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망생이 시간 365일분 추가요!

수요 없는 공급, 멈춰야 하나...

by VIVA

'문학을 전공했어야 했어야....'


순간 행간을 넘나드는 눈동자를 여백에 고정하고 읽기를 멈췄다.

책을 읽으며 밀려온 덧없는 아쉬움이 마음에 머물지 못하게 눈을 감았다.

이 생각이 들었다는 건 지금 읽고 있는 책에 감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뒤돌아보지도 말고, 생각의 꼬리 물지도 말고, 멀리 생각하지 말자.'


그렇게 눈을 떠 다시 활자의 세상으로 빠져든다.


'어쩜 이렇게 잘 썼을까' '와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책을 덮는다. 눈앞에 살아 움직이던 인물들이 소리 없이 아우성친다.


‘한 페이지만 더 넘기면 더 재밌는데’, ‘네가 궁금한 거 3장 뒤에 나오는데’


인물들이 책을 덮지 말라고, 조금만 더 읽으라고 유혹하지만

시간을 보니 책 읽기에 할당한 시간보다 훨씬 초과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경계에서 늘 우왕좌왕한다.


하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마감 시간은 돌아온다.

생계와 사회적 약속과 이행이 걸린 문제, 할 일부터 하고 놀자.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은 방향을 틀고 추락할 거다.



사회적 약속과 이행의 문제,

이런 게 있을 때면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이라 느껴진다.

쓸모 있는 인간이라....

여기에는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이 동시에 작용한다.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은 자존감을 채우고 성장하는 데 필수다.


성취감은 타인보다는 자신과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를 방해하는 건 내 안의 게으른 또 다른 나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성취감이 느껴진다.

작은 성취감 쌓이면 마치 게임 레벨이 올라가듯,

자연스레 조금 높은 목표에 도달한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 끝에 나를 보호하는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너무 커다란 목표를 뜬금없이 세워 버리면

혼자 상상만 하다가, 그 가짜 스트레스에 진짜로 마음이 찌그러져

그렇게 목표를 상실해 방황한다.

그래서 달성가능한 목표를 세워 잔잔 바리 성취감을 얻는 게

내 하루의, 내 한 달의, 내 계절의 목표다.


자기 효능감은 성취감과는 조금 다르다.

성취감은 개인적이고 주관적 감정이지만,

자기 효능감은 타인과 사회의 요청과 요구에 따라

나를 쓸모 있게 만들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한마디로 사회적으로 나에게 주워진 책임과 역할을 다 했을 때,

긍정적인 피드백이 그 사회와 타인에게서 올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아주 쉬운 예로 누군가 문제에 처했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면

자기 효능감은 급상승한다.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을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입해 볼 때가 드디어 왔다.

냉정하고도 객관적으로, 매몰 비용과 한계 상황까지 다 따져가면서 말이다.


공부와 독서는 성취감의 영역이다. 운동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혼자 계획하고 혼자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 하나만 다스리면 얻을 수 있다.

게으른 나와 싸우고, 의지박약의 나를 어르고 달래면 된다.

번역과 통역은 자기 효능감의 영역이다.

어르고 달랜 끝에 성취감과 더불어 실력이 쌓이고,

누군가 나의 재능과 성실함을 알아보고 의뢰를 맡길 때,

일이 끝나고 내 일에 대한 피드백이 의뢰인의 만족과 사회의 인정

그리고 금전의 보상이 통장의 숫자로 나타날 때,

자기 효능감은 머리 어지럽도록 힘껏 바람 부어 넣은 만큼 빵빵해진다.

그 순간이 마감당일 딱 하루 지나고 나면

허무해지고 허탈해진다 해도

자기 효능감에 중독된 듯, 몇 개월을 참고 견디고

마감일을 향해 나를 밀고 나간다.

번역서가 늘어갈 때마다 뭔가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된 듯하여 그 또한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하지만 내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창작을 위한 글쓰기...

이 분야에서 나의 성취감과 자아 효능감은 바닥을 치고 지반을 뚫고 들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싱크홀 어딘가에서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는 듯하다.


공모전 도전 5년 차, 오늘도 낙방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마치 로또 번호를 한자리 한자리 확인하듯,

몇 번이나 내 번호를 거듭 확인했지만

마지막 뒷자리 숫자 하나가 달랐다.

차라리 로또라면 2등이나 3등이라도 할 텐데

망생이의 삶이 365일 추가되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고, 정상이 높은 만큼 골도 깊다.

이번에는 그 추락의 속도가 유독 빠르게 느껴진다.

가속도가 붙은 걸까. 납작하게 짜부라진 내 성취감과 효능감은

바닥에 껌딱지 마냥 붙어 있다.

아까 말한 대로 목표가 너무 높았던 걸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추락한 그 모습에서 고개만 돌려 코를 땅에 박고 엎드려 울고 싶기까지 했다.

‘운다고 달라지나!’


울음으로 상황과 감정을 모면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인간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혈압이 떨어져 아기들 ‘잼잼’ 하듯 손을 주먹 쥐었다 풀었다가를 반복했다.



작가 교육원의 인터뷰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역 작가님의 말 한마디에 쪼그라 있던 나의 폐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고,

그 기세로 창작반까지 일사천리로 수여하면서

들판과 광야의 생활 몇 년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겠만...

광야의 이리가 아니라, 주인이 내다 버리

털 엉키고 꼬질한 유기견이 된 느낌이다.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코 막고, 밉다고 등 돌린다.

오직 나만 느끼는 이 감정, 고개 돌려 외면할 수도 있고

의연하게 아닌 척할 수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왜 이리도 착잡하고 쓰디쓴지...


USB 스틱 속 창작 폴더를 열어 본다.

작품의 수도 많고 기획서도 많다.

한떄는 작품 수에 성취감에 도취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수요 없는 공급.

참으로 처참하구나.


감정이 흔들리면서 번역일이 과속 방지턱에 덜컹거리듯

문단을 넘기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다.

노트북을 덮고 옆으로 밀어둔 책을 다시 펼친다.


책 사이에 짓눌렸던 인물들이 두 팔 벌려 나를 환영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유일한 인물들, 책 속의 사람들

그들에게 하소연을 해 본다.


‘문학이나 글쓰기를 전공했어야 했을까?’

대답이 없다. 눈만 깜빡이며 나를 바라만 본다. 이 어이없다는 눈빛


'답은 네가 잘 알고 있잖아'


그래, 그 답 너무 잘 알고 있다.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다.

폴더 속 내 작품들은 순살 아파트 같다.

가공과 뼈대의 힘이 너무 약하다.

약한 뼈대에 감성으로만 떡칠을 했다든가

산속에 아파트를 지어 놓고 분양받으라고 메아리로만 돌아오는 괴성을 지르는 듯하다.

아파트는 도시에 사용자가 살기 편하게 지어야 하고

뼈대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단순한 법칙이 그토록 어렵다니....

미분양 파산 일보 직전의 내 작품들

해답도 해결책도 아니건만, 덧없는 아쉬움으로 핑계를 삼는다.


‘문학을 전공했어야 했을까?’


펼친 책장위로 아주 작은 물동그라미가 한 방울 떠오른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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