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우선인 인간의 삶, 헤브라이즘

그대여, 신의 뜻을 따르라?!

by VIVA

발음조차 낯설고 개념조차 일상적이지 않은 '헤브라이즘'

이 용어를 접한 건 서양 문학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그 개념은 어릴 적 교회 다녔을 때 주일학교를 통해서였다.

헤브라이즘의 기본은 신 중심의 삶이며 그것은 기독교 성경의 구약이 제시하는 삶의 모습이다.


헤브라이즘 Hebraism 은 헤브라이 Heberai에서 나온 개념어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 즉 그 시대의 헤브라이인은

기원전 1500년 전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헤브라이 왕국을 세워 지냈더랬다.

그때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헤브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즉 헤브라이 사람들의 사고와 문화 방식이 헤브라이즘이다.


단지 지금의 이스라엘과 차이가 있다면,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른

생각의 차이가 있을 거다. 지금의 한류가 100년이 지나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한류는 미래의 한류에 대한 일종의 근원적인 기준점이 된다.


한국어를 사용하며 한국 문화 속에서 사는 한국사람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한류라고 칭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애써 시간적으로 조금 근접해서 비교하자면

단군 할아버지가 계셨던 시대의 한국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대조해야 할까?


헤브라이즘 어원에 대한 또 다른 견해도 있다.

이브리ibri는 건너온 사람들 , 유랑자 또는 방랑자를 뜻하는 히브리어로

이를 영어식으로 옮기면 Hebrew가 된다.

어디를 건너온 사람들일까? 유프라 테스강이다.

유프라 테스강은 지금의 튀르키에와 시리아와 이라크를 흐르는 강이다.

인류 문명의 발생지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작점이기도 하고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에덴 동산에서 흘러 나오는 강 4줄기의 한 줄기를 말하기도 한다.


구약 성경의 인물인 아브라함은 이 지역에 우상 숭배가 너무 심해서

신의 뜻에 따라 신이 준비한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유대 민족을 이끌고 유프라테스 강을 건넜다.

신과 지도자를 순종하며 강을 건넌 민족이라는 뜻으로 이브리라 불린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디아스포라동안 유럽에서 유대인을 경멸하는 표현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이스라엘이라는 협소한 지역 문화로 볼 수 있는 헤브라이즘은

어떻게 서양 문화의 근간이 되었을까?

이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유대민족의 ' 디아스포라'와 기독교에 이유를 둔다.

이스라엘이 뿔뿔히 흩어져 동서유럽과 러시아까지 흩어진 민족의 이동으로 그 문화가 퍼졌고,

기독교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복합적 성격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헤브라이즘을 알고 싶다면, 그 당시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의 근간인

유대교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헤브라이즘의 대표적 특징은 신은 오직 하나,

유일신의 믿음체계를 들 수 있다.

신은 너무나 강력하고 전지전능하기에,

신을 흉내내서 모방하는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유일신 외의 나머지는 모두 우상이라 여겼기에

회화와 조각품은 발전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유일신은 절대 전능하며 인간의 삶에

모든 것을 제치고 최고의 가치로 존재한다.

신이 온 우주를 창조했고, 인간은 신이 만든 피조물이기에

신의 뜻과 신이 이미 결정한 필연과 운명에 따라

인간의 삶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철저한 신 중심의 개념이기에, 인간의 행복은

신이 은총과 축복을 내려 주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된다.

신의 뜻대로, 신의 윤리와 도덕대로 살면 복을 받고

신의 뜻을 거역하면 벌 받는다.

요즘사회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 권선징악의 믿음 체계다.


인간의 선택과 자유와 책임보다는

변치 않는, 신의 질서를 따르면 된다.

신은 완전무결하기에 신의 뜻을 따르면

피조물로서의 결핍과 모순이 극복된다고 믿는다.

신의 심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가게 된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힘들어도 신을 만나게 될 그날을 위해

신의 윤리와 도덕을 따라 현생을 살아간다.

욕심과 욕망을 통제하며 현생의 즐거움보다는 내세의 보상을 기다린다.


복종과 순종, 질서와 징벌, 금욕적이고 통제적인 생활,

물질보다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모습, 정결하고 평화로운 세계,

허세와 보여주기 식의 감각적인 세계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꾸밈없는 세상을 지향한다.


헤브라이즘의 신은 완전 무결하다.

그런 신이 만든 세상 또한 신의 뜻과 의미가 담겨 있기에

그걸 인간의 힘으로 고쳐내지 않으려 한다.

인간의 개입과 인위적인 조작 보다는

신이 창조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향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건

개인의 주관적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감각의 세계는 누구에게다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언어의 한계는 물론, 개인의 사고의 깊이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헤브라이즘적 사고방식은 매우 주관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믿을 수 있을까?

인간의 감각으로 인식되지 않는 세상을 믿는 게 신비주의다.

신앙과 믿음이 인간의 이해 영역을 넘어선 초월적 신비주의를 향한다.

인간은 몸이라는 신체적 한계에 갇혀 있지만,

동시에 영혼은 신과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오직 믿음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스라엘 민족이 디아스포라 겪으면서도

뛰어난 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

다시 말해 상상력, 감각을 초월한 형 이상학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고,

그를 또한 추상적 개념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처럼 인간의 세상은 신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고

진리와 진실의 세계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여기기에

인간적인 욕망은 신을 향한 건실한 마음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금욕주의 적인 삶을 택한다. 신은 인간에게 복과 벌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기에

철저하게 경배하고 숭배하며 그 질서를 지킨다.


인간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법과 관계의 역학보다는

절대적인 신의 진리에 따르는 이유는 다시 말하지만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은 절대 떨어질 수 없으며 동시에 신을 떠받들기에

헤브라이즘이 바라보는 신과 인간의 관계는 이처럼 종속적이다.

인간은 신 없이 살 수 없고, 신에게 등을 돌릴 수도 없다.

감히! 나를 만들어준 존재를 부인한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도 없다.

이러한 규율과 통제가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했지만

결과적으로 배타적인 차별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https://youtu.be/GH5PsO7TwXc?si=p70jdjlM3JqBE71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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