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의사는 나긋하다 못해 졸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목소리가 너무 조용해서 엄청 집중해서 들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반평생 살면서 만났던 의사 중에
가장 친절하고 나의 고충과 혼란을 다정하게 잠재워준 의사였다.
국가 건강 검진에서부터 그 자리에 있게 된 경위를 낱낱이 보고했다.
마치 나의 이야기가 아닌 듯 최대한 객관적인 톤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내 목소리는 떨렸고, 나중에는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의사는 내 말을 끊지도 않았고, 자기 말을 들으라고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자, 이제 제가 말을 해도 될까요?'
의사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의사와 있었던 일을
일종의 환자와 의사의 소통 방식 때문에 일어난 오해라며 말을 시작했다.
세 번째 의사는 약간 나와 결이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최대한 친절하게 말하되, 상대가 감정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지키면서 말의 속도를 조절하고,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매섭게 말을 뱉지 않았고
진료실에서 빨리 나가라는 암묵적인 눈치를 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애써 말을 천천히 하려고 엄청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마, 평소 같으면 이런 말 속도에 조금은 답답해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픈 사람, 힘든 사람에게 최적화된 속도였다.
첫 번째 의사는 확률의 범위를 확신으로 말했고
두 번째 의사는 불안 마케팅을 이용해 말했다.
그리고 두 의사의 진단은 순식간 나를 공포로 밀어 넣었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잠자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처음부터 다시 모든 검사를 하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섰다.
의사의 표정은 첫 번째 보다 조금 힘들어 보였다.
내 마음이 투사된 걸까? 다리가 풀려 휘청이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의사도 나도 놀랐다.
의사는 다시 한번 눈웃음을 보이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마법 같은 말, 그 순간
내 눈에 의사가 순하게 웃고 있는 나무늘보처럼 보였다.
여유 있게,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초조해 말고...
이미 결과는 나온 거고, 나는 통보만 받는 거니까,
내가 불안해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의사는 마치 1:1 과외 선생님처럼
영상 차트를 한 장 한 장 설명했다.
나, 그 순간 의대생으로 빙의한 걸까,
토씨 하나하나까지 모두 머리에 입력했다.
그리고 처음 촬영했던 영상본과 6주가 지난 영상본을 비교했다.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확실히 나중에 찍은 영상이 선명하고
이상세포의 모양도 확실하게 보였다.
첫 번째 의사의 진단은 맞지도 틀리지도 않았다.
이상 소견이 있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단계를 뛰어넘어
바로 입원과 수술을 시행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수술 이전 단계를 실행할 필요가 있었는데
첫 번째 의사가 왜 그 과정을 건너뛰었는지
아직은 이해가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의사의 진단은 첫 번째 촬영본으로 진단을 했기에
첫 번째 의사와 같은 진단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친절하다고 유명했지만, 그건 SNS 영상 속의 모습이었고
내 앞에 보인 모습은 꽤나 권위적이고 통제적이고
자신의 말 대로 안 하면 큰일 날 것처럼 말을 했었다.
똑같은 사실도 말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전달된다.
인간은 이성도 있지만 감정도 있다.
이성은 한 템포 쉬고 생각에 힘이 들어가야 솟아나고
감정은 거의 본능적으로 , 반사적으로 나온다.
특히나 이런 병을 진단할 때, 이미 마음이 무너져 있는 상태이기에
대부분 사실보다는 감정에 먼저 휘둘려 이성이 마비되기 십상이다.
의사가 환자의 그런 상태와 감정까지 다 케어해 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이라도, 불안을 일으키거나 매정하게 딱 잘라 말하는 거 없이
조금만이라도 착하게 말해주면 참 좋겠는데...
세 번째 의사는 실력도 뛰어났지만, 환자를 대하는 방식 또한 최고였다.
나는 순한 양이 되어 그가 제안한 수술 방식을 따르기로 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래간만에 정말 맛있게 식사를 했다.
행여나 최종 확진 후, 수술하고 또 추가 치료가 들어가면
밥을 잘 못 먹는다고 하니
먹을 수 있을 때 잘 먹자고 나를 설득하면서
눈물로 소금 간을 하면서 꿀떡꿀떡 잘 먹었다.
또 열흘을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