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으면
신물이 되어 목구멍으로 찝찝하게 올라오곤 한다.
그럴 때 사용하는 나만의 특효 처방이 있다.
백지에 기화펜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다.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운
유치하고 치졸한 감정에 사로 잡힐 때,
이성을 포기하고 상대 탓을 하며
징징거리고 싶을 때,
끈기와 논리로 설명하고 설득해도
상대와 소통이 불가한 상황일 때,
기화펜을 들고 떠오르는 대로 휘갈긴다.
그리고 가만히 본다.
꾹꾹 눌러쓴 글자의 잉크가 서서히 옅어지면서
10분도 채 되지 않아 덩그러니 하얀 종이만 남겨진다.
그와 함께 시발이었던 내 감정도 휘발되어 버린다.
다정한 무관심 또는 정다운 무관심
La tendre indifference는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마지막에 나오는 표현이다.
주인공 뫼르소가 사형 선고를 받았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는 사형을 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자신을 변명하거나
가식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그를 돕겠다는 사제에게 분노하고 등 돌리지만
그는 한순간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사형 집행 날 수많은 관중이
증오의 함성으로
자신을 맞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맥락의 이해 없이 떨어진 조각만 보면
어디를 봐도 주인공의 선택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실존주의와 부조리는
주인공이 자신의 언행에
홀로 오롯이 책임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삶을 대신 선택하고
해석해 주기를 원치 않았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는
세상이 무관심하게 바라봐 주기를 바랐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책임지고 행할 때는
세상이 자신을 다정하게 봐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세상은 무관심한 다정함으로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의 선을 넘는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 어린
충고와 인생의 방향을 알려준다면서
선택 앞에서 이래라저래라
자신의 뜻대로 선택하기 원하고
그 선택을 따라 결과가 부정적일 때는
1%의 책임도 지지 않으려 바둥거린다.
반대로 그 결과가 긍정적이면
자신의 말대로 라면서 공치사하면서
선택으로 성공한 이의 영광을 가로채려 든다.
수많은 멘토와 멘티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멘토는 거리를 두고 멘티에게
여러 경우의 수를 말해줄 수 있지만
그 선택과 책임은 오롯이
멘티가 스스로 하도록 맡겨야 한다.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기대대로 선택하지 않았다고
선택하려는 자의 발목을 잡아끌면 안 된다.
코치가 경기장 난입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코치와 감독은 코치석에서
묵묵히 다정하게 응원해주는 게 전부인 거다.
멘티도 마찬가지다. 멘토의 여러 조언 끝에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멘토 탓을 해서는 안된다.
멘토가 이길 저길 알려주었지만 가고 있는 길을 선택하고
두발로 걷고 뛴 사람은 멘티 자신이기 때문이다.
골을 넣지 못하겠다고 코치석에 있는 코치를 끌어다
경기를 뛰라고 할 수 없는 거다.
각자의 영역에 지켜야 할 직업윤리와 사생활이 있다.
그 영역 제발 지키면서 동시에 타인의 선도 존중하자.
님들아, 제발 선 넘지 말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선을 넘는 순간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거다.
대신 살아 주지 않는 거면 상대의 영역에 침범하지 말자.
나 말고는 나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도, 살아줄 사람도 없기에
누군가 나의 영역에 침범하면 적극적으로 쫓아내거나
울타리를 높이 올려야 한다.
낮은 자존감과 심리적 방어벽은
그런 멘토들과 지인이 짓밟아 다시 올라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관계는 변질되어 종속과 의존 관계가 되면
서로의 발목을 붙들고 같이 물에 빠져 가라앉자는
물귀신 관계가 되어 버린다.
심하게는 다정한 조언이 가스라이팅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고
무책임하고 무지한 조언이라며 돌팔매질을 당할 수도 있다.
멘티 스스로 선택했음에도 말이다.
결과에 자신이 없어 탓할 상대와 구실이 필요한 멘티는
결정전에 멘토를 찾는 성향이 심하다.
그런 비굴하고 야비한 언행에 당하지 말자, 멘토들이여.
더불어, 멘토는 멘티가 부여한 자격을 남용하지 말자.
멘티의 영역을 존중하자.
멘토라고 자격을 준 것은 멘티다.
멘티가 당신을 멘토로 삼지 않으면 당신은 멘토가 아닌 것이다.
어떤 권리와 주장으로 멘티의 삶을 대신할 수 있는가?
나는 직업 상담가는 아니지만 연륜과 성격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어달라 요청(?) 한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러 나갈 때면 기화펜을 챙긴다.
감정은 휘발성이다.
그때그때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묵어 버리면
발효 대신 부패가 일어난다.
그 부패된 감정을 안고 사는 건 나 자신이다.
내 몸이 썩어 문 들어지기 전에 해묵은 감정을 꺼내봐야 한다.
기화펜 하나를 다 쓸 때까지 감정의 찌꺼기를 다 뱉어내고 날려 보내자.
숙변이 빠져나가듯 묵은 감정이 날아가면 몸과 마음이 무지 가벼워진다.
그렇게 새롭게 길을 떠날 수 있다.
이 글은 가스 라이팅의 싹이 보이는 위태로운 관계에서
외줄 타기 하는 멘토와 멘티에게 보내는 나의 다정한 무관심이다.
세상 사람들아, 이 세상에는 같은 사람이 하나 없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간섭이 아닌 응시로
서로에게 다정한 무관심으로 대해주기를...
그 조차도 안된다면
개쌍 마이웨이의 정신으로 세상 헤쳐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