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민 Jun 05. 2017

#36 고립무원의 시간, 4시 10분

2017.1.6.

대부분의 초등 교사는 학창 시절 공부에 관심도 많았고, 자존감도 높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어영부영 대학시절을 지내고 나면 덜컥 20-30명의 아이들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영락없이 용기와 자존감은 세차게 흔들리고 만다. 난 이 안에 있고, 문은 닫혀 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배워온 대로, 내가 아는 대로. 그리고 대충 들은 대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다운로드한 자료들이거나. 얼마간의 좌충우돌이 끝나고 나면 내가 뭘 모르고 했던 것들,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들 정도는 구분한다. 


그러나 거기까지. 내가 어떤 교사인지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어느 방에 모여하는 이야기라고는 "그 교사가 그랬다더라" "그 애는 구제불능이야" "그 학부모는 왜 그래?" 온통 남에 대한 이야기, 험담 투성이. 공개 수업 후 평가에도 쓴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 각자의 교실문을 닫고 들어가면 나는 또 혼자 남는다. 주위의 교사들은 차라리 승진을 준비하거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나름대로 행복한 것 같은데, 우리 반은 뭘 해도 안 되는 것 같고 내가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다. 


누군가 저 문을 열고, "선생님 오늘 수업은 어땠어요?" "아이들하고는 어떤 문제가 있었어요?"라고 물어 준다면 "선생님은 뭘 좋아해요?" "어떤 수업을 할 때 행복하세요?"라고 물어 준다면 교실 안이 언제부터 고립무원의 무인도처럼 느껴질 때, 아무도 없고, 고요함마저 깜짝 놀랄 정도의 적막이 흐를 오후 4시 10분쯤. 위의 생각들을 무수히 반복해왔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몇 년쯤. 이제야 내가 아는 나의 모습,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다른 이들이 기대하는 나의 모습을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아, 저문 이 열리기 만을 기대했을 뿐 내가 열고 나간 적이 없구나." 


노력 끝에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좋은 사람, 나에게 자극을 주는 사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제 몇 개의 문을 더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저 교실 안의 문을 열고 들어가 고립무원의 오후 4시 10분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당신, 참 잘하고 있다고,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라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5 2017년 첫 다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