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을 나가는 건 나에게 큰 과제다.
작업실이 있던 시절에는
그 공간을 제2의 집으로 삼아 출근했지만
집과 작업실의 구분이 없는 지금은
집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다.
나의 자유 의지로 약속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정말 드물다.
대부분 사람들과 전화나 문자를 나누고
그들이 마지막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 하면
할 이야기 다 했는데 뭘 또 봐하면서
상대의 기분에 흠나지 않게
말끝을 흐려 버린다.
적극적으로 날짜와 장소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나의 성향을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인지라
'알았어' 하고 마지막 인사말을 보낸다.
<오늘도, 도서관> 브런치 매거진에
집 나간 나를 칭찬한다며 대단한 일인냥
특별하게 글을 올릴 정도로 나는 두문불출한다.
유일하게! 기꺼이! 가는 곳이 있다면 도서관이다.
책을 보러 가거나 작업을 하러 가거나
때로는 운동삼아 아무 이유 없이 가기도 한다.
가만 적고 보니 커다란 차이를 발견했다.
집을 나가는 것과
집을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건
완전히 다른 거다.
외출은 혼자서 자유롭게 하는 행동이지만
만남은 타인과 함께 하는 행동이다.
'이 단순한 차이를 이제야 깨달았다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하다.
나는 드라마를 쓴다고 해 놓고 에세이를 쓴 듯하다.
에세이는 작가의 개인적인
사유와 감상과 일상 속의 이야기를
마치 다큐나 동화처럼 편안하게 풀어내는 글이다.
1인칭 시점으로 작가의 주관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드라마는 전지적 작가시점이다
1인칭의 주인공이 혼자 떠들면 아니된다!!
2명이 퐁퐁 탁구를 치든 테니스 서브를 날리든
주먹으로 어퍼컷을 날리든 최소 2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둘에게는 갈등이 필수다.
드라마는 갈등 그 자체다.
갈등이 넘치는데 편안할 리 만무하다.
갈등葛藤 은 칡 나무와 등나무가 서로
얽히고설키는 모양에서 나온 말이다.
갈등이 일어나려면 반드시 칡 나무와 등나무,
다시 말해 주인공과 상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무조건 만나야 한다. 만나게 해야 만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우선은 갈등 유발자들을
같은 시간 한 공간에 밀어 넣어야 한다.
그들이 사랑을 하든, 티키타가 말장난을 하든
의기를 투합하든, 질투하고 미워하든,
치고받고 싸우든, 칼을 들고 마지막 결투를 하든
우선은 만나게 해야 한다.
그들이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지가
드라마의 색과 장르를 결정한다.
여기에서 '드라마는 관계다'라는 정의가 나온다.
초보 신인 작가의 강점이자 또한 맹점은
주인공들이 작가 자신을 닮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 또는 자신과 닮은 인물을 설정하면
감정 이입이 매우 잘 되고
그 인물이 무엇을 어떻게 할지 쉽게 풀리기 때문이다.
단점으로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빠질 수 있어
개연성과 대중성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다.
분명 머리로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대본에 적용할 때는 왜 이게 안 되는 걸까?
나의 습작 속 인물들을 보면 혼자 잘~ 도 다닌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지만 혼자다.
혼자 추리하거나 추적하거나
끙끙 앓거나 고민하는 모습이 꽤나 누구를 닮았다.
단독 씬도 많아 대사보다는 지문이 많다.
얼마 전 PD를 만나 습작을 보여줬을 때
그는 독립 영화 시나리오로 각색을 권했다.
영화 <여자 정혜>의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일상의 대부분을 혼자 지내고
최소한의 만남으로 최소한의 대사를 하며
스토리를 전개한다. 읽고 나면 먹먹하지만
막상 대중을 타깃으로 드라마 하려면 애매한 거다.
가만 보니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길에
큰 갈등이 없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나의 회피 수용 성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다들 놀랜다.
'그런 일을 어떻게 혼자 했니?' '어떻게 감당했어?'
'지금은 괜찮고?' '그래서 어떻게 했어?'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갈등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울컥했지만 정신줄을 붙들었거나
올라오는 감정을 되새김질하며 꾹꾹 소화시켰거나
그래도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는
혼자서 엉엉 울 뿐이었다.
해결권을 상대에게 넙죽 주고
통보하는 결정을 수용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갈등의 모습과 사이즈는 무지 크지만
갈등으로 인식이 되지 않았던 거다.
갈등으로 인정하기를 회피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때는 그저 서로 다른 거였고 그런 차이로
상대와 다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더랬다.
나는 누군가에게 호구였고 누군가에게 일꾼이었고
또 누군가에겐 유효기간이 훨씬 넘어버린
낡은 사랑이었으니까....
이렇게 변명인 듯 아닌 듯 나를 말하고 나니
내 드라마 대본이 왜 고기서 고기인지 알듯하다.
삶을 달관한 듯, 그럴 수도 있다는 듯,
싸워 뭐하냐는 듯, 내가 져주고 말지 하는 태도는
극작가에게 독약이다.
얼마 전 친구랑 함께 한 3분 심리 테스트 결과를 보고
내 삶과 습작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걸 알았다.
> 달관한 노인이래, 어쩌지 반박할 수가 없어서 ㅎ <
고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작가 의식은 물론 드라마를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까지
나의 전반적이고 통합적인 정신개조가 필요하다.
마음이 다급해진다. 아니 괜찮다.
이왕 늦깎이 망생이인 거 차근차근 가보자.
우선은 주인공 엉덩이를 발로 차서 집 밖으로 내쫓자.
절대 혼자 다니게 두지 말자.
그리고 무조건 누구든 만나게 하자.
누군가를 만나면 절대로 참게 두지 말자.
화가 나면 욕설을 퍼붓고
슬프면 매달려 울기도 하고
기쁘면 머리에 꽃이라도 달아주자.
이제야 혼자서 삶의 무게를 지탱했던
나와 참으로 닮은 호구의 주인공들에게 안녕을 고한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우선은 만나자, 만나게 하자.
반드시 만나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