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으로 중무장한 일상
행과 불의 괴상한 변주가 시작되었다.
밤새 습득한 정보와 지식으로 치료와 요양에 최적의 가상 동선을 짜냈고,
그 동선에 떠오른 유명 병원과 명의들의 명단을 찾아냈고,
그곳에서 치료한 사람들의 후기도 읽어 보고
전화번호를 찾아, 오픈 시간에 맞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자리가 나질 않았다.
마지막 병원에서도 안타깝게도 예약을 잡지 못했다.
뭔가 괜스레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을 내려놓어야 하나, 왜 이 몸 하나 내 맘대로 쓰지 못하는 걸까
자괴감과 원인불명의 후회감에 마음이 축 가라앉았다.
그때 마지막으로 전화를 한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급하게 누군가가 예약 취소를 했다고 전했다.
지하로 떨어졌던 마음이 로켓을 타고 다시 쓔웅 올라왔다.
열흘 뒤였다. 여기에서도 진짜 전혀 바라지 않은 진단이 나오면
그때는 깨끗하게 대학병원으로 수술실에 가서 누우리라 맘먹었다.
10일.... 그동안 어떤 맘이었던지.. 내 감정을 돌아보지 않았다.
도움 되지 않을 연민에 빠져 이미 뒤집힌 일상을 흔들어 버릴 필요는 없었다.
뒤집힌 채로 가만히 있는 게 차라리 버틸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마치 주인공이 추격전에서
안 매던 안전벨트를 꽉 매고 액셀을 밟는 그런 느낌이었다.
'정신 줄 단디하고 꽉 잡고 있어라'
다행히도 몰두할 거리가 있었다. 번역이었다.
11월이 마감이었는데, 수술과 입원 치료로 일정이 꼬일 수도 있으니
할 수 있을 때 미리 해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재수학원 다녔던 어언 오랜 옛날 때처럼
온종일 귀에 이어폰 꽂고 학원 강의실 한 구석에 책상에 들러붙어 있던 모습대로
귀를 음악으로 틀어막고 모니터 앞에 앉아 번역만 했다.
그때 노량진 친구들이 내 의자에 본드를 붙여 놓았냐고 했더랬다.
친구들 다시 만나면 변명이라도 해야겠다.
앉아 있던 시간 대비 친구들에 비해 좋은 대학은 가지 못했으니까.
얘들아, 내가 공부에 집중해서가 아니라 내가 낯가림이 심해서였어.
손바닥 두 개 붙여 놓은 크기의 책상이라도 그 공간은 나의 공간이었기에,
자유를 만끽한 거지. 편지도 쓰고 일기도 쓰고 소설도 쓰고 낙서도 하고..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 가사 받아 적고 그랬어..
왜 갑자기 그때가 떠올랐을까?....
그 기억은 고 3 때 수학 시간으로 이어졌다.
수포자였던 나는 수학시간은 국어와 영어 시간을 위해 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담임이 수학 선생님이었기에 차마 대 놓고 엎드려 잠들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다가 번번이 혼나고 뒤에 나가서 서서 졸기도 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정말 없던 자기 연민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첫 아이를 낳고 연약하고 말랑한 아이의 숨결을 느끼며
그 옆에서 잠들던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하고 달콤했는지
그때 내가 잠자는걸 참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 좋아하는 잠을 요즘 잘 못한다. 자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아서..
그렇게 번역에 몰입했다.
해가 지면 으레 뛰어 나가던 마음을
책상에 모니터 앞에 붙들어 두었다.
너무 충격이 큰 사건이면 나는 으레 감정을 차단한다.
내가 감성이 차오르고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타고나기를 그렇기에 조금 힘든 상황일지라도
감정이 느껴지면 괜찮다는 의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치 로봇처럼 변하는 순간이 있다.
인생의 굵직한 사건들 앞에서 나는 기계적으로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그 터널에서 빠져나오면 그때, 모든 긴장이 풀리고
팔다리 흐느적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오랜 외국생활에서 끝내고 돌아와 서울에서 새로운 둥지를 찾고 나서
그때 거의 한 달을 집에서 csi 미드를 보며 잠만 잤던 거 같다.
그때 나는 그 집을 방공호 또는 스위트 벙커라 부르며
어두운 터널에서 오래 있었던 내 눈과 몸을 새로운 환경과 빛에 적응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니
유명 의사라고 유튜브에서도 열심히 활동하는 의사를 기다리던 열흘동안
집 밖으로도 나가지 않고 오직 번역만 했던 것 같다.
번역 내용은 동독 출신 여류 작가가 미국을 여행하는 소설이다.
내가 처음 미국을 갔을 때 느낌이 소록소록 떠올랐다.
아니야, 지금은 그런 감성에 빠지면 안 돼.
느슨해진 갑옷을 다시 재장착했다.
나는 다시 한번 어두운 진료실에 누워 있고
의사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의사의 손은 초음파 기계를 잡고 내 몸 어딘가를 조사하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숨 잠깐만 참아 보세요'
왜 이렇게 오랫동안 보는 걸까
자전거 사고 당했을 때, 부딪혀 공중에 날라 바닥으로 넘어지던 그 순간은
불과 몇 초 되지도 않았는데
거꾸로 눈에 들어온 뒤집힌 세상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그 시간이 엄청 길게 느껴졌었다.
지금도 그렇다.
시간이 너무 길어 마치 할머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사는 말없이 나갔고, 간호사가 뒷정리를 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의사가 다시 들어왔다.
'음, 환자분 나이와 이 영상 모두를 봤을 때 네 그렇네요...
제가 혹시나 해서 교수님 두 분에게도 영상을 보내서 조언을 구했는데
두 분 모두 저와 같은 진단입니다'
꽁꽁 싸매고 있던 갑옷까지 뚫고 들어왔다.
그 자리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의사는 야박하게, 내 나이와 평균 통계를 언급하면서
확률상 피해 갈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에게는 협박처럼 들렸다.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상가를 정처 없이 헤맸다.
길을 잃은 건 아니었고, 익명의 사람들 속에 파묻혀 내 감정을 잊고 싶었다.
이른 오전 시간, 점심 모임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서로 옷을 골라 주고 소품을 구경하고 꽃도 사고 어느 식당을 갈지
너무나도 소소하고 평범하다 못해 지루해 보이는 대화소리가
그렇게 귀에 쏙쏙 들어왔다.
'별 거 아닌데, 왜 이리 허둥거리지?'
내 마음속에서 말이 올라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집에는 가야 하기에,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를 마시고 지하철을 탔다.
차를 안 갖고 나오길 잘했다 위안했다.
이 상태에서 운전하면 위험할 테니 말이다.
그날 밤도 나는 의사 말을 믿지 못했다.
전문 지식도, 임상 경험과 현장 수술까지
나의 하룻밤 지식과는 비교도 안되는데
나는 두 번째 의사 말을 부인하고 있었다.
의사가 착하게 말했다면,
감정적으로 연약해진 내 마음에 보듬어 주며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베드로여, 새벽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
그래, 삼세판이다. 마지막 한 판이 남았다. 나는 동선에 맞지 않더라도
유명하다면 땅끝까지라도 갈 기세로 다시 한번 병원과 의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