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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Nov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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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효, 떨려라 

    대회까지 약 한 달 정도 남았다.    

    

    하얀 체육복에 하얀 모자를 쓰고 달리기 출반선에 서서 화약총이 '빵' 하기를 기다리며 가슴 졸였던 기억, 부모님이 간직한 사진 속에서나 확인 가능한  꼬맹이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 출발선 앞에 선 설렘과 불안의 감정은 그때의 기억이 전부이기에  그 수많은 인원이 광장에 모여 함께 달리는 느낌이 어떨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우선은 10KM를 달려 봐야 한다. 지난 두어 달 동안 근본 없는 막무가내 뜀박질로 나 자신을 담금질을 했다면 이제는 나름의 페이스를 조절하며 부상과 중도 포기 없는 완주를 목표로 삼아 세심하게 체력 조절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운동을 제대로 배워 본 적 없으나 생존 본능에 따라 목표가 자연스럽게 수정된다. 


    '부상 없는 완주!'


    앞으로 남은 한 달을 어떤 주기로 달릴지도 생각해 봐야 했다. 마음 내킬 때마다 뛰어서 어떤 날은 하루에도 두 번을 달렸고, 어떤 주는 1주일 만에 달리기도 했는데, 대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니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반복훈련이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 몸으로 다가왔다. 무근본의 달리기라 해도 에너지 소모가 꽤나 컸는지 지난 1년 책상 지박령이 되어 작업하면서 온몸에 골고루 분포된 군살이  쏙 빠져나갔다. 신체의 가벼움은 존재의 가벼움으로 이어져 반복되던 우울감과 무기력증도 사라진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기분이 찾아올 때면 밖으로 뛰어 나가 마음의 방향을 바꿔 몸을 힘들게 하니 그런 마음에 집중할 여력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이래서 달리기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거 같다. 


    '건강한 다리와 운동화만 있으면 됩니다'


    러닝을 권장하는 한 영상에서 들은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여기데 더 중요한 건 '의지'라 생각한다. 마음만 있으면 뭔들 못하랴!  마음이 없기에 그 많은 부수적인 핑계와 변명이 나오는 거고, 거기에 스스로 설득되고 상황을 합리화해서 하지 않아도 완벽하게 괜찮도록 자신을 설득한다. 아니 설득당한다. 이런 게 자가당착이고 이율배반 아닐까. 

    지금까지 나는 나 자신을 참으로도 많이 배반했다. 원대하게 계획하고 꿈을 품으며 빵빵하게 동기 부여 해놓고 그 바람이 푹 빠지고 나면 언제 그런 마음이 있었냐는 듯 스르륵 꼬리 빼며 눈 감고 아웅한 일들. 단순히 이불킥으로도 성이 차지 않는 후회와 연민. 이번에는 이런 감정에 빠지지 않을 거다. 그래, 10KM 쉬지 않고 달려 보기다. 


    한강 바람이 참으로 좋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조차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달리면 목표 거리에 도달한다. 러닝 앱이  5KM를 뛰었다고 알렸고 그 자리에서 나는 바로 뒤로 돌아 출발점으로 방향을 바꿨다. 

    반환점까지는 몸이 보내는 신호와 마음이 울렁임으로 다소 산만했다. 뜬금없이 통증이 왔다가 사라지면 순간의 걱정에 사로잡혔다가 뛰면서 저절로 사라진 통증에 안심이 되기도 했고, 마주 오는 러너도 신경 쓰였고, 한강에 일렁이는 도시야경에 설레기도 했다. 켜졌다 꺼졌다 하는 블루투스 이어폰도 은근 신경 쓰여 집에 가면 바로 주문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반환점을 돌자마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몸은 한 없이 무거운데 다리가 가벼워졌다. 일시적인 마비가 온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각이 있는데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기했다. 너무 힘들어 당장 멈추고 싶은데, 의지와 오기로 똘똘 뭉친 마음은 멈출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몸이 마치 랙 걸린 기계처럼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다리가 움직이는 대로 몸이 따라갔다. 무념무상의 명상 단계에 오른 듯했다.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장의 울림만이 살아 있는 걸 알려 주는 듯했다. 출발선이 다시 가까워질수록  러닝 앱이  '거리, 10킬로 미터'라고 알려주는 소리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손목에 두른 워치를 슬쩍 보니 500미터 정도 남았던 것 같다.  

    그 순간 '빨리 끝내버려'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방법은 두 가지다. 당장 달리기를 멈추는 것과 빨리 뛰어 버리는 거였다. 신체 에너지가 다리에서 두뇌로 가면서 다리가 느려졌다. 몸이 멈추려고 결심한 듯했다. 서서히 속력이 걸음속도만큼 늦어졌을 때, 지금까지 뛰어온 거리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라, 빨리 뛰어버려'

    전속력으로 달렸다. 보폭을 넓히고 팔을 마구 잡이 앞 뒤로 흔들면서 막판 질주를 했다. 피맛이 나든 말든 조그만 더 하면 집에 가서 대자로 뻗을 수 있다는 생각하나만으로 야생마처럼 힘차게 달렸는데... 어라 왜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거지?  이 정도 뛰었으면  출발점에 도착해야 했는데, 왜 출발점은 그냥 그대로지? 

    몸과 마음이 이토록 따로 놀 수 있다니! 제자리 뛰기 같은 속도를 전력 질주라고 믿는 나의 두뇌와 마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몸이 미치도록 힘든데 웃음이라니! 모든 게 엇박자로 삐뚤빼뚤 이였지만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거리 10KM'를 알려 왔다. 질질 끌려온 몸은 다리가 풀리면서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지만,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 웃음은 포기하지 않은 기특함에서 나온 거였을까? 몸치와 운동치를 드디어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가득한 기쁨이었을까? 몸이 너무 힘들어 정신이 나갔던 거 아니었을까? 하여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린 나 자신에게 살면서 처음으로 칭찬을 해 준 것 같다. 이 정도면 그래, 잘했어! 대회날까지 계속 한번 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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