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시대다.
교육과 지식은 평균 상향되어
똑똑하지 않은 사람 하나도 없다.
게다가 빨간 버튼의 세상으로 들어가면
세상의 거의 모든 지식을 쉽고 빠르게 볼 수 있고
초록 검색창의 세상에 질문하면
엑스퍼트들이 촤르륵 답을 올려준다.
그들의 속도와 답에 감탄을 한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자라고
공중전화와 삐삐, 벽돌폰과 폴더폰
그리고 북유럽 회사의 내비게이터에서
지금 삼성 갤럭시 스마트 폰까지
업데이트되는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개를 빼꼼히 빼들고 매일 허우적거린다.
가끔은 내가 요양원에 들어갈 즈음이면
로봇이 나를 들고 나를 거라는 예상도 해 본다.
'로봇한테 고맙다고 말을 해야 하나?'
이런 엉뚱한 생각 끝에 나의 글 속도에 대해
진지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컨탠츠를 생산하는 속도와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반비례다.
세상이 변하는 건 생산자의 컨탠츠 덕분이기도 한데
세상이 변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컨탠츠를 생산하고 그 세상을 리드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확실한 건 그게 나는 아니라는 거다.
일을 할 때 "예민한 다람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일 처리 속도가 매우 빨랐다.
하지만 그 일이 '글'이 된 이후 나무늘보가 된 듯
다가오는 지하철 조차도 매번 놓치는 느낌이다.
컨탠츠 채널의 활성화를 위해 늘 나오는 해법은
'자주' '빠르게' 다.
블로그의 1일 1포 스팅, 유튜브의 1일 1 영상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만드는 컨탠츠의 주제는 책이다.
책을 읽고 또 읽어서 줄거리를 요약하고 분석하고
작가의 머릿속과 마음으로 들어가 봐서
그 어렵고 복잡한 글을 조금은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책 세상으로 가이드하는 컨탠츠다.
그런데 이건 가이드가 맨날 버스 안에서
잠을 자고 있나 싶을 정도로
내 콘텐츠의 업데이트 속도가 느리다.
해명을 하자면,
책에 따라 다르긴 해도 아무리 읽었던 책이라도
다시 읽는데 적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1주일도 걸리고
스크립트를 쓰고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을 하기까지
영상 하나에 나는 거의 1주일에서 열흘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이 나무늘보 같은 속도에 속 터지는 소비자가 연락이 왔다.
차마 남들이 다 보는 댓글에 올리지는 못하고
DM으로 연락이 온 것이다.
처음에는 마음이 많이 상했다.
얼굴 내놓고 이름 석자 걸고 컨탠츠를 만드는 일은
타고난 천성에 반하는 성장을 위한 애달픈 도전이었다.
지극히 내향적인 나에게 지금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영상을 찍을 때는 어떻게 하면 얼굴을 내밀지 않고
컨탠츠를 만들어 볼까 고민을 할 정도인데...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감정을 가다듬고 두 번째로 다시 읽어 보니
상대의 걱정이 확 마음에 전달되었다.
'님의 컨탠츠는 너무나 소중하고 저에게 도움이 되지만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님의 능력과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아깝습니다.
님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전직 마케팅 강사였습니다.
돈을 요구하는 것도 강의를 들으라는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라며 그는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짧은 영상으로 자주 업로드해라.
2. 조회수가 많이 나온 타인의 영상을 따라 해라.
3. 헤어스타일도 주기적으로 바꿔라.
4. 옷도 화려하게 입어라.
5. 제일 중요한 건 시청자는 깊이 있는 지식을 원치 않는다.
지적 허영을 채워 줄 수 있는 얕은 지식을 제공해라.
그리고 그는 나에게 물었다.
'돈을 벌고 싶은 가요? 그러면 제가 말한 대로 하세요
취미로 하시는 건가요? 그러면 하시던 대로 하세요
저는 무엇을 선택하시던 구독자 찐 팬으로 남겠습니다.
무례함을 용서하시고 좋은 영상 언제나 감사한 맘으로 시청합니다.'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를 두 번 톡톡 건드려
하트가 뜨게 만들고 소통을 끝냈다.
나무늘보가 무척 예민해져 있다.
그 예민함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마음이 글을 뽑아내지 못하고 있다.
오늘 촬영하려 했던 계획을 뭉개고 있다.
이 글을 통해 그에게 답하지 못한 말을 하겠다는
찐 구독자라면 이 글을 볼수 도 있겠지 하며
나를 변명하고 또 방어하고 싶은 맘이 생겼다.
'취미활동을 하면서 돈도 벌고 싶은데요'
그에게 어떤 답이 올까?
그나저나 취미 활동하면서 돈 버는 꿈같은 일들이
나에게 벌어지기는 할까?
이러면 또 '당신은 확신이 없어서 그래'
이렇게 지적하겠지?
그런데 난 진짜 내가 왜 유튜브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방향성의 상실이 내 채널에도 그대로 나오는 건가?
그냥.. 그냥.. 그냥..이라는 두리뭉실한 단어로 말할 뿐이다.
어쩌다 보니 하게 되었고 하다 보니 잘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다 보니 시간이 걸리고...
그런데 시간 안 걸리고 잘 되는 게 있나?
도서관에 멍하니 있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돌아가고
내 머리도 그만큼 빨리 돌아가지만
왜 인지 내 글은 나무늘보만큼 느리다.
예민한 다람쥐가 나무늘보의 속도로 살아가기는 정말 힘들다.
예민한 다람쥐가 도토리를 포기해야 하나?
나무늘보가 다른 나무 가지를 포기해야 하나?
내가 다람쥐인가 나무늘보인가?
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별거 아닌 메시지에도 흔들리는 나를 자책하면서
피곤하네... 만화책이나 보자..
도서관 만화 코너를 다시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