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도 봤으니 이제 늙어도 봐야지

나의 인디언 섬머

by VIVA

가을장마도 아니면서 한강이 넘실거릴 정도로 장대비가 연속으로 내리치더니

어느새 나무빛이 달라지고 거리 옷차림이 변했다.


노란색의 경고카드와 빨간색의 퇴장 카드를 섞어 놓은 듯한

삶의 호된 경고장을 받았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갔다.


그 경고장 끝에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고

매일매일을 감사하면 살고 있을까?

그럴 리가....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원점으로 돌아와

그렇게 하찮게 여겨졌던 일들이

다시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일처럼 여겼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면서

병원을 오가던 애타는 마음을 다 잊은 듯 살았다.


건강식을 하던 나는 슬금슬금 배달음식을 늘려갔고

규칙적인 식사보다는 배가 고프면

대강 아무거나 집어 먹는 생존식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깨지 않은 습관은 집 밖을 나가기였다.

암환자들의 비슷한 습관이 멜라토닌과 비타민 D 부족이라는 주장에

뜨거운 여름 내내 대낮에 집 밖을 나섰다.

그 덕분에 내가 얻은 건 주근깨와 기미.


이제는 대 낮에 나갈 생각은 일도하지 않고,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가, 밤이 되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토끼든 거북이든 오직 다리로 움직이는 행동에 집중했다.

숨이 차오르게 뛸 때면, 뛸 수 있어서 감사했고,

느릿하게 걸을 때면, 잡념 없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때로는 어쩔 수 없다며 게으르고 의지박약 하게

원점으로 돌아간 나의 태도를 스스로 비웃기도 했는데

나의 이런 의식과 달리 무의식의 변화가 있기는 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변화를 즉각적으로 인지 못한 이유는

언어로 한정해서 말하기에는

그 변화가 구체적이거나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일상의 불평과 불만이 작아지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범위 내의 문제까지 내 일상에 끌고 들어와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싹둑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간 자리에 스믈 스믈 싹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그걸 인식하고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태도가

말과 글로만이 아니라 내면화되어, 행동으로 나왔다.


이 변화가 오직 '암 오진 소동'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건 역시나 오진한 의사 덕분이었다.

어찌 보면 그 의사야 말로 나의 남은 수명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길수 있도록

하늘에서 보낸 귀인이 아니었을까


또 하나 결정적인 변화는 늙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모든 문제는 인정할 때 그 해결책이 보이기 마련이지만

늙어가는 모습이 매일매일 보이는데도 그걸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나에게만은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애써 부인하고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했었다.


정신과 마음만큼은 배움과 호기심으로 젊음을 유지한다 해도

몸은 어쩔 수 없이 지구의 중력을 버티면 버틸수록 쇠약해진다.

이 당연한 사실을 왜 나는 거스르려 했던 걸까?


사회가 제시하는 나이의 타이밍과 조금 다르게 살았다는 이유로

나이를 잊은 채 살았던 걸까? 아니면 그런 척을 했던 걸까?


이 깨달음이 자연스러운 자유를 선사했다.

이 자유를 깨닫는 순간이 삶의 '인디언 섬머'였다.


노쇠, 쇠약, 기력 딸림이라는 노년의 신체 현상 앞에서

정신의 자유와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젊어 봤으니 이제 늙어도 볼 차례다.


자, 이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늙어야 할까

나의 인디언 섬머가 따스하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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