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렌덤 게임

by VIVA

살면서 문제가 생길 때, 그때 성격과 인격과 성품이 드러난다.

미성숙한 사람은 문제 자체를 부인하거나

문제 발생을 두고 남 탓을 시전 하며

스스로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해결해 달라고 징징거리기 일쑤다.


보통의 사람들은 가족이나 믿을 만한 친구와 함께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서로 모색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위로와 응원을 주고받는다.

때로는 사적인 관계망에서 좀 더 확대해 집단 지성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그래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문제를 반응하는 태도를 두고

그것이 성격이고 팔자라고 흔히들 말한다.


참으로 오만하고 버릇없게 들릴 수 있지만

난 내 인생의 결정의 순간, 언제나 혼자였다.

그래, 혼자이기를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내가 문제가 있던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서 한 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던 순간

내 주위에는 부모 가족 형제자매가 언제나 바글거렸고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과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나 나락의 끝자락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

자존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은 애초에 나의 문제에 관심이 없었고

내 문제의 10을 고백하면 그들은 불안을 1000으로 돌려주는 식이였기에

언젠가부터 서서히 올라온 마음의 울타리는 점점 높아져

나는 손을 뻗쳐 도움조차 요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왕따를 당했을 때나,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부모님 상담시간을 의무로 만들어

억지로 엄마를 학교로 불러 놓고는

그 다음 날 엄마가 제시한 촌지금액이 너무 적다고 나에게 직접 촌지 봉투를 돌려줬을 때나,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다고 했을 때, 단칼에 잘려 버린 대화의 순간이나,

고등학교 때 학생회 임원들의 역사적인 비공식 육성회비를 우리 부모님만 내지 않았다고

모든 선생님들의 욕받이가 되었을 때나,

대학교를 선택했을 때나, 휴학을 결정했을 때나,

프랑스로 훌쩍 갔을 때나,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리고 다시 한국을 떠났을 때도, 그리고 오랜 세월 지나 또다시 돌아왔을 때도

억까를 당해 악플과 익명의 DM으로 한동안 시달려 칩거 생활을 했을 때도,

어느 순간도 누군가에게 내 심정을 털어놓거나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말을 꺼낸 적이 없다.


내 문제는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아닌 완벽하게 모르는 자들과 함께 논의했다.

돈이 필요하면 은행을 방문했고, 법적 조언이 필요할 때는 변호사를 찾아갔고

정말 차오르는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을 때는

정신 상담가를 찾아가거나, 길거리 타로 점을 들리거나, 사주팔자 철학관에 가서

생면 부지의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쏟아냈다.


문제가 완전히 사라져 인식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그만큼 시간이 흐르고 나서 하나의 에피소드나 해프닝처럼

가볍고 문제 될 거 없다는 식으로 쿨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는 그런 말 조차 하지 않는다.


'한 다고 뭐가 달라지나...'


부모님은 이런 나를 두고 형제들 중에 공짜로 키웠다고

절로 잘 컸다고, 대견하다 하셨지만

그 말은 오히려 내 안의 결핍을 더 크게 만드는 이상한 효과를 발휘했다.


좋게 좋게 생각한다. 그렇게 자라고 살아온 덕분에

내 해결 능력이 상승하고 독립심도 더더욱 강해졌다.

문제를 해결하며 아둥 부당한 시간들이 자랑스럽고 잘 살았다고

셀프 칭찬을 과하게 날리면서 희미해져 가는 과거의 감정을 다행으로 여기던 순간

자기 연민의 지옥으로 빠져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상급 대학 병원으로 바로 예약해드리겠습니다'


유독 길었던 검사 시간, 의사의 잔뜩 주름진 미간, 모니터에 고정된 시선,

침 삼키는 소리조차 크게 들렸던 그 정적의 순간에도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검사 가운을 대강 휘둘러 매고 의사 진료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대기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서, 의사가 나를 대놓고 밀어냈을 때, 그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치게 더웠던 올해 여름, 오후 4시 태양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그 시간

버스 정류장 3개의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얼굴은 말라버린 눈물의 소금기와 뜨거운 태양으로 따끔 거렸다.

내 손에는 영상 검사 CD와 온갖 서류가 한 뭉텅이 들려 있었다.

카톡으로는 벌써 상급대학 병원의 예약 확인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의사의 학력인맥으로 나의 입원과 수술 일정은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한강 다리를 풀린 다리로 건너면서 든 생각이...

내 상태가 그만큼 안 좋아서 급하게 입원 결정이 된 건가...

이런 생각에 들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책상에 앉았다.

자판 위에 올려진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법 없이 살아도 되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범죄 피해자가 되고

병원 없이 건강하던 사람이 병에 걸리는 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토씨 하나 틀림없이 나는 하루아침에 '암'이라는 생의 족쇄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감 끝내고 치앙마이 한달살이를 계획하면서 쇼핑 카트에 채워둔

물건들을 결제할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는데 이게 도대체 뭐지....


검색을 시작했다. 번역가와 탐정의 공통점은 끈질김이다. 단 하나의 단서라도 있으면

끝까지 그 꼬리를 물고 들어간다. 어원의 역사까지 파고 들어가는 습관으로

온라인에서 의사와 병원의 공식 자료들과 암환자들의 경험담과 대체 의학까지

닥치는 대로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그렇게 내린 나만의 결론 : 암 일리가 없다!

암이 아닌데 입원을 하고 전신마취를 하면서 수술을 해야 한다니, 의사가 잘 못했네.

절대 믿을 수 없다. 살면서 그토록 상황을 부정해 본 적이 없었다.

절대라는 단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데, 절대 믿을 수가 없다고 절대적으로 외쳤다.


'음주가무를 일상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기름진 배달음식으로 내 배를 채운 것도 아닌데

운동? 러닝 기록도 1천 킬로 미터가 넘고, 수영도 하고 요가도 하고

건강식이라면 말 할것도 없고, 늙어가는 내 몸 하나 누구에게도 짐 되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하는데 도대체 내가 왜 암이냐고????

가족력도 없고 일상생활도 문제없는데 내가 왜????

스트레스? 그래, 그건.. 부인은 못하겠지만,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누가 있어?

지난 몇 년 동안 스트레스가 심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암 발병의 원인이라고? ....'


무너졌다. 완벽히 무너지고 쓰러졌다. 아니라고 부정할 힘도 없었다.

버티고 버티면 축적된 스트레스가 세포를 변형시키고 어쩌고 저쩌고....

죽기 전 생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더니

지금은 내 앞에 무의식으로 밀어내버린

극한의 스트레스상황이 주르륵 펼쳐졌다.

긍정적이라 자부했던 내 성격은 부정성으로 똘똘 뭉칭 덩어리였다.


나 보러 어쩌라고, 누구 하나 도와줄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에게 피해주지도 않고 문제 크게 만들지 않고 묵묵히 참고 버티면서 혼자 해결했는데,

그럼 스트레스 있을때 마다 누구 하나 멱살 잡고 머리 끄댕이 잡아 흔들었어야 했나?

바닥에 철퍼덕 앉아 징징거리며 누구든 붙잡고 해결해 달라고 매달렸어야 했나?

부당한 대우와 말같지도 않은 말을 들었을때 마다 맞받아쳐서 반사를 날려야 했었나?


내 자신이 불쌍한걸 넘어 억울하기 까지 했다. 왜 내가? 왜? 뭘 잘 못했는데?

물음표만 들어갔다. 내가 나를 괴롭혔나?.....

홀로 바들바들 떨면서 비속에 서 있던 수많은 순간들의 기억에 뒷목이 뻣뻣해졌다.

고등학생 시절, 비 오는 날 야간자습을 끝내고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가던 때

우산 들고 나온 마중 나온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을 보고 부러웠던 기억까지 소환되었다.

그리고 잠시 일했던 한 회사의 대표가, 암투병 끝에 생과 이별한 지인의 부인 장례식장에서

말 너무 많이 하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저렇게 된 거라고 막말을 시전 한 게 생각났다.

솔직히 그 부인은 스트레스가 많기는 했을 거다. 그 대표의 지인이라는 남자가

얼마나 바람둥이였는지....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죽음 사람만 억울할 뿐... 그 소리를 바로 받아 치지 못한게 괜시리 지금 와서 부화가 터졌다.

아파 죽은 사람 앞에서 그 사람 탓을 하다니, 정말 그렇게 말하다니, 대표 너 인성 쓰레기야.

뒤 늦게 홀로 책상에 앉아 전혀 상관 없는 누군가에게 두려움에 사로잡힌 스트레스를 풀면서

생각의 꼬리 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자기 연민, 거기에 빠지면 지옥 그 자체다. 여기서 빠져 나가야 한다.


도망간 생각을 다시 제자리로 데리고 와서, 장대비 쏟아지는 지금

어디 가서 어떤 우산을 사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아니, 솔직히 비가 오는 건지 아닌 건지도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새벽이 되면서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았다.

피할 수 없는 비라면....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떨지는 말자...


그때 생각이 들었다.

의사가 암일 확률이 아주 높다는 말을 하면서 준비하라는 말을 했을 때

내가 의사에게 버럭 하며 목소리를 높였었다.


'확률일 뿐이잖아요. 뭘 그렇게 확실하게 단정적으로 말하세요.

저 아직도 할 게 너무 많아요. 어... 어.. 되게 많은데.. 막상 생각이 나지가 않지만..

그래 맞아요. 공모전 발표도 날 꺼고 하고 싶은거 되게 많은데.. 뭐였더라..

번역 마감도 있고, 그거 위약금도 있는데..

14년 된 냉장고 갈아치우고 새 냉장고 배송될 거라고요,

의자랑 책상이랑 당근 나눔 하기로 했는데, 그거도 가지러 올 텐데

아이들 학교도 졸업시켜야 하고, 장가도 보내야 하고

아들의 아들과 딸이 이 세상에 나오면

놀이동산도 같이 가보고 싶고,

수족관도 구경시켜 주고 싶고,

이 넓디 넓은 세상 활활 날아다니라고 날개 달아 주고 싶은데...


코너에 몰려 두려움에 사로 잡힌 초식 동물이 맹수에게 달려들면 그런 모습이었을까

생로병사 운명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지 않으려 횡설 수설 했으나

그 의사 도대체 나에게 뭘 해줄 수 있었을까, 괜스레 미안해졌다.


동쪽 하늘이 붉게 변하더니 어김없이 새벽부터 뜨거운 태양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커피가 암 유발이라는 갑론을박에도 나는 어김없이 커피를 마셨고

아침 9시 30분이 되기를 기다렸다.

밤새 명의라고 인정받은 병원 몇 군데를 검색해 찾아냈다.

웨이팅 리스트가 엄청나다고들 하지만 어느 한 군데라도 걸리겠지

시간과 행운의 운명 게임이 진짜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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