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 시점

by VIVA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는

관계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선조들 말씀에 ‘똥도 촌수를 따진다’는 표현이 있다.

마음의 거리에 따라 냄새나는 배변 물조차도

향기롭게 느낄 수도 있다.

관계의 친밀함에 따라 상황에 대한

시선과 판단이 달리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친밀함은 무엇으로 만들어질까?

혈연, 우정, 사랑의 정신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으로 만나는 관계부터 이야기를 해 보자.

사회적 관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계산기가 바쁘게 돌아간다.

그런 관계에서는 손해와 이익의

저울질을 잘하면 서로 윈윈 할 수도 있고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것과 상대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대등하다면 관계를 맺어갈 때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교환의 대상이 사물이라면

교환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면 쉽게 합의할 수 있다.


인간관계가 수학의 등가교환의 법칙대로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인간의 감정은 공식 없이

오만가지 갈래로 뻗어나가기에

좋은 감정이 마음의 생채기로 돌아올 때도 있어

그런 되돌림이 개인학습화로 고착되어 버리면

마치 그것이 자신 고유의 인간관계 법칙이 되어

관계에서 그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으려 든다.


감정에 취약한 나는 모든 것에 우선 거리를 둔다.

초등학생 때 심리테스트라며 반 아이들이 이러저러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Q : 3일째 사막을 걷던 중 오아시스가 눈앞에 나타났다.

가장 먼저 어떤 행동을 하겠는가?


1. 풍덩 뛰어든다

2. 세수를 한다.

3. 손으로 물을 떠 마신다.

4. 물 상태를 확인한다


난 4번을 선택했다.

아무리 더워도 더러운 물에 풍덩 하고

뛰어들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반 친구들 대부분이 1번을 선택했기에

나는 물의 상태를 먼저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고

나의 선택에 대해 변명까지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건 지금도 변함없다.

아직 사막에서 3일째 헤매 본 적이 없어서

그 갈증의 정도를 알 수는 없지만

그 물이 구정물이나 독이든 물이라면 어쩌려고....


이러한 나의 태도는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확 뛰어들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한참을 바라보고

인풋과 아웃풋을 정리하고

그 사이 만들어지는 감정을 추스른 후에 뛰어든다.

물론 뛰어든 후에는 후회 없이 열과 성을 다해

팔다리 휘저으며 수영을 한다.

물속에 뛰어들기 전에

나름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나의 감정을 미리(?) 체험하기에

갑작스러운 변수에 당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관찰자 시점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장점이다.

관계에서 전달되는 감정을 느끼는 데는 빠르지만

해석하는 데는 느리기에

한 발 뒤로 물러나 다가오는 감정과 전달된 감정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무엇을 선택할지

미리 예측해 보는 것이다.


내성적 인간은 감정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기에

관계의 무게를 다른 누구보다 더 예민 하게 여긴다.

남이 보기에 쉽고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도

신중하고 진지하게 다각도로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그들을 향한 배려이기도 하다.

생각이 너무 많아 힘들어도 변수를 미리 생각해 보는 습관은

이들에게 세상을 향한 나름의 방어벽을 만들어준다.


생각이 많고 때로는 멈추지 않는 내성적 인간은

세상과 사람 구경을 좋아한다.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조건하에 말이다.

무엇보다 그중에서 감정이 연루되지 않는 장소를 선호한다.

카페의 창가나 고속버스 터미널과 공항은

밍밍한 다큐처럼

감정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을 관찰하기에 좋은 장소다.


생각 많고 감정에 취약한 내성적 인간이

지신의 세계에 몰입하지 않고 타인을 관찰하는 행동은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손을 내미는 일이다.

물론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면 움찔하고

순간 달팽이 집으로 도망가겠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가 왜 나에게 다가왔을까 하고

온갖 상상과 망상 속에서 혼자 소설을 쓴다해도 말이다.


최대한 감정을 빼버린 극 사실주의의 관찰자 시점으로

세상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너무 친밀한 관계는 부담스럽고 너무 머나먼 관계는 서럽고

관찰자 시점과 친밀함을 어떻게 엮어나가야

세상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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