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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민 Jun 16. 2017

#91 교실 연애학

2017.6.9. 연애 많이 해본 이가 애들과도 잘 지낸다. 고 주장 중

다음은 실제 연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학교 이야기지만 연애를 아직 안 해보신 분이라면 참고할 만한 내용입니다. 

1. 만유인력의 법칙
-언제나 무거운 이가 더 큰 힘을 받는다. 더 사랑하고 더 아쉬운 이가 더 큰 감정을 느낀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 누가 더 잘 보여야 할까? 누가 더 아쉬울까? 교사는 언제나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전 해에 죽고 못살다가도 다음 해 새 선생님 만나면 인사도 제대로 못 받는 일이 다반사. 아쉬워할 필요 없다. 원래 더 사랑한 사람이 상처를 받고 끝나는 것이 이 바닥의 섭리니까. 다행히 교실은 '보람'이라는 감정으로 승화되니 상처라고 생각 말자.

2. 일상적인 잔 펀치 vs 가끔씩 큰 펀치
-이것에 대한 역사적 논쟁은 '결국 케바케'로 끝났지만 교실에서 만큼은 '가끔씩 큰 펀치'가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학기에 한 번쯤 확 풀어주는 이벤트를 가져 준다는 것, 당신의 주가를 올릴 것이다. 에너지도 적게 들고 말이다. 그리고 이별 뒤엔 항상 즐겁고 좋은 일들만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3. 밀당은 언제나 유효하다.
-상대방과의 사랑이 소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은 서로의 정신건강을 위해 좋은 일이다. 친절하고 단호한 교사? 그게 바로 밀당의 교육학 버전이다.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못해주는 건 안된다고 확실히 하는 거다. 내 한계를 알려주는 거다. 그럼에도 언제나 마음과 시선은 너에게 있다는 걸 어필하는 거다.

4. 유머는 언제나 호감을 준다. 그것이 썰렁하더라도.
- 망가지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부끄러운가? 나에게 이 정도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방은 특권과 편안함을 가진다. 썰렁할지라도 계속 상대방을 웃게 만드려고 노력해라. 늦은 저녁, 세수하려고 얼굴에 비누칠하다가 당신을 생각하며 피식 웃는 날이 온다. 좋은 동기유발을 하는 이유, 교실놀이를 하는 이유! 솔직히 다 하나다. 서로 마주 보며 웃게 하기 위해서다. 

5. 이별은 예정되어 있으니 하고 싶은 걸 하라.
- 연애하면서 이것저것 재고 한 30년 후까지 생각하다 보면 눈만 높아진다. 당장 이 사람과 즐거울 일을 생각하기만 해도 모자란 시간인데 말이다. 당장 내일 운석이 떨어져서 공룡 꼴이 날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학생들의 미래는 중요하지만 당장 내가 학생들과 하고 싶은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자. 우리가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실제 200일도 안되니.

6. 기념일을 챙기는 것. 연애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 처음 만난 한 달, 100일, 여름방학, 겨울 방학, 첫눈 오는 날.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이런 날 함께 할 수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7. 절대, 절대, 절대, 비교는 하지 마라.
- 은연중에 나도 모르게 나오는 비교 습관이 있다. 연애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비교'다. 비교는 자연스럽게 나의 말투와 행동에서 차별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가장 분노할 때가 바로 차별을 느꼈을 때라는 것을 잊지 말자. 특히, 전에 가르쳤던 학생과의 비교는 의미도 없고 속만 상한다. (한 3,4월은 지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이 아른거릴 것이다. 그래도 빨리 잊어라. 그게 지금 만나는 사람에 대한 예의다.)

8. 최근 셀카를 찍는 횟수가 줄었는가? 그럼 기술을 보여줘야 할 때다.
- 누구나 리즈시절이 있다. 그러나 매우 짧다. 신규 때는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많았는데, 갈수록 줄더니 이제 학급 안내판의 사진조차 언제 찍은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되었다면,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4,5년 차까지는 활짝 웃기만 해도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고 수업에 집중해주는 기적을 보였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다면 '전문직'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따뜻한 마음과 온화한 미소, 언어 행동과 수업능력이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연습이라도 해서 기술로 만들어야 연애가 오래간다.

9. 연애가 오래될수록 설렘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 설렘을 연애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연애가 갈수록 시시해진다. 연애는 설렘과 안정감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은 거다. 학기 후반으로 갈수록 예전 같은 재미는 덜 하겠지만 서로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감정이 서로를 편하게 해준다. 이때 주의할 것은 이 편안함을 무기로 상대방을 낮잡아 보거나 막대하지 않은 것이다. 가장 편안하고 믿었던 대상으로부터 받는 상처는 배신감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특히 교실에서 권력을 많이 쥔 교사라면 더욱 경계해야 한다.

1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연애의 진리는 바로,
'많이 해본다고, 많이 안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연애는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일이므로 언제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옳다. 이것저것 생각 말고 마음 가는 대로도 해보고, 감정은 솔직하게, 상황은 정직하게 이해시킬 때 비로소 상대방과의 진짜 연애를 하고 가슴이 잘 뛰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상대는 아직 여물지 못했으니,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 진짜 연애가 뭔지 보여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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