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자극 처리 중입니다

내성적 인간의 감정 사용법

by VIVA

‘촉이 좋다’에서 ‘촉’은 정확하게 무슨 뜻일까?

호기심이 발동해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했다.

지금껏 ‘촉’이 촉수나 감촉에서

사용되는 뜻으로 알고 사용했다.

벌레의 촉수나 더듬이와 같은

생태 기관에서 파생된 단어겠거니 지레짐작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촉은 외부 자극을 수용하는 기관이다.

그 기관은 벌레나 동물에게는

몸의 일부 생태 기관인 것은 맞다.

인간도 동물이기에 신체적인 촉의 감각이 있다.

피부의 모든 신경세포는

외부의 온도 변화와 표면의 자극이 오면 반응한다.

땀을 흘리거나 소름이 돋는 것은 피부의 촉이 반응한 결과다.


촉이 좋다는 표현에는

이런 신체적인 반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표현에서 말하는 촉은 심리 작용이다.

외부 자극은 신체에 전달되는 반응뿐만 아니라

타인에게서 전달되는 느낌과 생각이 있다.

그리고 그 느낌과 생각은 말소리와 태도에서 전달된다.

보이지 않는 태도 속에서 전달되는 느낌,

마음의 움직임과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바로 촉이다.


불교에서는 촉을 주관이 객관과 접했을 때 생기는 정신작용이라고 말한다.

나의 인식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촉은 내재된 편견일 수도 있고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촉이 빠르고 좋다는 말에는

이런 마음과 감정의 움직임에 판단까지 포함되었다.


촉이 좋은 사람들은 예견과 예측을 술술한다.

눈치가 빠르고 상황 파악이 빠른 건 물론

앞으로의 일까지 자신의 촉으로 척척 말한다.

게다가 그 예견이 잘 맞는다.

때로는 촉이 좋은 사람들에게

점술가의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신기’라는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능력.


내가 만나본 내성적인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촉이 정말 좋아서 그 촉으로 세상을 미리 판단하여

일어날 일에 대해 감정을 미리 준비하는 부류나

완전히 반대로 촉을 무디게 만들어

외부 자극을 덜 수용하는 부류다.


첫 번째 부류는 예방차원에서

촉을 세우고 있지만 촉을 세우고 있는 만큼

에너지 소모가 크고 자신의 촉을 너무 믿는 바람에

미리 걱정하는 경우가 번번했다.

두 번째 부류는 외부 자극을 차단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래서 막상 외부 자극이 없는 상태가 되면

자신을 돌볼 여력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왜 내성적인 사람들이 촉이 좋을까?

근본적으로 이들은 외부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외부 반응을 어떻게 처리하냐에 따라

기분과 감정이 만들어 지고

그 감정에 따라 하루가

또는 수 일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은

눈에 보이는 신체 행동이건 마음의 울렁임이건

반응이 빠르게 나타난다.


반응을 표현한다면 외향적이라고 하겠지만

내향인들은 그 반응 또한 표시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서 아주 무심해 보이거나

또는 숨긴 반응이 신체로 나타나기도 한다.

얼굴이 붉어진다든가 목소리가 떨린다든가 하는 식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제법 사회화가 강하게 된 편이라서

사회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지만

사회적 태도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 방전이 된 채로

집에 돌아와 침대에서 대자로 뻗기 일수다.


나는 위에서 말한 첫 번째 부류다.

미리 일어날 일을 시뮬레이션해보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거울을 보며 미리 연습하기도 했다.

내가 촉이 좋은 건 내향성 성향에 기인하기보다는

그저 내가 생각이 지나치게 많고

아는 게 많아서 그랬다고 여겼다.

아는 게 많다는 건 자만이나 오만의 표현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이 많다는 걸 말한다.

그 속에서 축적된 케이스 스터디가 나이에 비해 많았고

거기에 근거하여 내 촉을 세운 것이라 여겼다.


촉이 좋다고 스스로 인정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외부 자극을 소화하는 동안 일어나는

나의 판단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쌓아놓은 경험은 내 기준일 뿐

타인에게 적용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느낌과 판단의 기준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그렇게 외부 자극 특히 대화 속에서 전달되는

뉘앙스와 느낌을 함부로 재단해도 되는가 싶었다.

인간관계에 감정이 실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 감정이 나 때문에 생긴 건지 아니면

상대가 전달하고 싶은 감정인지 잘 몰랐다.


상대에게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아,,, ’ ‘아, 그래...’ ‘그랬구나’가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이었다.

상대가 원하는 반응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겠고

함부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속으로는 나에게 왜 이렇게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하는 부담도 있었다.


이런 소심한 나의 반응은 하지만 의외의 결과를 만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나를 찾아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나를 ‘편안하게 속 터놓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자신들의 어려운 속내를

함부로 판단하지도 않고 지적질도 없고

어떤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면서.


거절에 능하지 못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줬다.

잿빛의 얼굴로 나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

분홍빛 얼굴로 헤어지는 모습에

나 역시도 뿌듯했다. 하나 뿌듯함도 순간,

집에 들어오면 그들의 아우라와 에너지를

소화해 내느라 끙끙 앓았다.


그 당시에 나는 그저 내가 체력이 약하다고만 여겼다.

내가 외부 자극을 처리하느라 온 에너지를 쓰는 줄도 몰랐다.

텅 비어 가는 내 모습에

어쩔 줄 몰라 나는 더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 텅 빈 공간을 채우려고 했고

그럴수록 나의 에너지는

완전히 방전되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내가 자처한 상황이였다.

힘들고 지친다고 말하면 그들이 상처받을까봐

차마 말을 못했던 거다.

역지사지로 내가 들으면 상처될 말이라 하지 않았던거다.


이런 마음은 뒤끝과는 다르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고

이해해야 하는게 그들에 대한 배려와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해하고 싶다는 나의 욕망이 만들어낸 댓가로

아직도 그때 소화되지 않은 외부 자극을 처리하는 중이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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