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난
질서의 균형미

고전주의가 탄생한 사회 시대적 배경

by VIVA

고전주의가 추구하는 기준은 매우 명백했다.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다고 여긴 로마 최상위 계층의 취향으로

인간의 눈에 완벽해 보이는 깔끔하게 정형화된 조화와 균형을 탐미했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겼다.

천여 년 넘게 종교의 세계관에 엄격하게 묶여 있었는데,

자유 분방하게 마음 가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왜 또 다른 기준을 만들어 규범화하고, 그걸 따르도록 했을까?




중세의 최고 수장은 왕 중의 왕, 교황이었다.

르네상스가 도래하면서 교황은 정치권력을 잃고 종교 수장 역할만 하게 된다.

교황이 누리던 권력의 공백을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이 없을 리 없었다.

유럽 곳곳에 있는 왕족들이었다.

지방으로 흩어져 있던 세력은 중앙으로 집중했다.

중세의 지방 분권제가 중앙 집권제로 변하면서

이후 절대 왕정의 모습으로 권력 집중화가 나타난다.

이 모습이 가장 교과서적으로 잘 나타난 국가는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왕과 귀족들의 궁정 향유 문화가 독특하게 발전했다.

모든 면에서 과하리 만큼 사치스러웠던 바로크와 로코코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취향과 문화는 진입 장벽이 높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궁정 출입은 아무나 할 수 없었고, 몰락한 귀족 집안은

자녀를 궁정의 귀족 도우미로 입성시키기도 했다.


살롱 문화는 진입 장벽이 조금 낮은 편이었다.

살롱은 귀족은 물론 예술가, 자본가 등이 자유롭게 만나고 토론하는 장소였다.

궁정과 살롱은 상류층이 고상하고 우아하게 품위를 지키며

격조 높은 문화의 기준을 마련했지만

점점 멋 부리고 허영하고 잰 체하는 장소로 변질된다.


모든 문화 예술은 자본력이 없으면 꽃 피우기 어렵다.

이러한 궁정과 살롱 문화를 뒷받침할 수 있었던 건

중상주의로 성공한 신흥 시민계층, 부르주아의 자본 덕분이었다.

부르주아 burgeoisie의 형용사로, 성안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burg는 성이라는 뜻으로 각 나라의 어원 형태로 변형되어 있지만

그 의미는 여러 도시 이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독일 함부르크 Hamburg,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

미국의 피츠버그 Pittsburgh 등이 있다.

부르주아는 중세 초기 봉건제 체제에서 성 안에 사는 사람,

영주에게 고용된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르네상스와 17세기를 지나면서

장사와 무역으로 성공한 상공인 계층이었고

19세기- 20세기 초기에는

노동자 프롤레타리아와 대립하는 자본가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모든 뜻이 조금씩 축소되면서

역사 속의 한 단어처럼 머물게 되는데.

그 의미가 17-18세기의 상업으로 자수성가한 신흥부자라는 의미로 자리 잡는다.


귀족은 태생으로 사회 지위를 유지하려 했다면

중상주의로 성공한 신흥 시민 계층 부르주아는

스스로 이룩한 부와 자본으로 지위를 유지하려 했다.

상인 계층은 자신들의 사유 재산과 사회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절대 왕정을 다각적으로 지지했다.

상호 필요에 의해 정치와 경제가 결합하면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정되었고

그 결과 화려한 예술 문화가 꽃픽 된다.


자본을 만들어 내는 상업 중상층은 문화 소비 계층으로 대두하고

귀족의 지위와 권력은 조금씩 밀려나면서

종교와 귀족의 후원으로 활동하던 예술가들은

신흥 자본가들의 지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다.


신흥자본가들은 귀족문화와 구별되기를 원했다.

이들은 혈연과 태생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과 근면으로 기술과 부를 축적한 자수 성가한 계층이다.

혈통으로만 본다면 평민이었지만, 지금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개천에서 용이 된 케이스다.

당시 신분 사회의 태생적 결핍을 노력으로 극복한 인간 승리의 계층으로

이들은 신분이나 혈통보다는 보편적인 인간 고유의 가치에 집중했다.

이러한 추구로 그리스 로마시대에서 전형을 찾는 고전주의가 탄생했다.




중세가 사라지고 인간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르네상스가 왔다 해도,

교황에서 왕으로 권력이 이동했다 해도,

수구 세력은 언제나 존재하듯, 과거로의 회기 하려는 세력은 존재했고

이것이 종교의 탈을 쓰고 일어난 전쟁이 프랑스 위그노 전쟁이다.

이는 신교와 구교의 30여 년 지속된 프랑스의 내전으로


신흥시민 계층은 자신들이 손수 쟁취한 재산과 신분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이들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었다.

바로 과거의 봉건 신분제를 주장하며

가톨릭으로의 회기를 목표삼은 구교 수구 세력이었다.

종교 개혁으로 일어난 신교와 중세를 지켜온 구교 세력은

프랑스에서 30여 년 넘게 전쟁을 했고,

이러한 사회적 대립으로 신분과 종교를 초월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탐구하는 고전주의가 나오게 되었다.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귀족과 신흥 자본가들의 대립,

수구와 진보의 대립,

귀족과 평민의 대립 등

인간사이의 다양한 대립과 갈등이 생겨났고,

그 상황에서 인간의 욕망과 개인의 성장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면서

인간탐구와 개인의 깨달음은 역사에서 고전주의에 이어 계몽주의를 이끌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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