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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민 Aug 22. 2016

당신의 교실이 실패하는 이유 5

교실 속 문제 상황 프레임 다루기(2)

교실 속 프레임(관점) 다루기 두번째 이야기

첫번째가 수업과 교실, 규칙에 대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다루었다면 이번화는 실제적으로 학급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지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학생과 학생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교사의 순간적인 갈등, 우리가 흔히 실수하는 것들에 대해 짚어볼 것이다. 교실에는 '교사'라는 중요한 잣대가 있다. 학생들은 판단하기 어려울 때 평소 교사의 언어적, 비언적 모습과 기존의 판례(?)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므로 첫 프레임은 정말 중요하다. 이 후 등장하는 이야기 및 등장인물은 필자가 경험하고 실패한 실제 내용을 각색한 것이며 특정 사건과 인물과는 관계가 없음을 밝혀 둔다.





프레임 #4  내가 너를 싫어하는 이유, 그건 너를 좋아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어.


어느 날 교우관계 조사 후 과반수의 아이들이 특정 학생에 대해 불쾌감과 비호감을 나타냈다. 그 학생들을 따로 불러 이유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항상 콧물을 자주 흘려요. 그래서 항상 코 묻는 휴지를 가지고 다녀요." 초등학생 답게도, 그 학생이 싫은 이유는 단순히 코를 많이 흘리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비염환자들이 많다. 심한 비염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고 짜증을 잘 내거나 기분 변화가 심할 수도 있다.) 


몇 년 전이라면 그 아이를 불렀을 것이다. 친구들이 너의 그런 모습을 싫어하니 고치라고 했을 것이다. 휴지는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하거나 코를 푼 즉시 버리라고 말이다. 생각을 바꿔본다. 


"누구나 콧물이 나온다. 그런데 그것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면? 빨아 들이키거나 어딘가에 휑 풀거나 혹은 옷에 닦아 버릴 것이다. 다시 묻는다. 콧물이 나왔을 때 휴지에 닦는 친구와 그냥 옷에 닦아 버리거나 바닥에 풀어 버리는 친구 중 누가 더 남을 배려하는 것 같아?"


학생들이 우물쭈물 대답한다. 누가 더 깨끗하고 다른 이를 배려하는지 말이다. 그 이후로 학급의 학생들은 비염 학생에 대해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코를 파거나 침을 뱉고 싶을 때 휴지를 가져와서 위생적으로 처리하고 버리자. 누구처럼. 


학생의 특정한 모습을 1차원적으로 판단해서 결론을 내린다. 콧물휴지는 더럽다. 뚱뚱하면 느리다. 목소리가 작으면 소심하다와 같이 학급에는 생각할 거리가 있다. 교사가 고민하여 바꿔보자.  뚱뚱하면 느리지만 무겁고 안정적이다. 목소리가 작으면 다른사람을 배려하고 경청할 줄 안다. 등으로 말이다. 내가 너를 싫어할 이유는 사실 좋아할 수 있는 이유도 된다고 말이다.




프레임 #5  화는 참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잘 흘려보내는 거야.


욱하는 성격,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학생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이런 학생이 다른 학생들과 문제가 생기면 교사는 화가 난다. '도대체 왜 이럴까? 이 아이는 왜 조그만 일에도 이렇게 분개할까?' 하고 말이다. 그런 학생이 불쑥 튀어나올 때 마다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부드럽게 말했지만 반복된 일상에 어느날 지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너 도대체 왜그러는 거야!"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성인이고 교사임에도 화를 낸다. 이건 못참아서 내는 거다. 그 아이를 대면한 시간과 말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 "참을 줄 알아야 해." 하지만 화는 참는 것이 아니다. 적절히 잘 흘려 보낼 수 있는 당연한 감정 중의 하나일 뿐이다.  생각을 바꿔본다. 사실 뾰족한 대안도 없었다. 


"너, 앞으로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네?"

"대신 화가 날때 화가 난다고 이야기 해줘."

"네??"


그리고 돌아와선 학급친구들과 함께 화내는 연습을 했다. 실수로 식판을 넘어뜨린 상황, 빌려간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복도에 부딪쳤을 때 등등 평소에 화가 날만 이야기들을 조사하여 역할극을 하였다. 평소에는 어떻게 했는지 그대로 해보는 것이다. 역할극이 시작되었다. 복도에서 부딪히고 사과도 없이 가버리자 아이가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서는 바로 교사에게 온다. 


"선생님, 00이가 절 치고 가버렸어요"

"그래서?"

"네? 00이가 절 치고 그냥 가서 아팠어요."

"응, 그랬구나. 그래서?"

"음... 그래서 화가 나서.."

"화가 났구나, 그래서 선생님이 어떻게 해주길 바래? 00이를 잡아다가 혼내주면 좋겠어?"

"음...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00이를 불러서 혼내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직접가서 이야기를 하고 사과를 받고 싶을지 말이다. 만장일치로 직접 사과를 듣고 싶다고 한다. 


"그럼 이제부터는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우선 상대방에게 가자. 그리고 너가 어떤 일 때문에 화가 났는지, 그리고 당당히 사과를 받아와, 그래도 해결이 안되면 선생님에게 오는 거야."


아이들은 잘못을 한 아이에게 적절한 화를 내는 연습을 한다. 짜증이 섞인 목소리와 표정을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 기분이 나쁘다면 드러내도 된다. 다만 상대방에게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정확히 의사표현을 하도록 하자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화를 적절히 내고 그것을 본 학생들의 사과도 연습해 본다.


욱하는 아이는 여전히 욱하는 성격을 고치지는 못하였다. 여전히 화를 잘 냈다. 달라진 점은 주먹이나 욕보다 제대로 된 말이 먼저 나온다는 것이다. 




프레임 #6  사과는 사실 상대방이 아닌, 자신을 위해 하는 거야.


요즘 초등학생들은 잘하는 것이 많다. 인터넷과 다양한 체험학습, 사교육까지 원하기만 하면 특정분야에서는 교사보다 아는 것이 많을 수 도 있다. 이런 학생들도 잘못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를 말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건 어른들 중에도 못하는 사람이 많다. 


어쨌든, 왜 학생들은 이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목소리가 작아지고, 우물쭈물하는 것일까. 


교사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화를 냈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한다. 분명 구성원간의 잘못이 있으면 사과와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잘못은 학생만 할까? 교사가 되고 근 몇년간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미안하다고 혹은 선생님이 잘못한 것 같다고 이야기 한적이 있을까? 오히려 대충 넘어가거나 무마해서 넘어가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바꿔보자. 


왜 학생들은 서로 다투어도 제대로 사과할 줄 모를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모범적인 반성과 사과의 모습을 글과 예화로써만 배웠기 때문이다. 영어를 십수년간 배워도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얼떨떨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리고 주로 이미 많이 혼나거나 강제되는 상황에서 그 말들을 사용하기 마련이니, 그 말을 경쾌하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학생들이 고마움과 사과하는 모습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은 바로 '교사'를 통해서 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고마워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제대로'보여주는 진짜 어른이 필요하다. 


"아까 선생님이 00이를 혼내면서 소리를 크게 내서 다른 친구들이 깜짝 놀랐던것 같아요. 선생님이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화가 많이 나버렸던 것 같아요. 00이에게는 따로 사과를 했지만 여러분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 화가 나더라도 소리를 지르지 않도록 할게요. 우리반 친구들 미안해요."


소리를 잘 지르던 내가 학생들에게 7년만에 처음 한 사과에 학생들도 당황했다. 머리숙여 사과하는 선생님을 처음봤다고 한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인간적으로 잘못한 일이 생겼을 때 보통은 혼내고는 앞으로 그러지마라 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화를 적절히 내는 방법으로 속상함을 이야기하고 학생에게 정당한 사과를 받는다. 


"왜 울어?"

"선생님께 너무 죄송해서요."

"평소에는 잘못해도 안 울 잖아."

"그냥, 이렇게 말하다보니까...저도 모르게.."

"선생님한테 그냥 혼나고 끝나는 거랑 이렇게 정식 사과를 하는 거랑 차이가 있니?"

"뭐랄까, 마음이 더 홀가분해 져요."

"그래, 사실 사과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보다는 자신을 위한거야."


학생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내면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사가 먼저 많이 하는 것이다. 공개적이고 격식을 갖추어 말이다. 물론, 미안할 일이 안생기는 것이 가장 좋지만.


http://educolla.sharedu.kr/?r=educolla&c=wednesday/new03&uid=8005

(링크를 누르면 또또샘의 '효과적으로 사과하기'글을 읽을 수 있다.)


프레임 #7  교사가 채운만큼 교실은 공허해진다.


가끔 교실을 둘러보며 스스로에게 두가지 질문을 한다. 지금 우리학급은 질문하는 권력이 있는가? 또 대답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가? 하고 말이다. 질문하는 권리, 대답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권력은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권력은 강제하게 만드는 힘이다. 학생에게 질문하과 대답의 권력이 있는 가는 그들의 질문과 권력이 그들이 생활하는 곳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것은 수업 속의 발문과는 다른 것이다. 


"선생님, 급식 때 친구들이 음식 나누어 주는 것 때문에 만날 불평해요! 어떻게 해요?"

"그래? 도대체 누가 그렇게 불만이 많아?"


문제가 된 학생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 해결방법을 강구한다. 

"앞으로는 무조건 급식 도우미가 주는 대로 받고 먹어!" 

".......네!"


문제가 생겨 학생들은 질문도 했고 해결과정에 대한 답도 구했지만 그 어디에도 권력도 권리도 찾을 수 없다. 

결국 며칠이 지나자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규칙을 지키지 않은 학생들을 나무랐다. 그 어디에도 규칙에 대한 공감과 감수성을 찾을 수 없었고, 모든 권력은 나에게만 있었다.


최초의 질문이 이랬다면 어땠을까?


"선생님, 급식 때 친구들이 음식 나누어 주는 것 때문에 만날 불평해요! 

"그래서 말인데요, 급식 방법을 바꿀 수 없을까요?"


예전이라면 아마도, "무슨 소리야, 처음에 정한대로 먹어야지."했을 것이다. 


역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될지 이야기해보자. 선생님은 너희들이 정하는 대로 따를게."


아이들은 크게 자율배식과 기존의 할당배식으로 치열하게 자신의 주장을 펴나갔다. 

도저히 이야기가 진행이 안되는 듯하다.


"그럼 자율배식 1주일, 할당배식 1주일 각각 해본 다음 다시 이야기해보면 어떠할까요?" 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시범적으로 2주간 다른 급식 방법을 체험했다. 2 주 후 학생들은 자율배식을 선택했다. 조금 느리더라도 자신이 받고 싶은 만큼 받겠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예상되는 실패가 눈에 보였지만 꾹 참았다. 역시 자율배식은 얼마못가 문제를 터뜨렸다. 몇 사람이 특정 반찬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 다시 학급회의 해도 될까요?"

"물론이지!"


아이들은 다시 원래대로 돌려한다는 주장과 자율배식을 보완하자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결국 최종 결과는 자율배식의 보완책으로 한명의 학생이 적당량을 가져가는 지 확인해주자는 것이었다. 4명의 학생이 급식 봉사 하는 것에서 1명으로 줄어든 셈이다. 그 이후로 배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를 통제하고 결정하는 권리는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는 권력에서 나온다. 마음 속에만 맴도는 그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권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입에서만 맴돌게 만드는 절대 권력을 넘어서는 질문과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실 이 과정은 1달 가까이 걸렸다.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은 교사가 규율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학생들은 질문과 대답을 잃어버린다. 교사가 채우기 시작하면 학급 속 민주주의는 공허해지는 것이다. 


교실 속 문제 상황 프레임 다루기는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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