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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유통기한

by teresa

실재하지 않는 마음이 다 무슨 소용일까.

마음도 감정도 기분도 형체가 없다. 불투명한 심증. 그냥 그렇다고 느끼는 것. 그것만이 전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형의 무언가가 나의 하루를 옥죄인다. 감정은 모양도 없고 허파도 없어서 영생의 해파리처럼 나의 영원을 함께하는데. 그럼 이런 마음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 결국 유통기한도 절대적인 건 아니잖아. 그럼 정말 나는 이렇게 기분에 잠식되어 살다가 이보다 먼저 죽게 되는 걸까?

지나간 것을 버리기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것들은 애석하게 폐기되지도 않는다. 그저 기억에 의존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방법이다. 기억을 잊고 지우고 깨뜨리는 것. 그럴 수 없다면 그때의 형상과 감정을 반추하며 지속되는 행위가 끝없이 내 발목을 떠나지 않는다. 참 억울하다. 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버릴 수도 없는 걸까. 그럼 나는 언제까지고 나를 스친 부정들을 내 안에 담아두고 흘러 보내지 못한 채로 정체되어야 하는 걸까. 그걸 잔뜩 담아 둔 마음이 너무 무거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조금만 무게를 덜어낸다면 굴러 가기라도 할 것 같은데. 그 조금을 덜어내지 못하고 멈춰 있어 나아가지 못한다. 앞으로, 앞으로. 옆으로, 옆으로. 뒤로, 뒤로. 그 중 무엇하나 제대로 부딪힐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자꾸자꾸만 늘어지는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로. 그냥 계속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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