닥쳐오는 재난을 대비해야 할 정부는 ‘감시’ 체계와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에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 소시민들은 국가 세력에 의해 철거되고, 학교에는 ‘판옵티’라는 AI 벌점 감지 시스템이 도입하는 등 일본 국민들의 삶은 철저한 탄압과 독재 아래 굴복한다. 이러한 영화 속 배경은 현재 한국을 비롯해 독재 정권으로 흐트러진 세계적 정치 혼란 현상과 면밀히 맞닿아 있다. 정말 ‘만약’, 비상계엄이 성공했더라면, 국민의 목소리가 무력한 소음으로 그쳐 버렸더라면 일어났을 가까운 미래의 상황들이 단 두 시간 동안 펼쳐진 스크린 화면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세상살이에는 관심이 없고, 한참 친구와 취미에만 푹 빠져 있을 나이. 유타는 몰래 들어간 클럽에서 경찰이 들이닥쳐도 끝까지 테크노 디제잉을 즐기고 싶어 하는 평화주의자다. 반면, 코우는 재일한국인 신분으로 청년 인구가 폭증한 사회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체류자의 삶을 살아간다. 늦은 밤 함께 서브우퍼를 옮기다, 경찰의 불시 검문을 받을 때도 일본인 유타는 신분 확인뿐이지만 코우는 매번 서류를 요구당하며 이곳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들의 행색은 누구와도 다를 바 없는 고등학생일 뿐이지만, 극우 정권이 독재하는 사회에서 어떤 권리도 제 목소리가 될 수 없었다.
코우는 이에 반발하지 못하고 힘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체류자들의 삶에 불만을 느끼기 시작한다. 평화로운 카페 밖 창문으로 비치는 시위대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소리를 내다가 검문을 당하는 동급생 후미의 열정을 알아보며, 점차 자신이 속한 세계의 불합리함을 빠져나가려 한다. 그와 달리, 테크노 이외의 소리는 세상의 소음으로 치부하며 음악과 낭만에만 푹 빠져 살아가는 유타는 점점 자신과 생각을 다르게 하는 코우를 이해할 수 없다. 늘 한 쌍처럼 붙어 다니고, 제가 가는 길에 언제나 함께 해주던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의 우정은 정치적인 견해와 좁힐 수 없는 생활의 차이들로 조금씩 금이 간다.
결국 그들은 졸업식 이후 매일 같이 장난을 치며 내일의 만남을 기약하던 육교 다리에서 암묵적인 이별을 예지한다. 모든 인연은 유한하다는 것을, 철없이 함께 웃을 수 있던 지난날들을 뒤로 하고 그들은 현실을 마주한다. 그 누구도 마지막이라는 것을 고하지 않았지만, 이해를 뛰어넘는 감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코우와 유타는 앞으로 서로가 없는 세상에서 각자의 삶을 연명해 나갈 것이다. 훗날 테크노의 낭만보다 삶 존속의 무게를 더 느끼게 되는 어른으로 성장한 다음이 온다면, 한 번쯤 떠올려 볼 어린 시절의 인연으로 서로의 기억 한편에 남게 될 것이다. 그들이 매일 하루의 끝에 오늘만의 이별을 나눴던 육교 다리에서, 유타는 결코 코우가 서 있는 반대편 그림자를 밟지 못했고, 코우는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인연의 시작과 끝 모두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언제나 함께일 것처럼 일상에 깊이 녹아들었지만, 또 어느 순간 훌쩍 떠나버릴 수도 있는 관계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순한된다. 시절은 찰나이다. 네오 소라 감독은 연이 끊어진 지 오래전 인연에 연락할 용기를 줄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필자 또한 영화를 보며 떠오르는 과거의 얼굴들이 몇몇 스쳐 갔지만 결국 실행할 용기로 닿지 못했다. 코우와 유타 또한 그 용기를 얻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낸 후가 될지 미지수인 채로 막을 내렸지만, 분명한 것은 반짝이던 한때를 함께 해준 이의 얼굴은 무한한 추억이 되고 존속의 원동력이 되어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