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이 또 이렇게 간다
펫로스 극복 중 -12년을 함께한 생명과 영원한 이별
by
VIVA
Aug 22. 2022
아이가 떠난지 달력을 보니 1주일이 지났다.
오랜 시간 지난 거 같은데 겨우 1주일이라니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수첩을 열어 보니 텅 비어 있다.
8월 초부터 아이가 떠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강아지 장례 업체를 검색해
북마크로 저장까지 해두었더랬다.
아이가 떠났을 때 저장해둔 업체 중 하나에 연락해
바로 장례를 치렀다.
사람처럼 염습하고 입관하고 추도식을 했다.
그리고 화장을 바로 진행했다.
장대비 같은 비가 멈추고 먹구름 사이로 달빛이 흘러나왔다.
아이가 오후 4시 30분경에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장례 업체에 도착한 게 6시 전후,
모든 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9시 30분 정도였다.
긴장과 이완, 슬픔과 홀가분의 불규칙한 반복으로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말 그대로 뻗었다.
다음 날 북한산에 갔다.
원래는 산 입구에 있는
계곡과 산사에 잠시 들릴 예정이었다.
집도 싫고 그렇다고 북적거리는 카페도 별로였다.
늘 혼자 있지만 더 혼자 있고 싶어서
고즈넉한 곳을 찾은 것이었다.
내리쬐는 태양에 전날의 습기는 벌써 사라졌는지
유럽 남부의 지중해 햇빛처럼
강렬한 빛이 공기를 난도질한 듯 했다.
하늘이 어찌나 높고 파란지 곧 가을이 오겠다 싶었다.
그렇게 평지를 걷던 나는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었다.
마바지에 면티셔츠, 여름 얇은 운동화에 에코 가방
가방 안에는 책과 나의 작은 살림만 있을 뿐
물도 먹을 것도 없었다.
한번 오르니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산에 오르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대부분 아틸라와 관련된 생각이었다.
아틸라는 내 인생의 12년을 함께한 아이다.
말도 없고 애교도 없는 게 나와 똑 닮았다.
가끔 어떤 사람은 강아지가 우울해 보인다고 했는데
내 눈에는 우울한 게 아니라 생각이 많은 거였다.
나처럼 생각이 많아서 감정이 잘 보이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 흔한 개인기도 없고
우리말도 못 알아들어(독일말만 알아듣는다)
때로는 바보 강아지 취급을 당하기도 했지만
생각 많고 속 깊은 아이 었다.
아이가 4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짖지를 않았다.
소통에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소리에 워낙 예민하기 때문에
아이의 작은 낑낑거림에 잘 반응해 준 결과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한국에 와서 마당이 있는
타운하우스에 살 때였다.
어디선가 앙칼지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틸라 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오히려 아틸라가 당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고
미간에 있는 힘을
다
주고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
곧 이마에 힘이 풀리면서 내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 조그만 아이가 새로 오신 경비 아저씨를 못 알아보고
울타리 너머로 죽을 듯 살듯 앙칼지게 짖은 것이다.
경비 아저씨에게 머리 숙여 바로 사과를 했다.
경비 아저씨는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고놈 집 잘 지키겠습니다' 하고 칭찬으로 받아주셨다.
4년 만에 처음으로 들은 아틸라의 목소리
그날이 영화처럼 기억났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당일 아침,
식음을 전폐하던 아틸라가 물과 음식을 찾았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아이가
물 마시고 음식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다시 살겠구나, 다행이다' 하며 쓰다듬어 주었다.
잘 먹은 아이는 오래간만에 볼록 나온 배로
옆으로 누워 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영원히 잠들었다.
반려견 장례 지도사님이 그러셨다.
착한 아이들은 견주가 걱정할 까 봐
가기 전에 먹고 마시는 모습을 꼭 보여준다고...
아틸라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 들렸다고 생각했던 내가,
호들갑 떨지 않고 유난 떨지 않는 내가
그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츤데레 견주의 츤데레 반려견.
아이는 그렇게 나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떠났다.
갑자기 산에 오른 내 근육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일어났다 앉는 것도 힘들고 걷는 것도 어기적 거린다.
그런데도 청소를 했다.
잡생각이 들 때는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게 최고다.
아이의 흔적을 너무 빨리 치우는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이 울렁거렸다.
심적 갈등....
하지만 나는 아이의 물건이 눈에 보일 때마다
찌릿찌릿 마음이 아프고 정신이 혼란해졌다.
오히려 안 보는 것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차분히 아이를 애도하는 것이
더 좋을 거라 판단했다.
서울이지만 이 동네에 있는 마을 회관에
아이의 물건을 기증했다.
마지막 달에 아이가 먹기만 한다면 뭐든 사들었던 터라
사료가 라면 상자로 2박스나 나왔다.
거기에 싹 빨아 놓은 아이의 침대와
산책할 때 사용했던 줄,
옷가지들
독일에서 올 때 사용했던 캐리어까지
빨고 소독해서 모두 다 기증했다.
아이가 있던 자리를 자꾸 힐끔거린다.
아틸라는 내 품에 쏙 안길 만한
작은 아이였는데
아이의 존재는 이 집을 가득 채울 만큼 컸다.
적막하다. 이사를 가야겠다.
뜰이 있는 타운하우스도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도 필요 없다.
부동산 앱을 한참을 뒤지다가
한국에 온 지 딱 10년이라는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그동안 시도했던 많은 일들이 결실 없이 사그라지고
눈에 띄는 실패를 보기도 하고
한량과 프리랜서와 간헐적 백수 사이를 오가며
10년 잘 놀았다.
그 시절이 아틸라와 함께 가버렸다.
아틸라는 생로병사의 삶의 모든
단계를
과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주었다
.
아틸라의 생의 마감과 더불어
나만의
새로운 출발이 시작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책임졌다.
그들의 의식주와 더불어 정서와 유대감까지
이제는 나만 책임지면 된다.
어떤 생명도 더는 돌보거나
책임지지 않을 결의로 한 가득이다.
나만 돌보자, 이제는!
완벽하게 홀로 된 지금 홀가분하다.
커다란 집을 빙빙 돌면서
버릴 살림과 기부할 물건들에 눈도장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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