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의미의 동물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렇게 가져다 붙이는 것도 괜찮아

by VIVA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처럼 내 마음이 타들어갔던 여름.

일희일비하지 않을 만큼 유해졌다고 자부했던 나는

매사 자신 없고 불안해하던 원초적 태생의 지점으로 돌아간 듯했다.

동시에 파워 제이인걸 세상에 입증하려는 듯

생각의 앞과 끝을 '만약에'로 채워 가면서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태에 대비하려고

플랜 A부터 Z까지 만들어냈다.


그중에 굳은 얼굴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게 만든 '만약에'가 있었다.

20살 때, 머리를 삭발해 보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몇 년 전에도 긴 머리가 좋으면서도 귀찮아져서

'삭발'을 해 보려 했었다.

그때 동생이 목소리 높여 말렸다.

'언니, 우리 나이에 삭발하면, 암환자인 줄 안다'

그래, 그때는 농담이었는데,

지금은 그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 농담이 미래에 대한 예고나 예언이었다면

입이 방정이라고, 그런 말은 입밖에도 내놓지 않았을 텐데..

웃프고 친절하게도 대학병원에는 암환자를 위한

'가발센터'가 있었다.

그것까지 확인해 놓고, 파워제이 영혼은 지쳤는지

'만약에'를 그만두고 드라마 몰아보기로

결과를 확인하러 가기 전날까지 빈틈없이 영혼을 혹사시켰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탓에 계획형 인간이 된 것 같다.

내 성격에 깡과 베짱이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된 건 내 성격 때문이다. 성격이 곧 팔자라고,

임기응변이나, 변수에 취약한 탓에

그 변수를 줄이려 아등바등하면서 인생 난이도 낮추려고 했고

그 덕분에 내 능력치도, 대응력도 동반 상승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되는 그 단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고 보니

지금까지 일상을 괴롭히고 삶의 과속 방지턱 같았던 문제들이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다...

오늘 하루는 죽은 자가 그토록 원했던 그 시간인데...

살면서는 왜 그 생각을 못했던 걸까...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상념과 잡념과 감정에 감겨 있었다.

나의 집에 붙인 스위트 벙커라는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스위트 벙커는 잿빛 콘크리트 덩어리로만 보였다.



'내 허벅지 만한 굵기의 윤이 반질 반질 나는 검은 뱀이

내 팔꿈치를 물려고 독을 뿜으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난 팔을 접고 몸을 움츠렸지만, 뱀은 있는 힘껏 입을 벌렸고

접힌 팔꿈치가 뱀 속의 아가리에 놓여 있었다. '


지금까지 꾼 최악의 악몽이다.

너무 무섭고 두려웠던 탓에 잠에서 깨자마자

일어나 앉았는데도 목덜미가 서늘했다.

어떤 진단이 나올까....

뱀에 물리지 않았으니, 괜찮을 것 같았지만

동시에 팔꿈치가 뱀의 아가리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인간은 의미의 동물 아니던가.

평소 같았으면 꾸지도 않았을 꿈,

꾸었더라도 잊고 말았을 꿈이었을 텐데

진단 결과를 보기 위해 자동차를 두고 지하철로 이동하는 내내

그 꿈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에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빽빽한 머리숱에 긴 생머리를 늘어 트린 늘씬한 여자가 진료실에서 나왔다.

접수처에서는 바로 최상급 병원으로 예약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녀의 영혼은 이미 몸에서 나가 버린 듯했다.

마치 두 달 전의 내 모습 같았다.

눈에 총기가 사라진 그녀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내 귀에 들려온 건 '3기'였다.

심장이 부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떨리다간 멈출 것 같아

길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내 앞으로 환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던 차에,

검사하는 내내 곁에서 내 손을 잡아 주었던 간호사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멀리서 나에게 환한 웃음을 보였다.

보통 같으면 친절하고 일상적이고 때로는

사회생활만렙의 미소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만큼은 그 미소가 내가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인간은 믿고 싶은 대로 보이고, 보이는 대로 믿는 거라는

심리학 주장을 내가 실험자가 되어 직접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이 불렸다. 달리기 잘하는 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순간 휘청했다.

불과 열 걸음이면 도착할 진료실이 너무나 멀게 보였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의사가 말을 했다.

'다행입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나는 정말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얼마나 털썩 앉았던지, 유압기로 높이 조절하는 동그란 의자가 쑤욱 내려갔다.

그 모습에 의사는 웃었지만, 나는 당장 그렇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두 달 동안의 불안과 때로는 제어되지 않아 극심한 공포까지

날 몰고 갔던 일련의 일들이 떠올랐다.

한강 다리를 혼자 터벅터벅 걸어왔던 때와

밤새 보험을 확인하고, 병원을 검색하고,

식단을 짜고, 가족의 뒤를 준비했던 일들이

무의미한 헛발질이었다는 사실에

나 역시 영혼이 몸에서 나가 버린 듯했다.

분명, 내 몸에서 빠져나간 영혼은 너무 기쁘고 다행이라서

하늘을 향해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기도를 하고 있었을 거다.


의사는 좀 더 확실하게 유전자 검사를 권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내가 앞으로 그 암에 걸릴 확률을 예측하고,

어떤 방식으로 건강 관리하게 될지 결과치가 나온다고 했다.

긴 머리의 여자는 나와 같은 암 전단계에 있었고

유전자 검사에서 암에 걸릴 확률이 9배가 나왔었다고 했다.

그 정도면 언젠가는 암에 걸린다는 설명이었다.


검은 뱀에 물리지 않았으나, 뱀의 아가리까지 들어갔던 나는

유전자 검사가 마치 죽을 날을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번 봄과 여름을 지내면서 겪은 일을 되돌아보면

이렇게 미리 준비하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알기에

어떤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검사였어도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했다.

결과는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퇴근길과 맞물려 지하철에 사람이 몰릴 게 분명했다.

그래서 조금 걷기로 했다. 뛰기 시작한 이후,

지도앱을 켜고 거리를 측정해서

웬만한 거리를 뛰어가거나 걸어 다니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강남 한 복판의 익명성을 맘껏 누리면서

꾹꾹 눌러났던 불안을 날려 버렸다.

불안이 덩어리채 한 번에 빠져나간 마음에

허탈함과 감사함이 채워졌다.

괜한 걱정으로 보냈던 시간의 허탈함과

다시 한번 살아났다는 감사함.


종양을 제거한 덕분에 앞으로 몇 년은 안심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정기 검사와 건강 관리를 해야겠다고 굳게 맘먹었다.

이런 결심 얼마나 오래갔을까.

암진단을 받으면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는 상황에 벌써 질려 있었고

나는 스스로 두 달 동안 거의 암환자식 식단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던 터였다.


'하루 치팅하는 거 괜찮지 않을까 '

아무런 필터링 없이 배달앱을 켜서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결제용 비밀번호를 누르면 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냉장고에 남아 있는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두 달 전 오진을 했던 그 의사에게 눈물범벅으로 했던 첫마디

'저 아직도 할 게 많아요' 그 말을 떠올렸다.

나는 책상에 앉아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적었다.


내 인생의 의미는 내가 만들어 가야지.

누가 뭐라 한들, 나 자신조차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내 인생 좀 불쌍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의식과잉도, 연민도, 자만도 아니었다.

인간의 삶은 우주와 신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의미도 없이 철 따라 피었다 사라지는 꽃 같은 삶이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신의 관점을 매일 내면화해서 자각하기는 어렵다.


부모님의 사고를 겪고, 친구 장례를 치러도

나 만큼은 죽지 않을 것 같은 착각으로 방만하고 멍하게 보낸 시간에

하늘이 때맞춰 보낸 경고라 생각한다.


귀신의 집에 갇혀 있었던 것 같고

산속 폐가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고

절벽에 서서 가까워지는 늑대 소리에 벌벌 떨었던 것 같다.

마치 매트릭스처럼... 나의 두려움과 공포에 갇혀 보냈던 두 달..


신기하게도, 마감 전에는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이 생기는데

막상 마감치고 나면 한강을 산책하는 게 전부인 것처럼

암만 아니면 하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했던 일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 조차도 감사하다. 이제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된다.


엄마가 그랬다. 50이 막 넘었을 때 즈음

더 이상 사는 게 두렵지 않았었다고.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제 삶에 대해 조금은 뻔뻔하게 여유를 부리고 싶다.

아닌 거 알았으니까 이런 만용도 나오는 거겠지

이런 만용도 부려보는 호사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버킷 리스트를 만드는 대신

나는 운동복을 입고 한강으로 나왔다.

귀에는 이찬혁의 ' 파노라마'가 무한 재생되고 있다.

그래, 쥐뿔도 없는 인생이 지난 두 달 동안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우선은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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