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나의 재능

이 짝도 저짝도 아니여라

by VIVA

말하기 참으로 거시기하다.

나의 재능을 내가 말하려니

자기 객관화라는 가면으로

자기 비하나 자기도취로

빠져 들게 분명한데 말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우선은 생물학적 시계가

어느 때 보다 빠르게 돌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여자 평균 수명은

85세를 넘었다.

내 또래의 평균 수명은 90이

훌쩍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그래, 내 삶의 마감을 90이라 여유 있게 잡는다면

모래시계가 뒤집어지는 순간이 딱 반인 거고

이 계산에 따르면 나의 바이오 모래시계는

이미 그 반을 넘어 한번 뒤집어졌다.


하루, 일주일, 한 달,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래 알갱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속도는

산사태의 토사가 밀려오는 듯 나를 삼켜먹을 것 같다.


모래시계가 뒤집어 지기 전까지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 봐야 한다고

나를 강력하게 설득하면서

재능의 여부에서부터 검증까지 했더랬다.

배움 중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투자와 수익의 관점에서 봤을 때

별 쓸데없는 것들을 다 배우고 해 봤다.

나의 생계와 내가 배운 것들이

어떤 접점이라도 있었으면

쓸데 있는 배움이겠지만

취미 배움터는 배우는 거 자체로 행복했었다.

작가 교육원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그 쓸데없는 배움과 재능 검증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운영하던 개인 사업을 축소하고

1인 기업 (말 한번 거창하다)으로 전환하면서

우연하게 책을 쓸 기회가 왔고, 그렇게 쓰고 나서

대표에서 작가로 타이틀을 갈아치워 버렸다.

작가로 재능 검증받고 입문했다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예상보다 출판은 늦어졌고

감히(?) 출판사에 왜냐고 묻지도 못하고

헛헛해진 내 속을 배움으로 채우듯

웹서핑을 시작했다.

나의 레이더에 포착된 것이 바로

작가 교육원의 드라마 작가 과정이었다.

그곳이 얼마나 많은 작가를 배출했는지,

얼마나 유명한 곳인지 배경지식 하나 없었다.

나에게는 그저 당장의 나의 허기와 불안을

채워줄 수 있는 배움을 제공해 주는 곳이었다.


면접이 있다고 했다.

'학원에서 면접을 하나?

내 돈 주고 내가 배우는데 면접? '

'미팅과 발표로 이력이 난 내가 면접을 떨리도 없고'

'뭐 까짓 거 오라면 가지 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를 면접했던 담당자는

내가 평생 한 번 만나보지도 못했을 스타 작가였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난 그분은 산책하다 공원에서

우연하게 같은 벤치에 앉은 사람 같았다.

자연스럽게 면접이 아닌 대화가 시작되었고,

나는 박수를 치고 껄껄거리며 웃기까지 했다.

대화가 끝나고 난 그 벤치에서 일어나 가던 길 갔고

그녀는 앉아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나 할까?...


내 나이 특유의 친화력을 끄집어낸 결과였을까

난 합격했고 그렇게

기본반- 연수반- 전문반- 창작반을

일사천리로 올라갔다.

지금 와서 또 고백하는데,

나 솔직히 떨어지기 원했다.

엉뚱하게 드라마로 늦바람 나는 게 무서웠다.

감당 못할 욕망의 무게에

매일 압도당하는 나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창작반 첫날 나는 쉬는 시간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멘토 작가님께 물었다.

'저기여... 제가 나이가 많아서 뽑힌 거죠?

젊은 친구들은 기회가 많으니까..'

멘토 작가님은

'여기를 뭘로 보시는지...'

문장을 맺지 않은채 고개를 절래 절래 거렸다.

자조적으로 나도 따라 웃으며 다짐했더랬다.

그래도 여의도 작가 교육워을 나가면

드라마쓰기도 바이바이 할거라 했다.


다짐은 깨고 변하라 있는 것이라 했던가

창작반을 졸업하고 지금 3여 년이 지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드라마 작가를 꿈꾸고 있다.

대본 분석을 하고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이러쿵저러쿵 쪼잘거린다.

그러다 가끔 선견지명 예상 포인트를 맞춰

어쭙잖게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마다 함께 관람한 지인들은

'역시 작가네~' 하면서 가마를 태운다.

그럴 때면 후다닥 가마에서 내려와

두 발로 땅을 디딘다. 어지럽다.


대표의 팔뚝 완장을 찢어 버리고

작가의 머리띠를 두른 이후

나는 어떤 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

세상에 나를 무엇으로 증명을 해야 할지

삶이 나에게 무엇을 하라 하는지

외부의 잡음과 내면의 아우성을 그저 무시하며

하루를 막연한 희망과

방향 잃은 독서와 공부로 채우고 있다.


회사의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업종을 추가하여

과감한(?) 변화를 결심한 게 어언 수년이지만

코로나라는 거국적 변명과 나의 자잘한 이유로

체질개선과 변화 없이 연명하고 있다.


언제까지 나의 이 애매한 재능을 붙들고 있어야 할까

출발선에 세워진 문우들, 이미 달리고 있는 작가들

여전히 경기장 밖에서 땀복 입고 초조하게 워밍업만 하는 나.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는 대중 예술의 세계에서

생물학적 나이를 열정으로 우기며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걸까?

그곳은 평범한 노력형의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세계였던가?

무엇을 재능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나는 재능이 있기는 할 걸까?


애매한 이 재능을

취미 배움러의 즐거움으로 남겨둘 것인지

예술병에 빠진 희망 고문러가 될 것인지

무한 반복되는 자기 의심과 과신 끝에

나는 어디에 도달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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