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고전의 의미

고전古典과 고전주의古典主義

by VIVA


문학에서 흔히 말하는 '고전'은 '고전주의'사조를 따른 작품인가?

고전 문학과 고전주의의 '고전'은 같은 의미일까?

'고전'이라는 언어 기호도 같고, 의미도 1차적으로 같지만,

언어가 사용되는 맥락의 배경, 즉 콘택스트의 차이로

2차적으로 의미가 분화된다.




고전이라는 명사에서 고전적이라는 형용사를 예를 들어 보자.

고전적이라 함은 예스럽지만, 촌스럽지 않고,

최첨단 유행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가치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고전적이라는 의미는 시간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 가치다.

그 가치는 분명 과거에 발을 두고 있지만 현대에도 충분히 인정받는 가치다.

그리고 커다란 변화가 없는 이상 미래에도 통하고 공감할 만한 가치다.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가치, 시간과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다.

고전적이라는 영어 표현에는 classic이라는 단어 말고도

time에 -less의 접미사를 붙여 timeless를 사용하는 이유도

이런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가치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에서 말하는 '고전'은 이런 시간적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작품이 쓰인 시간대가 현시대가 아닌 과거지만

지금 현재 읽어도 작품이 보여주는 의미와 가치가 통하는 작품을 말한다.

작품 속 시대와 장소와 주인공의 직업은 상관없다.

중세의 어두 컴컴한 수도원의 필경사이든,

눈 내리는 시베이라 벌판을 가로지르는 기차에서 불안에 떠는 불륜녀이든

저 바다 깊은 해저 고군분투하는 익명의 선장이든

작품이 추구하는 가치는 메타 인지를 통해

지금 우리 삶에 보편적인 선악과 도덕윤리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시대와 공간과 남녀노소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메타인지를 사용하는 고전 독서는

상상력을 통한 간접 경험의 최대치를 맛보게 돕는다.




그렇다면 고전주의는 문학의 고전을 말하는 걸까?

고전주의 작품은 고전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고전 중에 고전주의 사조를 따르는 작품이 있을 수는 있지만

모든 고전주의 작품이 고전이 되는 건 아니다.

고전 작품에는 고전주의 문예 사조를 따른 작품도 있고

낭만주의나 상징주의 사조를 따른 작품도 있다.


문예사조에서 말하는 고전주의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예술사조다.

르네상스와 마찬가지로 중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 중세, 안티-중세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중심 기조는 중세가 아닌,

중세 이전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인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인간 탐구다.


모든 인간적인 가치 중에서도

고전주의가 추구했던 가치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귀족 사회의 가치였다.

귀족들에게도 서열이 있었는데

그 가장 최상위 계층이 Claussicus다.

고전주의는 이들의 문화생활 가치 체계와 정신 활동 등이

매우 고귀해서 모범적으로 본받을 만한 가치로 여겼다.

여기서 고전주의가 시작했다


고전주의는 이처럼 뚜렷한 가치 체계를 모방 습득 하는데서 시작했다.

고전주의가 규율과 형식을 중시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가치를 보존하고 유지하는데

가장 적합한 방식이 있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고전주의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프레임이다.


특히 고전주의의 출발지인 프랑스에서는

형식과 구조와 구성뿐만 아니라

언어까지 정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했다.

그러게 나온 것이 아카데미 프랑세즈, 우리나라의 국립 국어원 같은 곳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언어를 순화하고 문법을 정립했고

문학에서도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강한 흐름이 형성했다.

특히 이 문학의 규범의 경전처럼 여겨진 작품이

아리스토 텔레스의 <시학>이다.


시학은 아리스토 텔레스가 기술한 것이 아니라,

강의 하 내용을 제자들이 받아 쓴,

지금 우리 시대로 말하자면 작법을 위한 강의 노트다.

희극과 비극 이렇게 두 권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건 비극에 관한 작법이다.


그리스 로마시대가 추구헀던 비극은

인간이 신탁을 거부할 수도, 도망칠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알고도 결국 그 신탁을 따라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운명을 거부하는 것은 비겁하고 비인간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신탁에 굴복하지 않고 슬프고 비통스러운 운명을 받아들인다.

주인공이 고통을 향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그 고통에 빠져 파멸하거나 고통에 빠지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러한 형식과 구성, 스토리의 상승과 하강이 명확한 고전주의 형식은

지금까지도 변치 않게 사용되는 가장 기초적인 작법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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