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나이로 산다.

나는 몇 살일까?

by VIVA

'오늘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이 문장 끝에 커서가 깜빡거린 게

벌써 1시간이 넘었다.

이 문장을 생각해 내고는

뭔가 감성 어린 글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마음과 생각은 나를 '시간과 나이'로 이끈다.


어제에서 오늘이 왔고, 오늘에서 내일이 온다

시간은 분절되어 있지 않지만

인간은 태양의 움직임으로

분절된 시간 개념을 만들어 냈다.

분절된 시간 개념은 숫자로 구분되기에

우리는 어제, 오늘, 내일의 시간 단위를 보낸다.


시간 단위로 따지면 곧 나이 앞자리 숫자가 변한다.

'곧'은 3년이 될 수도 있고 2개월이 될 수도 있다.

(음력으로 따지면 4개월 후가 될 수도 있네)

내 나이는 만 나이로 치면 끝자리가 7이고

산술적 나이로는 8 , 빠른 나이로는 9다.

해외에 체류했을 때는

그쪽 문화대로 만 나이 딱 하나만 를사용했는데

서울로 온 이후 내 나이는 고무줄이다.

병원에서는 7, 일상에서는 8, 동창들과는 9...

새해가 되면 동창들은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다고 수선 피울 것이고

사회 지인들은 아홉수라며 또 호들갑일 것이다.


지금보다 낮은 앞자리 나이 숫자로

사회생활할 때는 나이가 꽤나 중요한 듯 여겨졌다.

적정 나이에 따른 적정 직급과 경제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그때 나는 나이가 많다고 여기고

시간을 서둘러 이룩하고 성취하려 했는데

조금 빨리 가고 조금 늦게 가는

분절된 시간의 개념 앞에서

아둥 바둥했던 내 젊은 날(?)이

지금보니애처롭게 여겨진다.

시간 앞에 여유 있어진 내가 되어 다행이다.

프리랜서라는 직업 역시 나이에 크게 제한을 받지 않기에

이 또한 나이에 연연하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은 늘 변수와 반전의 연속 아니겠는가,

얼마 전 '나이'를 핑계로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내가 지원한 일은 3개월 단기 프로젝트로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경력과 이력으로만 선발된다고 했다.

코로나로 면접도 필요 없고 오직 실력만 본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어느 연말과 다름없이 집에서 일을 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코로나 집합 모임이 풀리면서 선별된 팀원들을

오프라인 모임에 불러내는 일이 있었다.

다들 나와 같은 집순이 들이겠거니 하고

나는 별 치장 없이 그 모임에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팀장도 프로젝트 관리자도 나의 윗사람 모두가

나보다 생물학적 나이가 상당히 어렸다.

그들은 나를 몹시도 어려워했다. 나도 그들이 어려웠다.

내향적 인간인 나는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나를 불편해하는

그들의 시선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나는 '네' '아니요'만 대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답하지 못한 질문이 있었다. "무슨 띠세요?"


집에 돌아와 나는 바로 방전되었고 며칠 뒤 팀에서 방출되었다.

그 팀에서 배제된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평가도 우수 집단에 있었고 뭐 하나 걸릴 게 없었는데

오프라인에서 확인한 나의 생물학적 나이 때문이었을까?

생각이 멈추지 않아 동네 언니들에게 하소연했다.

언니들의 솔루션은 간단했다.

"야, 옷 사러 가자!"

억지로 억지로 끌려간 길거리 보세 매장은

이 언니들을 단골로 만들려 엄청 애쓰는 듯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숏 패딩을 권했다.

"어휴, 이걸 어떻게 입어요, 20대도 소화 못하는걸"

나는 단칼에 거절했는데 바로 언니들의 원성을 샀다.

"야, 젊었을떄 빨리 입어,

우리 나이 되면 못 입어! 어린 게 까불어! "

하며 매장이 떠나갈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언니들의 시선을 받고

거울 앞에 서 있는 나는 쩔쩔맸다.

하긴 내가 여기서는 막내지,

귀여움과 챙김을 젤 많이 받는 막내 깍두기.


모두가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살지만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시간은 상대적으로 변한다.

나는 나이가 많은 불편한 팀원일 수도 있고

한창 젊은 옷을 소화할 수 있는 막내 일 수도 있다.

내가 속한 준거 집단에서 나의 위치가 결정되는 거다.

그리고 다행으로 사회 준거 집단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젊고 싶으면 젊은이랑 노는 게 아니라 늙은이랑 놀아야 하고

늙었다는 대우와 부담을 받고 싶으면 젊은이랑 놀아야 하는 거다.

젊음과 늙음, 이 또한 얼마나 부질없이 상대적인지....


결론 : 오늘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냐면 바로 '내일'!

오늘이 가장 젊고 예쁜 날임을 다시 한번 기뻐하면서

또 다신 젊고 예쁜 내일로 간다.


P.S 나 왜 버렸어요? 내 어린 띠동갑 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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