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30분
빗소리에 눈을 떴다.
스마트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침대에서 미적거리다
반려견의 신호에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산책을 갔다.
아이는 용변을 보고
느릿느릿 내 뒤를 따라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따듯하고 쫀득한 우유 거품에
막 내린 에스프레소 샷을 섞어
카푸치노를 만들었다.
카푸치노 한잔을 들고 서재로 가 창밖을 보면서
내리는 비를 보고 멍하니 있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올 스탑'을 외친 지 1주일이 되어간다.
멍하니 있기로 결심했지만
습관이 무서운지라 뭔가가 또 떠올랐다.
눈에 들어온 수첩이었다.
출근하면 늘 먼저 하는 일이
퇴근 전에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적은 수첩을 보는 것이었다.
사무실도 직원도 없이 혼자 일을 한 이후
수첩에 할 일을 적는 게 습관이 되어 적기는 했지만
X 표시를 하며 done!이라고
표시되는 항목이 점점 적어지면서
어느 순간 수첩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텅 빈 수첩을 보고
뭔가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
이내 생각을 멈췄다.
'오늘은 뭐 해야 하지?...
아니 오늘 뭘 꼭 해야 하나?'
대학생 때부터 수첩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학교 준비물, 과제, 시험 범위, 읽는 책
이런 소소함을 적는 게 전부였고
가끔 센티해질 때 떠오르는 감성 어귀 같은 걸
소심하게 수첩 구석에 적어 놓곤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첩은 본격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아침이나 저녁에 해야 할 일들을 적고
확인하고 X 표하면서
해 낸 일에 대한 뿌듯함과
해야 할 일에 대한 기대와 걱정으로
일에 파묻혀 지내던 때였다.
하지만 해 온 일과 해야 할 일은 많지만
되는 일이 없는 때도 있었다.
지금도 사실 마찬가지다.
하는 일은 많은데 되는 일이 없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취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먹고 노는 것도 아닌데
먹고 놀았다면 추억이라도 있을 텐데
나는 왜 일한 기억밖에 없는 걸까?
계획은 내 머릿속에 있고
그것이 언어로 형상화된 곳이 수첩이다.
계획과 수첩은 반 평생 나와 늘 함께 했다.
계획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든다.
일종의 착각이다.
계획을 세우고 지켜나간다 해도
처음 의도처럼 처음 계획처럼
결과가 나온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냐고....
그저 불안한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인생에 대한 도전일 뿐이지
그 도전에서 번번이 좌절한다 해도
또 세우고 어긋나고 수정하고..
'자기 주도적'이라는 말이
요즘 '자존감'과 함께 자주 보인다.
자기 주도적 학습, 자기 주도적 결정,
자기 주도적 인생 등등
상황에 떠밀리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성취감을 쌓아가면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안정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들.
옳은 말이다. 작은 성취감이 쌓이고 쌓이면
자신에 대한 믿음, 자존감이 공고해진다.
그런데 나는 '상황에 떠밀리지 않는 선택'에서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살면서 상황에 떠밀리지 않는 선택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하루 일과를 적고 1주일 ,한 달
때로는 연간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과 결심이
내 안의 순수한 욕망과 희망으로만
만들어진 적이 있었던가?
곰곰이 까지는 아니지만
직관적으로 '상황'이라는 말이 계속 걸렸다.
학교 다닐 때는 학과 과정과 시험 일정에 따라
공부할지 놀지를 결정했고
일을 할 때는 주도적인 듯하면서도
결국 클라이언트의 뜻에 따라
또는 그의 스케줄에 따라
'맞춰주는 것' 이 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에 늘 적응하고 순응했다.
주변은 '사람 좋아!, 편해! '
이런 수식어로 나를 평가했고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우울증이라는 녀석이 찾아오고는
이 모든 것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엎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역행과 반전은 나의 언어가 아녔건만
지금 나의 불안을 상황 탓을 하면서
책임 요인을 집요하게 파고 싶었다.
곧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
지금 나는 모든 것에 '올스탑'을 외쳤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겠노라는 선언과 더불어
나는 상황에 밀리지 않는 순수한 나의 욕망을 찾기로 했다.
정신과 상담 의의 강력한 추천이기도 했고
더 이상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더는 살 수 없을 거라는
강력한 위기와 불안이
나를 이렇게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욕망를 끌어내기 전에
그 욕망이 피어날 밭을 돌봐애 했다.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가...
계획이었다
계획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계획을 보며 느끼는 안정감은 순간일 뿐
일과 배움으로 채워진 내 과거의 습관으로
나는 나에게 엄격하게 결과를 요구했다.
결과가 보이지 않는 일들에게
내면의 감시자는 시간 낭비했다고 꾸짖었고
계획대로 하지 않는 나에게는
불성실하다고 비난했다.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모든 걸 탁 놔버린 거다.
불안을 견디는 힘을 키우는것 대신
나는 모든걸 내려놓은 것이다.
포기인지 잠시 휴식인지 모르는 올스탑의 상태.
한때는 정말 아무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일을 했을 때
일의 컨베이너 벨트에 올라탔을 때
계획 없이도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회사에 가고 일하고 퇴근하고 먹고 자는 게
생각 없이 무계획으로 살아도
생계 걱정이 없던 때도 있었다.
올해로 프리랜서 xx 연차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언제부터 내가 글밥을 먹었는지 언제부터 혼자 일했는지
그 기준점을 잡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내가 조직에서 일한 횟수보다는
혼자 일한 횟수가 월등이 많다는 거다.
계획 속의 무계획, 무계획 속의 계획이
프리랜서의 일상인 것 같다.
일이 없는 요즘 같은 때는
계획은커녕 전화기만 붙들고 있으니까
나는 언제쯤이면 상황에 떠밀리지 않는
자기 주도적인 선택을 하게 될까
카푸치노를 다 마시고 결심했다.
딱 하루만! 딱 하루만 계획하자
완전히 무계획으로 사는 건
반동의 여파가 너무 클 것 같아 자신 없고
작품과 마감과 컨탠츠의 업로드 계획에는 눈 가리고
오늘 하루만 생각하자.
지금 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살면서
어떻게 내일이 달라지길 원하겠냐고...
무계획의 계획으로
오늘 하루만 살자.
그래, 오늘 뭐할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