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테스트

내성적 인간의 감정 사용법

by VIVA

중학교 2학년 때 ‘앙케트’라는 노트가 있었다.

앙케트 노트는 반 친구들이 문항에 대해

답을 적어내는 공책이었다.

문항은 대략 좋아하는 색, 음식, 운동과 같은 선호도에서부터

특정 상황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이유를 쓰라는 문항도 있었다.

반 친구들의 답변은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지만

앙케트를 만든 친구의 의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학기 초부터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려 애썼다.

천성적으로 일대일 관계를 좋아했지만

내가 가까이 지내고 싶었던 아이는

여러 친구를 두루두루 만나는 스타일이었다.

봄 소풍에 나는 그 아이와 단둘이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 아이가 사진을 찍는다고 하자 주변에 있던

반 친구 거의 모두가 달려들어

사진 속 내 얼굴은 누군가의 팔로

가려져 버린 일화도 있다.

그 아이의 친화력과 인기가 부러웠다.

인기 짱, 요즘 말로는 핵인싸였던 아이와

친해지고 싶었고 중2 사춘기를

거하게 지나가던 나도 핵인싸가 되고 싶었다.


나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아이의 타고난 친화력이 없었다.

말을 먼저 걸지 못하고

누군가 말을 걸어와도 우물거리기 일쑤였다.

나의 바람과 현실이 충돌하면서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앙케트 노트’였다.


약 50개 되는 문항에 반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적어내면

그걸 서로 읽으면서 서로를 쉽게 알게 되고

어색함도 사라지고 더 나아가 오해도 다툼도 줄어들면서

반 친구들의 우정도 단단해질 것이라는

참으로 순진하고 이상적인 의도가 나의 마음이었다.

아마 그게 나의 첫 번째 심리테스트가 아니었을지 싶다.




심리 테스트는 변화무쌍한 사람의 마음을

특정 상황에 대입해 보편적인 성향을 끌어내

인간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기준점을 제시한다.

이전에는 특정 기관에 가야만

적성검사와 심리 테스트를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포털 창에 심리 테스트라고 넣기만 하면

별의별 테스트가 다 나온다.

성격 유형에서부터 사이코패스 검사까지

내가 왕이 될 상인지 범죄자가 될 상인지 까지

내 안의 마음을 측량(?)할 수 있다.


‘내가 이런 사람이군!’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느낌표와 물음표를 반복해 가며 다양한 테스트 끝에

내 안의 너무 많은 내 모습 하나가 설명된 듯하여

요동치는 내면이 잠잠해졌다.

태평양에서 나침반 하나로

해와 달의 움직임으로 항해 하다가

최첨단 내비게이션이라도 얻은 느낌이랄까


심리테스트 결과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내 입으로 차마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난 이런 걸 원해’라고

말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해를 원한다는

매우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무엇보다, 오해나 갈등이 있을 때나 대화가 단절되어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 모를 때 이 방법은 꽤나 괜찮았다.


유용한 점이 있으면 불용한 점도 있는 법,

심리 테스트 결과로 역습을 당한 일이 있다.

나만큼 조심스러운 지인이 어느 날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나에게 테스트 결과와 나의 모습이 다르다면서

테스트 결과대로 행동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특히 ‘옳다고 믿는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라는 성격이 싫다고 했다.


‘내가?’

‘나의 절친에게도 종교나 신념을 강요하지 않는 내가?’

한참을 내 마음을 후벼 파보아도

그와는 깊은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나오지 않았다.

가만 보니 그는 내가 올린 SNS의 글을 인용하면서

심리테스트의 결과로 만들어진 프레임에

나를 가두어 버렸다.


사람의 마음을 책과 글로만 알려고 했던

나의 시도는 여기까지였다.

사람의 마음은 수천수만 갈래의 결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

어떻게 그걸 언어라는 한정된 틀로 고정해

그것만 들여다봤는지

지금 보면 이 또한 과정이라고 한다 해도

나의 어리석음에 피식 웃음이 세어 나온다.


한 때 나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잠재워 준 심리테스트는

울타리이자 감옥이었다.

선을 긋고 여기 까지라는 생각은

인간 존재에 대한 나의 오만이었다.

때와 상황에 따라 인간은 다변적이고 다중적일 수 있다.

그러니 나의 방어벽과 대응력을 키우는 것만이

인간관계의 해답이다.


그 앙케트 공책은 부모님 댁에 여전히 있을 것이다.

나의 물건을 함부로 정리하지 않으신 엄마의 배력 덕분으로.

그 공책에 대한 또 하나 일화는

인기 짱이였던 친구는 참으로도 성의 없게 답변을 적었지만

인기를 증명하듯 반 친구들이 그 페이지를 보고 또 봐서 인지

페이지가 뜯겨 나가고 말았다.

나는 그걸 스카치테이프로 잘 붙였는데

지금까지 잘 붙어 있겠지?

하나 더 , enquête 여론조사 또는 설문조사 프랑스어로

어린 시절 내가 한건 심리 테스트도 설문조사도 아닌

인기 짱과 친해지고 싶었던 용감하고 과감한 시도였다는 걸

인기 짱 친구는 알고 있었을까?


enquête


enquê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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