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폭발 시대에
인구 밀도 높은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아무도 없는 곳의 유유자적 한 삶을 낭만적으로 꿈꿨다.
'내 방' 한 칸 누리는 거 조차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내가 그 꿈을 이룰 기회를 얻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을 떠나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푸른 지평선이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이주를 했더랬다.
초반에는 그 지평선에 한없이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다.
빌딩 숲으로 만들어진 좁은 골목길과
지하철의 계단을 오르내리던 환경과는 완전히 달랐다.
서울에서는 고개 들어 하늘을 봐도 전선과 간판으로
온전한 하늘을 보기 어렵지만 그곳에서는 고개만 들면
햇빛과 달빛과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서울에서는 걷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곳에서는 넓은 땅덩어리를
네 바퀴로 다니는 것이 현명했다.
서울에서 운전할 일이 없었던 나는
부랴부랴 면허를 취득해 차를 몰기 시작했고
이제 사람과 마주치는 장소라고는
직장과 마트와 쇼핑 몰뿐이었다.
몇 달은 그 한가로움에 취해
도시의 찌든 때를 벗겨내는 듯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박봉이었지만
시골에 드넓은 정원이 딸린 저택을
구입할 계획까지 야무지게 세워놓았다.
언어도 제법 잘 통했기에 뭐하나 아쉬울 것 없이
해외 생활이 충만하게 다가왔다.
서울을 떠날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푸른 들판 멀리 날아가 버린 듯했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나를
대견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푸른 들판이 누렇게 변하고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나의 선택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눈에 눈이 시릴 정도였다.
눈을 치우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
겨울이 깊어 갈수록 눈이 더 많이 자주 왔고
전기가 단절되거나 가스가 차단되는 순간도 많았다.
무엇보다 눈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집이 흔들렸을 때
‘오즈의 마법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혹독한 환경을 탓할 틈도 없이 첫 해 겨울,
매일매일 눈과 바람에 적응해야 했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되었을 때
그 지역의 악명대로 Michigan Blue에 빠졌다.
미드의 한 장면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앞뒤 맥락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멋쟁이 뉴요커가 미시간으로 발령 되어
그녀와 친구들이 다 함께 부둥켜 앉고 우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때 친구들과의 이별이 저리도 슬플까 싶었는데
미시간에 살아보니 알겠더라,
쉬크한 뉴욕커, 그녀들의 울음을.
문 열면 보이는 건 새하얀 눈뿐이었다.
가끔 흰 여백에 검은 점이
조금씩 움직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는데
사슴 무리가 먹이를 찾아 눈 속을 헤집고
집 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기 원했던 나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과의 대화와 온기를 찾기보다는
내 눈에 사람을 담고 싶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광경은 조금 과장해서
세상의 종말을 보는 듯한 공포를 순간 불러오기도 했다.
딱히 살 게 없어도 쇼핑몰로 눈을 뚫고 달려갔고
그때 몰깅mallging 이라는 단어를 몸소 실천했다.
운동화에 가벼운 차림으로 쇼핑몰을 빠르게 걸으며
사람 구경도 하고 운동 부족도 메웠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낭만적 기대는
이후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내성적 인간은 외부세계와 접하면서
에너지 소모가 심하기에 자주 충전해줘야 한다.
홀로 있을 때 급속 충전이 되고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을 때 저속 충전이 된다.
자라면서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
유독 컸었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말 그대로 아무도 없는 오지와 같은 곳에서
나에게 집중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었다.
현실과 이상은 늘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나만의 공간이 차고 넘치는 그곳에서
언제나 급속 충전으로 내면의 배터리가 충전되어 있었지만
외부의 자극이 없어도 너무 없다 보니
충전의 필요성도 방전의 위험도 없어서
에너지 사용법을 잃어버린 듯했다.
이런 상태라면 충분히 에너지 균형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외로움을 견디는 일은
외부 자극을 소화시키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이후 여러 다른 국가의 다양한 지역에서 살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인천 공항에서 여러 카트로 한 살림을 싣고 나올 때
훅하고 그리운 향기가 몰려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닌
뿌연 하늘과 쾌쾌한 매연 가득한 도시다.
공항버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디젤가스와 스모그가 나를 반겼다.
도시의 해로움조차 나의 살던 고향인지라 눈물겹게 반가웠다.
학생 때 아무도 없는 곳에 살겠다고 고요하게 아우성쳤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 살고 나니
내성적 인간의 ‘아무도 없는 곳’의 심연을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섬이 확고하게 있으면서
동시에 내가 다른 섬으로 띄울 수 있는 배나
연결할 수 있는 비상 다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는 이 복작거리는 서울이 나에게는 최고다.
필요한 모든 것이 거의 다 있고 없으면 대체물이 늘 존재하고
내 집이라는 공간과 문 열면 열리는 또 다른 세상,
그리고 그곳을 내 두 다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자유.
이 세 가지가 나를 ‘아무도 없는’ 완벽한 곳으로 만들어 준다.
함께 하면서 또 따로 연대와 익명성이 공존하는 곳.
여의도 작가 교육원을 다녔을 때
산사로 들어가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제법 자주 들었다.
머리만 깎지 않았을 뿐 속세를 등지고
속세를 이야기를 쓰는 그들의 내공이 존경스럽다.
나에게는 이런 내공은 없다.
나는 세상과 원하는 대로 연결하든가 단절하든가 해야 한다.
세상과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힘들다. 적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적당한 거리가 얼마만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