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은 통한다

슬픔이 힘이 될 때까지

by VIVA

추석 연휴 첫날이었다.

나의 반려견의 숨소리가 생사의 경계에 있는 듯 했다.

다니는 동물 병원은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긴박했던 순간이 걸릴돌 없이 응급처치로 연결되었다.

아이는 위급한 상황을 잘 넘겼다.

마음 한편은 편치 않아

연휴 내내 예의 주시하며 아이를 지켜봤다.


연휴 끝나자마자 다시 병원으로 가서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나는 사회적으로 단련된 인간인지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웬만하면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웬만한 일에 화도 나지 않건만

원장과 외과 의사 그리고 다시 원장과 상담을 하면서

화와 분노가 치솟았다.

양볼이 빨갛게 울그락 불그락 열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반려견을 안고 있었고 안고 있는 내 손은 떨고 있었다.

나는 정면대결을 하거나 바로 받아치는 성격이 아니다

한 템포 느리게 때로는 호구인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우선은 들어주는 타입이다.

하지만 원장과 외과의사의 설명은 더는 들을 수가 없었다.

반려견을 안고 그 자리에서 나와버렸다.


그리고 작업실로 가서 펑펑 울었다.

우선 반려견이 몹시 아프다는 진단이 나왔다.

엑스레이와 초음파 그리고 혈액검사들이

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술을 권했다. 수술이 필수는 아니었다.

보호자의 권한에 따른 선택이라면서

수술비를 마치 숨겨 둔 칼처럼 꺼내 들었다.

수술비에 대한 항목과 리스트도 없이

뭉텅스럽게 나온 수백만 단위!

나는 이 병원에서 바로 수술을 할 뻔했다.

'아프다는데...'

하지만 수술 상담이 진행되면 될수록

과정과 비용이 석연찮았다.

외과의사는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수술비를 마치 고무줄로 늘렸다 줄였다 했고

나는 상체를 의자 뒤로 하고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외과의사는 수술 날짜를 바로 잡자고 했다.

나는 검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내 반려견을

눈으로 확인하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수술 날짜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했던 온갖 검사를 다시 해야 하고

그러면 그만큼 비용이 또 든다고 엄숙하게 설명했다.


다음은 원장이었다.

나는 과감하게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속으로는 '당신의 병원에서는 수술하지 않겠소'라는 뜻이었다.

원장은 나를 한심하고도 몹쓸 인간 취급을 했다.

눈빛이 변하면서 왜 자신의 말을 안 듣느냐면서 타박했다.

나는 다시 수술비를 요목 조목 물어봤다.

원장은 수술비를 낮게 불렀다. 그러다 다시 올렸다.

나는 아이의 상황에 따라

수술비와 약값의 차이가 있을 거라는 거

충분히 인지하고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부른 수술비는

어디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최고가의 수술비였다.

의사와 원장이 번갈아 가면서 나에게 병원비만을 설명하는 동안

살아있는 생명으로 장사를 한다는 느낌에 속이 역해졌다.

검색 몇 번이면 나오는 병원비와 수술비인걸

이 조차도 검색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맹해 보였나?


나는 나의 반려견을 아낀다.

이 아이는 내가 독일에서 서울로 오기 바로 전 해에

가족으로 맞이한 아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우울증에 시달렸었다.

정신과에 간 것도 아니고 상담사에 간 것도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 상당히 내가 아팠던걸 알았던 거다.

몸무게 앞자리 숫가가 바뀔 정도에

원형 탈모증까지 왔었으니까

그때 나를 위로해 준 따듯한 생명체가

바로 지금 나의 반려견이었다.

한주먹도 안 되는 쬐만한 생명이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했다.

아이 덕분에 살아난 내가

아이의 아픔을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을까

하지만 모든 견주의 이런 연약한 마음을

일부 부도덕한 병원은 얄팍하게 잘도 이용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술이 아닌 상술을 거부하는 나를

몰상식한 견주로 몰아세웠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나의 두려움을 이용한 동물병원 때문에

눈가가 따가울 정도로 울었다.

동시에 혼자 울고 있는 내가 민망했다

'이게 그렇게 울 일이니?'

'살면 죽는 거 당연하잖아!'

'가서 따지지 못하고 왜 혼자 징징거리냐?'

내면의 나는 나를 위로하지 못하고 책망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목놓아 펑펑 울어본 일이 없었다.

혼자 있어도 내면의 감시자는 나를 통제했고

그러한 통제 덕에 나는 감정을 잘 다스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기로 했다.

이 울음이 늙은 반려견 때문인지 나의 우울 때문인지

아니면 이 두 개가 합쳐져 폭발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내 감정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의사가 말한 대로 '인정'했다, 나의 감정과 나의 기분을.

그렇게 인정하고 나서 나중에 머리로 생각하라 했다.

나는 감정이 올라오면 거기에 너무나 쉽게 휘둘리기에

바로 이성으로 제어하는 사회화 학습을 잘했고

그로 인해 균형 있게 화합을 잘하는 사람이라 인정받았지만

나 자신은 나와 결코 화합하거나 조화롭지 못하 다는 걸 깨달았다.

슬프면 슬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한마디 하면 되는 것을...

사람들이 힘들 때면 찾아올 정도로

이야기 잘 들어주는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나는 나의 이야기를 너무나 오랫동안 무시하고 있었다.


눈이 빠지도록 울었다. 코는 막혔는데 콧물은 흘렀다.

병원 검사와 낯선 이들의 손에 지친 반려견은

내가 울든 말든 코를 그렁그렁 거리며 구석에서 자고 있었다.

앞으로 아플 날 들이 다가오고 있다.

아이 때문에 동물 병원 때문에 울 날도 더 많아질 거다

감정을 다 쏟아낸 나는 기가 홀딱 다 빠졌지만

머리와 마음은 홀가분했다.

나는 서둘러 다른 병원에 전화하고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좀 더 정확하고 믿을 만한 병원을 찾고

개복수술이 아닌 레이저 치료의 성공사례와

이러저러한 경험담을 읽었다.그 사이 반려견이 다가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맑은 모습으로 혀를 내밀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웃었다.

눈물 가득한 눈으로 입이 찢어지게 울면서 웃었다.

네가 나를 웃게 하는구나...

너의 아픔이 나를 웃게 하다니...

나는 많이 울고 슬퍼하련다,

그게 나의 살아갈 힘으로 바뀔 때까지

제발 건강하게 잘 살자, 아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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