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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민 Jun 03. 2017

#34 나를 감싼 낱말들

2016.12.1.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 한 해 나를 만든 낱말 10개를 추려본다. 


1. 미소지니(misogyny) 

흔히 여성혐오로 오역(?)되는 이 낱말은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었고, 삶과 학급살이에도 영향을 끼쳤다. 젠더의 영역을 떠나 세상의 존재로서 당연히 동등한 다른 존재를 차별하거나, 혹은 스스로를 혐오하거나 하는 나의 심리상태에 대한 언어적 테두리를 제공하여 사고를 넓히는 데 도움을 받았다. 아주 미약하지만 여성을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생각의 참모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2. 에듀콜라  

에듀콜라는 곧 2돌을 맞는다. 처음 시작할 때 많은 사람이 방향성이 애매하고,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에듀콜라의 방향성은 한명, 한명의 집필진이 만들어나간다. 집필진의 정체성이 에듀콜라가 된다. 에듀콜라 속 집필진이 아닌 집필진으로 대표되는 에듀콜라가 되고 싶었다. 연재를 이어가는 필진의 절반이 연수와 집필작업을 하고 계시다. 내년 1월 워크샵에서 에듀콜라의 새로운 시즌을 위한 이야기를 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3. 3년 일기 

3년치가 하루에 나오는 일기를 쓰고 있다. 내년, 내후년의 이날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매일 되새기고, 자연스럽게 내년에는 이런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상상이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생각했고, 그럼 이런 것을 해야 하겠네.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하고 있었다. 상상력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늘그런대로 행동하고 늘그런이가 된다. 늘그런이는 늙은이다. 


4. 감정 

일년 내내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낱말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을 분명히 말할 것, 특히 감정에 대해서 말이다. 그럼, 나는 그렇게 살았나? 예전에 나는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불쑥 뾰족한 것이 나오고는 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지금은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런데 좀 더 세련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조금 표현이 부드러워 진다. '감정을 표현하자'라고 마음먹은 생각이 감정의 방파제가 되어준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5. 블로그 

블로그는 참 재미있다. 제대로 정비하기 위해 올 겨울을 온통 쓸 예정이다. 

1년정도 하고 나서 다시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기고 싶은 기록에서 시작하여 다른이도 보고 싶은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갈무리한다. 다른 이의 시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의견을 더 잘 전달하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6. 만남 

나는 소심한 인간이다. 낯도 정말 많이 가린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내가 최근 사람을 만나고 여러 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난 퇴근하면 전화기를 에어플레인 모드로 바꾸거나 전화를 받지 않...) 그런데 좋은 사람들과 일을 자주하니 점점 성격이 바뀌는 건지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집에오면 몹시 피곤한 건 마찬가지다. 


7. ~님 

3년 전부터 부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를 옮기고 시작한 부장이 영 낯설다. 예전에는 그냥 친하게 지낼 동료나 후배들이 깍듯하게 부르는 '부장님' 호칭이 영 귀에 까끌거리고 그렇다. 난 그냥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일 뿐인데, 누군가에는 전문적 조언과 멘토가 될 수 있는 호칭으로 불린다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에듀콜라 내에서 대부분 나를 연민쌤으로 불러주지만 가끔 편집장님이라고 부르거나 스스로 편집장이라고 소개하는 일이 아직도 머슥하고 영 간질간질한 것이다. 애초에 1인자가 될 기질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8. 객관화 

나 그대로의 삶, 내가 원하는 삶, 남들이 나에게 바라는 삶을 고민하였다. 그리고학생 그대로들의 학급, 내가 원하는 학급, 남들이 바라는 학급을 고민하였다. 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 이러한 생각의 과정이 명쾌한 답을 내려주었다. '내 생각이 정말 옳은가? 다수의 선택을 바라지 않았는가?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는가?' 이렇게 훈련된 사고과정은 학생의 작은 고자질에서 부터 학급을 바라보는 시점까지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내 벨트 구멍도 냉철하게 바라보게 해준다. 운동하자. 


9. 텀블러

진득하게 앉아서 글을 써야 할 일이 많아졌다. 가방에 항상 텀블러를 넣어 다니고 뭘 마신다. 커피가 많이 늘었고, 물을 엄청 마셨다. 물을 많이 마시면 피부가 좋아진다던데, 그건 아닌것 같다.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 코스프레도 되고 좋다. 


10. 자괴감 

늘 지나고 나서야 '과한 걱정을 했다'고 후회한다. 또 큰 일이 다가오면 걱정하고 덜덜거린다. 막상 걸러내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말이다. 이런 일을 반복하는 내가 밉고 원망스러워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TV에서 대통령이 이 낱말을 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저런 것이 자괴감이라면 난 절대 함부로 자괴감을 말하지 않으리라. 조금은 이르지만 2016년은 이렇게 지나갈 것이다. 2017년에는 더 좋은, 더 나은 글과 나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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