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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민 Jun 01. 2017

#12 놀이의 역습

2016.5.9.

어린이날과 임시공휴일로 이어진 휴일에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체험학습, 놀이 활동을 했을 것이다. 나도 그 틈에 함께 놀러 가서 고생길에 동참했다. 가는 곳곳 체험할 만한 곳에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있었다. 직접 데려오시기도 하고 위탁업체를 통해 활동을 한다. 확실히 내가 어렸을 때보다 아이들은 더욱 많은 놀이, 체험 시설 및 문화가 생겼고, 프로그램도 압도적으로 많다. 특정 프로그램을 보면 이건 슈퍼맨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슈퍼맨이 체험 학습하러 왔다.'처럼 보일 정도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부터는 지극히 나의 주관적 견해이다.) 체험학습 등을 통해 아이들의 사회성이 길러진다거나 배려심, 공동체에 기여하려는 의식이 더 많이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를 많이 본다. 솔직히 말해서 버릇이 더 나빠지는 것 같다는 거다.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에서 놀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발적인 행위, 실제 생활에서 벗어난 행위이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규칙이 있는 행위.' 그런데 최근 아이들의 놀이는 자발적이지도 않고 실제 생활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 심지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없고 규칙도 무의미하다. 체험학습을 보면 그렇다. 체험학습은 학습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대부분은 놀이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체험학습 놀이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이 활동을 통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자발적이지 않아 자기주도성이 키워지는 것도 아니고, 실제 생활에서 벗어난 자기 세계가 아니기에 몰입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게다가 자신이 정한 일상 세계와 놀이터가 구분되어 놀이에 투입되는 현장감도 사라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인데, 체험학습에는 규칙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주도적으로 약속된 규칙이 없다. 아이들이 체험학습의 놀이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규칙은 오로지 '체험시간' 뿐이다. 놀이에 필요한 모든 재료, 활동 순서, 체험 방법, 활동 후 정리, 다음 놀이를 위한 반성은 모두 체험학습을 준비하는 사람의 몫이다. 체험학습을 그저 즐기기만 하는 아이에게 그 시간은 '내 멋대로 마음껏'할 수 있는 시간일 뿐이다. 조금 더 거칠게 말하면 '갑'체험활동, 혹은 체험'노동'이다. (체험학습장에 기계처럼 끌려와 도자기를 빚는 모습은 흡사 공장처럼 보였다.) 


더불어, 학급에서의 나의 모습도 반성해본다. 놀이의 끝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도 된다. 그런데 꼭 교실에서 놀이를 하고 나면 뭔가 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다. 뭔가 자꾸 설명하려 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뭘 배웠냐고 물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음.. 재밌었어요." 가 최고의 반응임을 알면서도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한다. 놀이를 가장한 학습을 한 것이다. 학급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고 배울 점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앞으로 그런 학습을 하고 싶을 땐 아이들한테 '지금부터 놀자!'라는 말은 안 해야 할 것 같다. 진짜 놀이는 편을 의미 있게 가르고, 약자의 편에서 고군분투하여보고, 강자의 편에서 압도적인 승리도 누려보고, 깍두기가 되어보기도 하며 놀이에 필요한 장소와 도안은 직접 그려야 하고 다음날에는 어떤 놀이를 하고 어떻게 규칙을 바꿔야 더 재미있고 모두를 만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배우게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2시간 동안 자유롭게 놀아보자'라고 했을 때, '선생님, 뭐해야 돼요?' '학원 학습지 풀어도 되죠?' '핸드폰 해도 되나요?' ‘놀자’라는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어찌나 슬프게 들리던지. 가끔은 정말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그들만의 리그를 꿈꾸고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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