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변명하지 않는다, 더는
욕망에 충실하기 바래
11월이 되면 1월부터 함께한 수첩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낱지가 생길 정도는 아니지만 내 손때가 가득 묻어나
더는 종이가 구겨질까 아끼지도 않고
잘못 써도 화이트로 지우지 않고 볼펜으로 쓱쓱 그어버린다.
이 즈음이면 나의 연중행사 '수첩 고르기'에 들어간다.
나는 기꺼이 새로 나온 수첩과 일기장을
오프라인 대형 서점과 문구점에 직접 가서 보고 만지고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리뷰까지 꼼꼼히 살펴본다.
하지만 이런 정성과 시간이 무색하게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십여 년 넘게 사용하는 브랜드를 고수한다.
이제는 한국에도 그 브랜드를 구매할 수 있어서
더는 해외 지인 찬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한걸음에 달려가 그 수첩을 살 수 있다.
1년 내내 함께한 손때 묻은 수첩을 휘리릭 넘겨 본다.
빈장으로 남아 있는 날도 있고
까맣게 글자로 가득한 날도 있다.
기록이 곧 기억이 되는 나로서는
기록 하나 없는 날은
마치 산소마스크를 끼고 연명했던 날로만 기억된다.
기록이 가득한 날 중에 한 페이지를 봤다.
하루의 스케줄과 더불어
반성을 넘어서 자책과 비난이 가득했다.
나 자신에게 무척이나 잔인했던 날의 기록이었다.
얼마 전 공항에서
별것도 아닌 걸로 아이를 엄청 혼내는 엄마를 봤다.
아이가 불쌍할 정도로 엄마는 단호하게 훈육했다.
아이는 그만하라고 눈으로 엄마에게 애원하는 듯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가 한마디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호되게 혼냈다.
다른 사람이 아이를 혼내는 것보다
자신이 혼내는 게 낫다고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여러 아이를 데리고 비행하는 게 너무 힘이 들어
큰 아이에게 엄마의 감정이 실렸는지
엄마의 속내는 알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보이고 들리는 건 큰 아이의 무방비한 상태였다.
아이에게 감정이 이입되자 나는 더는 볼 수가 없었다.
내가 간섭할 수도 없고 해서도 곤란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자리에 가방을 두고 슬며시 화장실로 피했다.
그 아이가 내 수첩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외부의 공격과 비난을 무방비상태로 받고만 있는 아이.
자신을 방어하거나 변명할 틈도 없이
두 손 놓고 엉엉 울고 있는 아이.
그리고 나를 혼내는 건 엄마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 안에 있는 내면의 감시자가 이렇게 강했던 말인가?
내면의 감시자, 그 실체는 무엇일까? 아니 실체가 있기는 하나?
왜 내 일기장과 수첩에는 실체 없는 내면의 감시자가 나를 노려 보고 있는 걸까?
무한 경쟁 속에 내몰려 배웠던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늘 책망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칭찬 한마디에 목이 말라
나는 나를 늘 점검하고 반성하고 혼나기 전에 나는 사과했다.
'잘못했어요, 잘할게요, 미안해요, 다시는 안할꼐요'
이 말들이 진심이었든 상황을 면하기 위한 면피용이었든 중요치 않다.
나는 이런 감정과 태도 학습 속에서
늘 먼저 사과하고 변명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태도는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지만
호구 잡히기 딱 좋은 태도였고 그래서 호구 취급 많이 당했다.
지나고 보니 그랬다.
나는 외부의 비난과 책망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었고
방어벽이 셀로판지 두께 마냥 조금 생기긴 했어도
그 벽으로 여전히 타인이 뚫고 들어오는지라
타인의 시선이 무서운 어린아이 었다.
배움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나는 왜 이렇게 배워댔을까 하는 질문을 끝없이 했다.
그 과정에서 배움에 대한 강박은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불안도 발견했다.
또한 목적 없는 배움은
결국 사치스러운 취미였다는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했던 근저에 깔려 있는 실체에
도달하지 못했었다.
그 바닥은 수첩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여전히 혼나고 있는 아이의 모습으로.
매일 적어내는 스케줄과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반성과 자책은 자기 계발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나를 호되게 혼내고 있었다. 칭찬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내가 자리로 돌아왔을 때 아이는 꺼억 꺼억
숨넘어가는 소리로 자신을 변명 하고 있었다.
그 변명과 반성은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엄마가 한 말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 못했는지 몰랐다.
그저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엄마의 날 선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변명하고 반성했을 것이다.
아이가 반성하고 잘 못했다고 손을 싹싹 빌자
엄마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입을 닫았다.
아이는 엄마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아
혼자서 가슴을 들썩 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엄마도 힘이 들었는지 품에 안고 있는 아이를
느슨하게 내려놓고는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내 시선은 큰 아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늘어트리고 있었지만
아이의 시선은 엄마를 향하고 있었다.
엄마가 '이리 와' 하고 자신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엄마가 한 번 안아주면 설움이 한 번에 녹아내릴 텐데....
아이를 안아 주고 싶었다....
나는 더는 누군가의 품을
누군가의 인정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 사람이 엄마건, 사랑하는 사람이건, 세상의 시선이건
가자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다.
나를 비난하고 책망하는 내면의 감시자는 허상이다.
내 과거의 경험과 앎으로 만들어진
보이지 않은 실체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수동적으로 적응하고 침묵하게 했다.
나를 안아주고 나를 인정해줄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내가 지금껏 배웠던 모든 배움과 잘남의 목표는
타인의 시선과 비난에서 자유롭기 위한 목적이었다.
한동안은 나의 결핍과 이런 자기 감시로
여기까지 살아 버틴 거라고 위로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조차 인정할 수 없다.
그런 동기와 방법이 아니더라도
나는 충분히 나를 아껴가며 발전했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과거에 대한 후회도 원망도 아닌
진심 어린 나를 위한 위로다.
그러니 올가미와 족쇄를 버리자.
더는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하고 싶다고
나나의 억눌린 욕망과 욕심을 솔직하게 나
그대로 인정하자.
나는 나의 욕망에 충실할 것이고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떤 조건도 달지 않을 것이다.
나를 인정하지 않는 나를 누가 인정할 것이며
나를 아끼지 않는 나를 누가 아낄 것인가.
어린아이의 울부짖음은 자기 성찰이 되어 나를 깨우친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나처럼 방어적으로 변명을 내뱉지 않기 바란다.
그리고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도 바란다.
2022년 이 맘 때 즈음,
나의 욕망에 충실했고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았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아직 뜯지 않은 2022년 수첩에 손을 대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