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찾습니다

아주 오래전 나의 소국을 받았던 그 사람을

by VIVA

10월, 딱 이맘때였다.

도서관에 있다가 문뜩 보고 싶은 맘이 들어

소국 한 다발을 들고 나를 설레게 만든

사람의 집을 찾아 나섰다.

일전에 동기들과 우루르 몰려갔던 터라

혼자서 다시 찾기 어려웠다.

골목골목마다 비슷한 빨간색 벽돌 양옥집들이라

어디가 어딘지 자신이 없었다.


소국을 한 손에 들고 두리번거리다

마침내, '여기다'라는 직감이 꽂힌 한 양옥집 앞에 섰다.

1층의 철대문은 열려 있어

2층을 향해 나는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소국 한 다발을 문 앞에 두고

그대로 도망 나왔다.

지금의 정서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들이

낭만과 순수의 이름으로 통용되던 때 였다.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가는 기억,

소국을 보면 여전히 떠오른다.

그 길을 다시 찾으라 하면 찾아내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그때 입었던 검은 코트도 파란색 가방도

그 안에 들었던 프랑스어 사전도

그때 마음 한가득 설렘도 여전히 기억난다.


그 선배는 소국을 받기는 했을까?

소국을 두고 간 사람이 나 인건 알았을까?

아니, 그 집이 선배 집 맞기는 했던 걸까?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람을 한 번 만나면 천천히 오래 만나는 편인지라

과거 속에서 궁금한 인물은 별로 없다.

연락을 못할 정도로 어색하게 끊긴 관계가 별로 없기에.

뭐, 두 번 다시 안 볼 걸로 돌아선 사람은

아예 궁금하지 않고 그렇지 않은 이상

대부분 1년에 한 번 씩이라도 연락하니까.

물론, 내 인간관계의 서클이

넓고 다양하지 않은 탓도 있고

오랫동안 해외에서 체류한 탓도 있고.


그런데 이 선배가 궁금하다.

그저 가십 거리로 '그 인간 뭐하고 사냐?'의

술자리 질문이 아닌

기회가 되면 멀리 서라도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은 그런 궁금함.

이 선배가 단지 내 20대의 풋풋하고 무모한

돌발 고백의 추억을 만들어 준 사람이어 서도지만

나의 소심함으로 말 한마디 나눌

기회를 놓친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15여 년 전 뮌헨 공항에서 난 이 선배를 봤다.

인천 - 뮌헨 직항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나와 같은 트랙에서 짐을 찾고 있었다.

그 말은 분명 그 선배와 나는

한 비행기에 11시간이나 같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지.

인천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같은 데스크에서 했을 테고

출국 게이트 대기 좌석에서도 같이 있었을 테고

여권을 들고 독일 공항에서

입국 대기를 했을 때도 같이 있었던 건데

다시 말해, 우연히라도 마주칠 순간이 참 많았을 텐데

단 한순간도 이 선배를 알아보지 못했다.


뮌헨 공항에서 본 선배는

20대 때 모습과 하나 다를 바 없었다.

간단하게 대형 캐리어 하나만 찾아

유유히 게이트를 빠져나가 버렸다.

나는 그걸 멀리서 입 벌리고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내 짐은 트랙에서 몇 번이나 돌았을까..

가장 꼴찌로 짐을 찾아 나왔던 기억....


행여나 뮌헨 시내에서라도 보일까 싶어

한국 사람인 듯하면 얼굴 인식이

가능할 정도의 거리로 다가가 확인하곤 했는데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나 뮌헨에서 대학 선배 찾기나....

뭐 뮌헨 공항에서 내렸다고 뮌헨에 사는 건 아니니까.

서울 인천 공항에 내려서

안양으로도 가고 일산으로도 가니까....


만날 사람은 꼭 다시 만나게 된다는

인연의 속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관계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 하지만

그 필연에는 반드시 인간의 의지가 빠질 수가 없다.

내가 어디라도 움직였고 뭐라도 했기에

그 인연을 만나고 유지하고 또한 헤어질 수 있는 건데....


꽃 집 앞에서 소국 화분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우연에 기대지 않고

나의 의지로 선배를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다.


혹시라도 나의 소국을 받았던

프랑스어와 러시아를 복수 전공했던

곱슬머리에 전현무처럼 볼에 수염이 많았던

나보다 4살 많은 선배.

이 글을 본다면 여기 댓글을 남겨 주기를....

잘 살고 있는지, 건강한지, 아이들은 잘 자라는지...

순수하게 그저 선배에게 삶의 편안함을 기원한다.


혹시라도 연락이 닫는다면

그래서 어색하게 말 한마디 나눌 수 있다면

영화 <써니 > 나미가 한준호에게 주지 못했던 그림을

어른이 되어서 그림의 주인을 찾아 주듯이

그 선배 만나면 소국 한 다발 직접 전달해 주고 싶다.

유독 센티한 가을밤의 낭만은 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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